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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달슈가 Feb 25. 2020

여자들은 옷이 많은데 옷이 없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것은 신상이 아니라 새 옷이다.


“어디 가려면 입을 옷이 없어요.”

남자들은 도저히 이해를 못 할 노릇이다. 대부분 집에는 아내의 옷이 제일 많다. 그러면서도 내 아내가 옷을 사 입는 것을 말리지 않는다. 요즘 남자들은 ‘하나 사 입어.’라고 선뜻 말해준다.

가게를 하는 동안 단골이 되어가면서 처음에는 혼자 다니던 분이 종종 남편분과 동행해서 오시게 되었다.


“여기가 슈가야.”

“내가 맨날 옷 사 입는 집이 여기야.”

“맨날 슈가. 슈가. 하더니 이 집이냐?”


남편들이 숙녀복 가게에 와 볼 기회는 아내와 동행할 때 외에는 없다. 어떤 분은 밖에서 계속 기다리기도 하고 차에서 안 내리지만 관심이 많은 남편은 가게에 들어오셔서 제법 꼼꼼하게 둘러보기도 한다. 남편들은 평소에 아내가 입었으면 싶은 스타일이나 색상을 고르기도 한다. 그러면서 덧붙여 한 마디씩 하는 것이다.


"너도 이런 거 좀 입어 봐라"

"맨날 바지만 입지 말고 치마 좀 입어라."

"너무 벙벙하지 않나?"


"이게 나한테 맞나?"

"뱃살 때문에 안 된다. 나는 이게 편하다."


가끔 대화를 듣고 있다 보면 불안함이 들 때도 있다. 괜히 옷 때문에 싸우면 어쩌나 싶은 마음이다.

눈치 빠른 남편은 ' 네 옷이네.’ ‘네가 입고 싶으면 해라.’

하지만 여자들은 거기에 한마디 더 덧붙여 주어야 한다.

‘예쁘네.’ ‘잘 어울리네.’ ‘됐다.’

이렇게 간단한 단답형이라도 들어야 하는데 귀찮은 듯, 영혼 없이 말을 거들 면 듣고 있던 아내들은 짜증을 낸다. ‘봐줄 거면 좀 제대로 봐주든지.’


결국 남편은

"내가 볼 줄 아나. 그냥 네가 좋아하는 거 입으면 되지."

대화의 내용은 대부분 이렇다.


어쩌다가 볼일 보러 가는 길이나 오는 길이나 동행하게 되면 남편은 그냥 옷값 계산할 때나 들어오는 편이 낫다 싶을 때도 있다. 부부 유형을 보면 그나마 좀 다정한 남편들은 아내가 만족해하는 모습에 그저 고개를 끄덕여 준다. ‘됐네. 괜찮네. 요래 입어라.’ 이 정도의 관심이면 무뚝뚝하다는 경상도 남자로서는 아주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남편이다. 내 아내의 몸은 생각하지 않고 밖에서 젊고 날씬한 여자들이 예쁘게 입고 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며 아내에게 원하면 아내들은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photo by sugar

이제는 손님들 뿐 아니라 남편들도 몇 분 얼굴을 익혀서 편하게 들어오시고 앉아서 책을 읽으시거나 차 한 잔을 드시기도 한다. 그러다가 다른 손님이 들어오시면 배려하신다고 자리를 비켜주는 매너도 있다.


‘여자들은 왜 옷을 두고도 옷이 없다고 해요?’ 나보고 묻는다.

‘저도 옷이 넘쳐나는데 옷이 없어요.’라고 웃으며 말한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옷이 비싸고 좋은 옷이 아니라 ‘새 옷’이라고 하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새 옷이 없으면 옷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내가 옷가게를 하면서도 신상을 자주 내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같은 옷을 계속 팔지 않는다. 내가 싫증이 나서 잘 못 하는 편이다. 빨리빨리 회전시키고 신상을 자주 내려서 늘 새로운 것을 보아야 하는 ‘중독’ 비슷한 것이다. 이 때문에 나는 다른 옷가게 사장님들보다 더 많이 바쁘고 부지런해야 한다. 여자들의 옷장에서 잠자고 있는 옷. 그 옷들은 언젠가는 입겠지. 하는 미련으로 넣어두고 있지만, 막상 입으려고 꺼내면 또 마음에 안 들어서 다시 걸어 두게 되는 것이다. 새 옷을 하나 장만하면 그때부터는 망설였던 옷은 거의 입을 일이 없어진다. 그러므로 여자들의 옷장에는 옷들이 쌓여가고 있다.

이것은 내 옷장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남자들은 이해를 못 하겠지만 여자들은 쓰레기 버리러 갈 때 입는 옷도 따로 있다. 집 안에 있다가 음식물 쓰레기든 재활용이든 버리기 위해 집 밖을 나가는 일. 아파트 단지는 벗어나지 않지만, 그래서 그때 입는다고 옷을 사가기도 한다. 설마 쓰레기  버리러 갈 때마다 그 옷을 갈아입는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그 말은 그냥 평상시에 집안일할 때 입기 좋은 옷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집에서 입는 옷도 부담 없는 가격의 새 옷을 좋아한다. 여자들의 드레스룸에 옷이 많이 걸려있다고 해서 옷이 많은 것은 아니다. 불과 얼마 전 쇼핑을 했지만 가게에 들르면 또 옷이 없다고 말하는 손님도 있다. 계속 새 옷을 입다가 다시 질리면 또 새 옷이 그리워진다. 그래서 옷은 사도 사도 새 옷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입을 새 옷이 있어야 옷이 없다는 말은 안 한다.




ㅡ달달 슈가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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