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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 May 15. 2022

우물 들여다보기


  “그냥 일 년 하시죠, 선생님. 쉴 때 푹 쉬시는 게…. 학교 측에서도 일 년짜리가 낫다는 거, 아시잖아요.”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육아휴직 기간을 고민하던 내게 교무부장이 말했다. 휴직자 처리 업무에서 중요한 건 사유가 아니라 기간이니까. 어차피 그쪽으로 마음이 기울던 차에 그러마고 했다.


  각종 휴직이나 결원 등으로 인원 보충이 필요할 때 학교에서는 기간제 교사를 모집한다. 일 년 단위로 학년이 바뀌고 업무가 재편성되는 학교현장의 특성상 한 학기 휴직은 여러모로 애매하다. 담임 같은 중책을 맡기기엔 소위 ‘일 년짜리’가 낫다는 것. 잡무가 많고 감정노동의 강도가 크다는 이유로 담임을 고사하는 교사들이 많은 와중에 적잖은 담임 자리가 기간제 교사에게 돌아간다. 선발 면접에서 담임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질문에 어렵겠다고 답할 이가 몇이나 될까. 이와 반대로 기간제 교사에게는 일체 담임 자리를 주지 않는 학교도 있다. 작정하고 떠넘기는 것과 아예 배제하는 것, 무에 다를까 싶지만.


  교과부장을 하던 해, 인사위원회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그해 유독 담임 자리가 채워지지 않아 골머리를 앓던 중 1학기 육아휴직을 신청한 A교사가 후보로 거론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1학기만 근무할 기간제 교사에게 담임을 맡기는 것도 무리일뿐더러 중간에 담임이 바뀌는 건 더더욱 곤란하다며 다들 난색을 표하는데, 교감이 잠깐 주저하는가 싶더니 이렇게 말했다. “담임 주면 2학기 때 복직 안 할 겁니다, 아마.”


  나는 속으로 뜨악했다. 다년간의 인사 경험은 저런 예지력을 갖게 하는가. 교감의 말투와 표정으로 보건대 A를 다소간 괘씸하게 여기는 게 분명했다. 교감에게 한 학기 휴직이란 가계는 챙기고 담임은 피하려는 꼼수 정도로 읽히는 듯 했다. 결국 기간제 교사가 담임을 맡게 되었고, 교감의 말대로 A는 여름방학 중에 휴직 연장 신청을 했으며, 다행히도 담임이 바뀌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허나 이게 정말 다행한 일인가. 교감이 기간제 교사에게 담임 업무를 지시하며 은밀히 건넸을 제안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담임 경력은 많을수록 좋잖아요. 휴직은 연장될 거요. 일 년 채웁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예견이지 확언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그나마 구두 계약도 못되는, ‘구두 기약’일 뿐. 기간제 교사는 어느 것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담임 업무를 수행하고 아이들과 관계를 형성해 나갔을 것이다. 일 년도 결코 긴 시간이 아닌데 1학기만 볼지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얼마큼의 관심과 애정을 쏟을 수 있을 것인가. 정교사의 권리 이행과 학교 인사 처리 과정에서 직간접적 피해를 받은 이는 기간제 교사와 아이들이었다.


  기간제 교사는 학교 고용시장에서 을의 입장일 수밖에 없다. 계약 종료 시점이 다가오면 근무 평정을 받고, 그 결과는 재계약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복직이나 감원 등으로 재계약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 학교를 옮겨야 하는데, 현 근무지에서의 평판은 암암리에 전해진다, 어떤 식으로든. 세상은 좁고 교직 사회는 더 좁으니까. 사정이 이렇다보니 사실상 기간제 교사에게는 업무 선택권이나 조정권이 없다. 과중한 업무나 부당한 처우에 대해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도 어렵다. 10년 넘게 학교에서 근무했지만 동료교사에게 하소연이나 넋두리를 하는 대신, 관리자에게 직접 건의하고 요구하는 기간제 교사는 거의 보지 못했다.


  지난 해 우리 학교에 수업 시간 종종 자습을 주고 업무를 처리하곤 했던 기간제 교사가 있었다. 담임을 맡고 있었고 골치 아픈 일이 많은 부서의 기획 자리였다. 통상 그 두 가지를 한 사람이 수행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진도와 시험 문제로 동학년 선생님이 꽤나 애를 먹었으므로 그를 두고 뒷말이 많았다. 아이들의 수업 손실을 간과한 것은 분명 잘못이었으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본인이 흔쾌히 수락했다고는 하지만 그는 왜 그래야 했을까. 기간제 교사 한 두 사람을 뽑는데 지원 서류가 수십 장씩 들어오는 현실에서 무엇보다 업무 경력이 중요하기 때문 아닐까. 고르지 못한 업무 분장으로 인해 그가 혼자서 처리해야만 했던 일들이 실은 누구의 몫이어야 했는가. 비난의 화살은 정작 어디로 향해야 옳은가.


  정규직 안착을 위해 죽자고 공부해서 운 좋게 한 자리를 꿰찬 후, 내가 마주한 것은 교직 사회의 민낯이었다. 떠넘기고 배제하고 차별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이곳에서 나는 어정쩡하게 서 있다. 교원양성체제나 비정규직 문제를 개탄하면서도 당장 내 일 아니라고 무심히 넘겼던 순간이 숱하다. 부끄러움에 무뎌져서 그러려니 하기 전에 무슨 말이든 계속 쏟아내야지. 지금 내가 사는 이 세계에 대해서. 밖에서는 볼 수 없는 이 바닥 속사정에 대해서. 그러다보면 좀 더 떳떳해져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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