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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 May 23. 2022

모범적인 게 뭔가요


  모범적이라는 말에 마음이 상했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한 글쓰기 모임에서 내 글을 합평하던 날이었다. 교직에 대한 고민을 담은 글이었는데,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글의 흐름이 뭔가 도식적이고 결말도 교훈적이어서 재미가 좀 없었어요. 나는 움찔했다. 정곡을 찔린 기분. 다른 피드백도 열심히 메모했다. 완벽한 글은 없고 글은 고칠수록 좋아지니까. 그러려고 이런 모임도 하는 거니까. 합평 소감을 이야기하며 피드백 감사하다, 열심히 메모해 뒀다, 다음 글에 반영하겠다고 했더니 누군가 웃으며 말했다. 너무 모범적이시네요. 나도 따라 웃었다. 하지만 어쩐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옹졸하게도 그 말을 오래도록 곱씹었다.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다. 대체로 모범적으로 살아 왔다. 하지 말라는 건 안했고 해야 하는 건 최선을 다해 해치웠다. 그 둘을 가르는 주체와 기준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으나, 시절이 요구하는 것에의 성실한 순응은 삶을 비교적 순조롭게 했다. 다행스럽게도 책 읽고 공부하는 행위가 내 본성이나 욕구와 크게 어긋나지 않았으므로 어렵지 않게 모범적일 수 있었다. 학창시절 담임선생님들이 생활기록부에 공통적으로 적어주신 말들. 타의 모범이 되는 어쩌고저쩌고. 당연해서 식상한 말들이 내 청소년기를 이끌었다.


  그렇다고 ‘그래, 난 범생이었지.’하고 매듭을 지어 버리기엔 뭔가 석연찮다. 학교 생활기록부가 증언하는 대로 난 그렇게 모범적이기만 한 학생은 아니었다. 체벌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던 시절, 자습 시간에 조금 늦었다는 이유로 꿇어앉은 상태에서 허벅지를 때린 후 문지르지도 못하게 했던 선생님한테 바락바락 대들다가 뺨을 맞기도 했다. 이게 이렇게까지 맞을 일이냐고 울부짖는 나를 보며 아연실색하던 선생님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이들이 다 엎어져 자는데도 깨울 생각도 않고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들에 관해 ‘학교장과의 대화’라는 익명 게시판에 실명으로 항의 글을 올렸다가 여러 사람 곤란하게도 했다. 나름의 정의는 있었으나 표현의 경로와 방식이 되바라지고 고약했던 날들. ‘타의 모범’이라는 평은 선생님들이 적당히 포장해준 결과일지도.


  학생의 본분이랄 것에 큰 회의가 없었던 것처럼 사랑에도 어수룩했다. 중·고등학교 모두 남녀공학을 나왔지만 연애는 대학가서 하라는 어른들의 충고대로 이성교제는 하지 않았다. 학업에 매진하겠다는 갸륵한 마음으로 사랑도 미뤄둔 아쉬움은 성적으로 보상받았다. 성인이 되어서도 20대 중반이 되도록 관계 없는 연애 경험만 몇 번 있었는데 하루는 문득 내가 맹추같이 느껴졌다. 나 이제 문란하게 살 거야, 호기롭게 다짐한 후 처음으로 만난 사람과 3년 연애 끝에 결혼까지 해버렸다, 이런 세상에…. 연애는 남녀 간에 하는 거라는 주류의 인식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고, 사랑을 지키는 방식도 결혼 외의 것들은 상상하지 못했다.


  결혼에 이르기까지 별다른 우회 경로를 거치지 않은 나는 지금에서야 사랑의 다양한 형태와 방식을 염탐하며 주변을 기웃댄다. 상상의 폭이 지극히 좁았던 과거를 속죄하는 마음으로. 결혼이라는 제도에 너무 빨리 발목 잡힌 억울함은 전통적인 아내와 엄마의 삶을 거부하는 것으로 해소해야지. 남편을 살뜰히 보필하고 아이를 위해 희생하면서도 일까지 야무지게 해내는 게 모범적인 기혼 직업여성의 삶이라면 나는 암만해도 못 하겠다. 현실적으로 버거운 일이어서기도 하지만, 그런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너무 모범적이시네요,’라는 한 마디 말이 오래된 기억을 되살리고 현재의 나를 돌아보게 했다. 별 뜻 없는 농담이었더라도 그 말이 내게 언짢게 다가왔던 이유를 찬찬히 톺아본다. 내가 교사라는 걸 밝히지 않았어도 같은 말을 들었을까. 어쩌면 교사 집단의 경직성과 보수성을 은근히 꼬집는 말이 아니었을까. 이 집단에 속해 있는 것만으로도 나라는 인간이 고리타분한 존재로 납작하게 눌리는 것 같아서 괜히 억울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권위적이고 정체된 집단이라는 은근한 빈정거림 속에서 교사들은 사회적으로 모범을 강요받는다. 선망하는 직업군 중의 하나지만 심심찮게 공박의 중심에 선다. 이런 양가적 시선은 나를 때때로 혼란스럽게 했다. 비교적 모범적인 삶을 살았기에 교사가 될 수 있었으나, 너무 모범적이기만 해서는 또 곤란했다. 내가 지켜야 할 모범은 무엇인가. 과거의 내가 고민 없이 순응했던 삶의 도식들이 날카로운 질문이 되어 돌아온다. 내 안에 꿈틀대는 반항성을 기조 삼아 모범을 정의하는 주체와 기준에 물음표를 붙여본다. 그래야 내 글도 더 재밌어질 것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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