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 시간의 주인이 된다는 것
나는 매일 잠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나에게 불면증이나 기면증 같은 수면 장애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만성 피로에 늘 잠이 부족한 상태이긴 하지만, 그럭저럭 버틸 만한 수준이다. 사실 난, 학교에서 매 수업 시간마다 아이들의 잠과 씨름하고 있다.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고등학교 교사라면 많이들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재우지 않을 수 있을까?’ 교사에겐 지극히 일상적인 고민이다. 아무리 좋은 수업을 준비해도 잠든 아이들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하루 중 가장 큰 고비는 1교시다. 비몽사몽의 상태로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1교시가 가장 피곤한 시간임은 말할 것도 없다. 몇 년 전, 십대 청소년들의 수면 패턴이 어른들의 사회와 근본적으로 맞지 않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로이터 통신의 기자인 데이비드 랜들이 쓴 『잠의 사생활』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에 따르면 청소년의 경우 밤 11시가 될 때까지 잠을 불러오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이 분비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 대신 해가 뜬 뒤에도 멜라토닌의 분비가 한동안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른들의 시간표에 맞춰 중·고등학생의 등교 시간을 정하는 것은 얼마나 가혹한 일인가? 십대 청소년은 생리적으로 올빼미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데 말이다. 오전 8시가 아니라 10시쯤 등교할 수 있도록 학교 시스템을 바꾼다면? 그러면 아이들이 조금 덜 피곤해할까? 물론 큰 기대는 하지 않지만….
사실 아이들은 1교시뿐 아니라 온종일 피곤한 상태다. 하루 중 언제가 가장 행복하냐는 질문에 ‘잘 때’라고 대답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하루의 자유시간이 주어진다면 뭘 할 거니?”
“그냥 계속 잘래요, 아무도 깨우지 않는 곳에서.”
아이들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꿈이나 사랑 같은 막연하고 모호한 이상이 아니라, 당장의 피로를 풀어 줄 단잠인지도 모른다.
지난해, 시인이자 교사이신 배창환 선생님을 실제로 만나 뵌 적이 있었다. 감사하게도 본인의 시집 『별들의 고향을 다녀오다』를 선물로 주셨는데, 그중에서도 ‘빼앗긴 아침’이라는 시가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누가 와도 못 말리는, 지금은 이불 속 캄캄한 잠이 지배하는 시간
아이들은 욕망과 생존의 촘촘한 그물에 갇혀
참 편안히, 머리와 손발 다 내던지고 엎어져 잔다
갇혀 사는 일이 편히 느껴질 때도 때론 있는 것
이런 날도 살다 보면 앞으론 아마 드물 것이리
…
그래도 나는 견딘다, 아이들을 지난밤에 이리저리 다 빼앗기고
나는 편히 잠을 잤고, 아이들은 그 무엇에 홀려 잠을 못 잤으므로
잠잔 나는 불편하고 잠 못 잔 아이들은 편안한 이 시간
혼자, 견딘다, 책을 창밖으로 내던지고 싶은 이 시간
남들 눈에 안 보이는 것이 잘 보이는 것도 슬픈 이 시간…
늘어지게 엎어져 자는 아이들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화자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아이들은 지난밤에 무엇을 한 걸까. 과제나 공부 때문에 늦게 잠자리에 든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 그게 다는 아닐 것이다. 꽤 많은 아이들이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SNS 속 화려한 이미지의 세계, 또는 유튜브 연속 재생의 늪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마다의 이유로 하루의 시작이 힘겨운 아이들, 그 속에서 홀로 불편한 시간을 견디는 화자의 모습이 내 모습이기도 했다.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거나, 간단한 스트레칭을 시도해 보기도 하고, 관련된 개인사를 풀어 놓아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일으켜 세워 수업을 듣도록 하거나 모둠을 만들어 활동 과제를 부여하는 것도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그마저도 쉽지 않은 날에는 그냥 서둘러 수업을 마친다. 교실은 순식간에 무거운 고요로 차오르고, 할 일이 없어진 나는 엎어진 아이들의 피곤한 등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아이들을 억지로 깨워 듣게 할 만큼 내 수업이 가치 있는 것인가, 내가 가르치는 내용이 아이들의 인생에 정말로 꼭 필요한 것인가, 하는 다소 서글픈 생각을 하면서….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고등학생 때 기숙사 생활을 했었는데, 아침 6시에 울리는 기상벨이 나에겐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소리였다. 눈곱도 떼지 못한 상태로 대충 겉옷만 챙겨 입고 운동장으로 나가면, 아침 점호를 한 뒤 방별로 줄을 맞춰 2바퀴씩 뛰어야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에도 기숙사에서 보낸 그 아침들은 종종 악몽으로 나타나곤 했다.
그리고 그땐 0교시라는 것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어쩌면 그렇게 가혹했나 싶다.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가기에 앞서 교육 방송을 시청하거나 영어 듣기를 하거나 독서 활동을 하는 시간이었는데, 그건 그저 명목상 구실이었을 뿐…. 내내 꾸벅꾸벅 졸며 잠에 취해 있었던 기억이 난다. 참으로 오랫동안 나에게 아침이란,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그 무엇도 달갑지 않은 고된 시간이었다.
성인이 된 후에야 아침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되었다. 언제 일어날 것인지, 무엇을 먹을 것인지, 어떤 일부터 할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 내가 내 시간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기꺼운 일인지 비로소 알았다. 얼른 지나가기만을 바랐던 시간이 무언가를 하고 싶은 시간으로 바뀌기까지, 내가 밟아온 모든 삶의 과정이 문득 아득하게 느껴진다.
내가 그랬듯이, 학교의 아이들도 삶의 그 시기를 온몸으로 통과하는 중이리라.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아침에서 무언가를 하고 싶은 아침이 되기까지, 빼앗긴 아침을 되찾을 때까지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잘 존재하기를 바라며….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와 같은 묵은 명언은 되도록 하고 싶지 않았는데, 돌고 돌아 결국 그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