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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원 Apr 17. 2021

가르치려 드는 게 불편한 이유

가르치려 드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통상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해당 분야에 경력이 긴 사람들이었다(물론 가끔은 나이와 경력에 상관없이 가르치려 드는 사람을 만날 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대놓고 너는 이것을 모른다 그래서 문제다라고 지적하며 가르치려 들기도 하고 때로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말을 전달하는 느낌에서 그러한 기색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기분이 나빠진다. 그렇다고 상대방도 그러한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필자만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은 아닌가 보다. 최근에 있었던 보궐선거 직전에도 '가르치려 든다'는 것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사실 '가르치려 든다'는 것을 기분 좋게 받아들이는 이는 잘 없는 것 같다. 사실 필자는 가끔 가르치려 드는 사람에게 일부러 역으로 가르치려 드는 시늉을 하기도 한다. 한참을 듣고 있다가 가르치려 드는 사람이 말하는 내용 중에 필자도 잘 알고 있는 내용에 대해 예리한 질문을 날리고는 관련된 것들에 대해 역으로 가르치려 드는 식으로 말이다. 그럴 때마다 대부분의 경우 상대방 역시 말로 표현은 안 하지만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던 것 같다. 니가 뭔데 날 가르쳐라는 무언의 표정을 지은 채로 말이다.


이쯤 되면 고민이 생긴다. 가르친다는 것은 정말 나쁜 것인가? 사실 가르침이라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좋은 것이다. 혼자서 무엇인가를 익히는 것이 더 능숙한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새로운 것을 익힐 때 '누군가'를 통해 배우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가르친다는 것은 배움을 위해서는 어쩌면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서든 번영을 위해서든 아니면 그냥 재미를 위해서든 학습이라는 것을 거의 항상 한다. 가르침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활동인 셈이다.


사실 '가르침' 자체가 나쁜 것이라기보다는 '가르치려 든다'는 것이 싫은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게 왜 싫을까? 가르친다는 것은 부족한 것을 알게 되고 익히게 되는 기회일 텐데 말이다. 아마 가르치려 드는 게 싫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가르치는 것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행위에 깔려 있는 '무시'라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너는 모르고 나는 안다. 그래서 내가 우월하며 너는 열등하고 부족하다. 그러니 너는 내 말을 따라야 한다. "


모든 것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 특히 변화가 급격하게 빠른 현대 사회 그것도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수식어가 부담스럽지 않은 오늘날의 한국에서 많은 것을 잘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런 점에서 특정한 분야에 지식과 경험이 많다는 것을 이유로 누군가를 무시하는 것은 그저 오만한 행동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런 오만한 행동들이 넘쳐난다.


지식을 전달하는 학교야 논외로 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이 일상을 보내는 회사라는 공간에서 그러한 행동은 생각보다 쉽게 일어난다. 무시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채로 진행되는 가르침. 사실 가르침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행동이다. 상대방이 나보다 모른다는 사실이 무시해도 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그저 이것을 나보다 모르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 역시 모르는 것 투성이니까. 하지만 회사에서 흔하게 겪는 '가르치려 드는' 행동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마음만이 아니라 조직의 운영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잘 모르는 사람을 가르치려 드는 사람은 잘 보지 못했던 것 같다(물론 사람을 가리지 않는 분들도 있긴 하지만). 왜 그럴까? 


가르치려 드는 게 싫은 이유는 상대방이 나를 무시한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무시는 회사에서 은근히 자주 일어난다. 왜냐 하면 회사에서는 무시를 해도 되기 때문이다. !? 회사에는 권력관계라는 것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통상 가르치려 드는 사람은 상급자이고 가르침(?)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하급자이다.    


"그것도 모르느냐. 그래서 무엇을 할 수 있겠냐. 그래서 이 모양이다. 성과가 안 나는 거다. 이건 저번에 이야기하지 않았느냐"


업무상의 부족함을 지적하는 것은 회사에서 당연히 필요한 일이다. 부족한 것이 없더라도 발전을 위해 업무에 대해 피드백을 주고받는 것은 조직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하급자에게만 그러한 지적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라떼는 말이야를 시전하는 상급자 역시 부족하고 불완전한 존재이다. 가르치려 드는 상급자가 실제로는 더 가르침이 필요한 존재일 가능성이 크다. 회사가 변화가 빠른 분야에 있거나 성장이 빠른 상태라면 더욱 그렇다. 


지적질과 함께 가르침을 하사(?)하는 행동은 상급자 입장에서는 사실 신날(?) 수도 있는 일이다. 하급자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니 조직을 위해 기여하는 느낌도 들고, 결정적으로 자신이 권력자라는 서열을 확인할 수 있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반대로 자신이 하급자인 상황에서는 가르치려 드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너무 싫어진다. 혹 어쩌다 용감한 하급자가 자신을 상대로 가르치려 드는 게 아니라 진짜 가르침을 주려하면 '싸가지가 없다'는 말이 목 끝까지 차있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물론 내뱉는 사람들도 있다).


인간은 계속해서 배운다. 배워야 한다. 세상이 변하는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지 느려지지는 않을 것 같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사실 서로에게 좋은 일이다. 배우는 사람은 모르는 것을 잘 알게 되어서 좋고, 가르치는 사람은 가르치는 행위를 통해 새로운 맥락을 익히게 되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이 모여 일하는 조직에서 시너지를 내기에 이만한 것이 또 있을까 싶다. 


이렇게나 좋은 가르침이라는 배움이라는 행동을 권력관계를 드러내는 용도로 활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가르침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단지 가르치려 드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서열의 확인과 무시라는 느낌이 싫을 뿐. 따라서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누군가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워야겠다는 생각도 꼭 함께 하기를 바란다. 가르치려 든다는 오해를 받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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