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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원 May 01. 2021

감정이 상하게 않게 지적하는 법

없다.



그런 것은 없다. 아무리 사려 깊고 공감을 잘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감정이 상하지 않게 지적할  있는 사람은 없다. 자신의 단점을 지적받았을  그것이 아무리 옳은 것이고 바람직한 것이라고 이성적으로는 받아들여도, 감정적으로 이를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같은 지적에도 감정이 상하는 포인트가 사람마다 다를  있다. 누군가는 어조와 억양에 마음이 상하고, 누군가는 특정한 어휘에 마음이 상하며, 누군가는 '누가' 말했느냐에 마음이 상하기도 한다. 모든 사람의 감정을  헤아려서 지적할  있는 사람은 존재할  없다.


내가 잘못되었고 지적하는 사람이 맞다는 것을 알아도 지적질에 기분이 상하는 것은 사실 당연한 것이다. 자신의 부족한 점과 단점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진심으로 허허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래서 감정이 상하지 않게 지적하는 법은 존재할 수 없다.


그렇다고 지적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잘못된 점을 혹은 부족한 점을 알려주고 이를 고쳐나가는 지적은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사람이 모여서 일을 하는 조직에서 지적은 필수적인 활동이다. 그럼 필수적인 활동이니까 거리낌 없이 지적질을 하고 다니면 되는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지적은 감정을 상하게 하고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은 조직 내에 일하는 사람들이 시너지를 일으키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결국 '지적'을 하면서도 감정을 덜 상하게 하는 것 혹은 조직 내에서 시너지를 일으키는 것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조직에서 지적을 잘하는 방법이 된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사실 답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지적을 하는 사람과 지적을 받는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느냐이다.


똑같은 내용의 지적이라 할지라도 '누가 어떻게' 지적을 하느냐에 따라 반응과 감정이 상하는 정도가 달라진다. 지적받는 사람이 잘 되기를 바라는 의도의 지적인지 혹은 지적받는 사람이 다칠 것을 염두에 두고 배려하는 지적인지 등에 따라 지적받는 사람이 느끼는 것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자신을 진심으로 위하는 충고와 조언을 받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자신을 생각해주는 상대방의 마음과 태도에 그러한 충고와 조언이 매우 고맙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충고와 조언도 지적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다만 형식적으로 다를 뿐이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타인이 드러낸다는 점에서 지적과 충고와 조언은 동일한 성격의 것이다.


사실 그런 점 때문에 많은 조직 내의 지적은 충고와 조언과 같은 형식을 띠려고 한다. 충고와 조언은 감정이 상하지 않게 지적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다가 상대방의 감정을 더 상하게 하는 일도 많이 발생한다. 왜 그럴까? 형식적으로 다르다는 것에만 주목했기 때문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지적과 충고와 조언은 사실 같은 것이다. 형식을 아무리 바꾼 들 상대방이 본질적으로 같다고 느껴버리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핵심은 마음이고 관계다. 지적하는 상대방이 왜 이런 지적을 하고 이러한 지적을 통해 내가 어떻게 되기를 바라는지 결국 그러한 마음이 무엇이냐가 핵심이다.  


그런데 지금 이 시간도 예전 그 시간에도 그리고 앞으로 저 시간에도, 조직 내에서 이어지는 지적을 위한 지적에 그러한 '진심'이 존재할까? 혹시 지적을 습관처럼 하고 있는 사람이 조직에 있지는 않는가? 그런 사람 때문에 슬금슬금 그 사람을 피해서 관계가 형성되고 일이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는가? 함께 일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지 않은데 일이 잘 될까? 조직 내의 인간관계는 사적으로 꼭 친해져야 할 것은 아니지만 긍정적인 상호작용이 일어날 수 있는 수준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조직으로 일할 이유가 없다.


지금은 회식문화가 많이 바뀌었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물론 요즘도 그런 곳이 있지만), 집단적으로 술을 마시고(폭음에 가깝게) 진탕 취하는 회식이 일반적이었다. 사실 그러한 회식을 비교적 영리하게 활용했던 리더들은 평소에는 엄하게 지적하고(때로는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회식 자리에서는 술의 힘을 빌려 그런 지적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흔히 말하는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며 부하 직원과의 긍정적인 관계를 만들어 냈었다(물론 그런 시도를 하다가 완전히 실패하는 경우들도 많지만).


혹자는 이제 그러한 회식을 못하니 그런 식으로 부하 직원과 관계를 맺을 수 없다고 한탄하기도 한다. 안타까운 주장이다. 리더 정도 되는 사람이 술의 힘을 빌리지 못하면 타인과 진정으로 관계 맺을 수 없다는 것인가?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꼭 취해야 하는 것인가? 중요한 것은 결국 진심 그 자체다. 


'Honesty is the best policy.'


지적하는 사람이 지적받는 사람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달한다면 지적받는 사람은 지적에 감정이 상하더라도 수긍한다. 겉으로는 자신을 위한다는 식의 조언의 형태를 띠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는 흔히 일어나는 것 같은 '까기 위해 까는' 지적이라면, 과연 지적받는 사람이 그걸 눈치채지 못할까?


조직으로 일한다는 것은 여러 사람들이 공동의 목표를 위해 일하는 것이면서 여러 사람들이 시너지를 내면서 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너지를 내지 못하면 조직은 조직으로서의 가치가 없다. 그러한 시너지에 '지적'은 꼭 필요한 행동이다. 업무에서 발생하는 부족함과 단점은 당연히 보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의 부족함을 본체만체하는 것 또한 조직의 발전을 위해 적합하지 않은 행동이다. 하지만 지적질로 인해 누군가와의 관계가 틀어지고 함께 시너지를 내면서 일할 수 없는 관계까지 된다면 이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결국 핵심은 지적을 하면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좋은 관계의 핵심은 진심 어린 마음이다. 미사여구 가득하지만 자신을 난도질하는 말과 거칠고 무뚝뚝해 보여도 진심 어린 말의 차이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고 있고 느끼고 있다. 지적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자신이 무엇을 위해 지적을 하는지  마음부터 확인해보길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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