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기록 그리고 출발
가다가 내키는 곳이 있으면 그곳으로 향했다. 특별한 목적지 없이 뮌헨의 시내 중심부로 갔다. 아침 시간이라 그런지 상점들은 문을 열고 정리하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별 생각 없이 걷다 보니 사람들이 꽤나 모여 있는 곳에 도착했다. 신시청사(Neues Rathaus)가 있는 마리엔 광장(Marienplatz)이었다.
신시청사의 중앙 종루에는 인형시계 글로켄슈필(Glockenspiel)이 있다. 이 시계는 매일 11시, 12시 정각(5~10월에는 17시 추가)이 되면 사람 크기의 인형들이 등장해 춤을 추는 것으로 유명했다. 마침 나와 아내가 도착한 시간은 11시 40분. 인형시계를 구경하기로 했다. 우리 같은 사람들로 광장은 금세 가득 채워졌다. 햇살이 꽤나 뜨거웠지만 다들 꼿꼿이 한 곳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15분 남짓한 공연(?)은 좀 싱거운 느낌이었다. 별거 아닌 듯한 공연에 수많은 사람들이 숨죽여 지켜보는 상황이 더 놀라웠다. 하긴 나 역시 흥미롭게 지켜보기는 했으니까. 쉬워 보이는 일의 상당수는 사실 어려운 일들이다. 결과물만 보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럴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광장을 벗어나니 바로 큰 시장이 나타났다. 빅투알리엔 시장(Viktualienmarkt)이었다. 먹거리를 파는 곳이 많았고, 사람들도 많았다.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니 큰 비어가든이 나타났다. 이틀 전의 아우구스티너켈러가 생각났다. 햇볕이 짱짱하게 내리쬐는 날씨 덕분에 시원한 맥주 한 잔이 간절해졌다. 그런데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없었다. 둘이 앉을 만한 탁자 근처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한껏 유쾌하게 맥주를 마시고 있어서, 우리만 한가롭게 맥주를 마실 자신이 없었다.
발길 닿는 곳이 아니라 마실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했다. 한번 비어가든에 꽂혀버린 터라 야외에서 꼭 마셔야 했다. 여행 책자를 이리저리 뒤적거려 보니 영국정원이라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여름에는 7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비어가든이 열린다는 문구를 보고 지체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영국정원은 지하철로 몇 정거장 되지 않았지만, 비어가든이 있는 정원 내의 중국 탑까지는 짧지 않은 거리를 걸어야 했다. 더위로 슬슬 땀이 나기 시작할 때쯤 비어가든에 도착했다. 이 곳 역시 사람들은 많았지만 워낙 큰 규모 덕분에 자리는 충분했다.
그냥 좋았다. 공간이 넓고 탁 트여 있는 덕분에 사람들의 말소리도 시끄럽게 들리지 않았다. 맥주를 마시고 프레첼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편안한 시간이었다. 아내는 비어가든의 한국 도입이 시급하다고 이야기했고 나 역시 강력하게 찬성했다.
오후 세 시. 숙소로 들어가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와이프가 아잠교회(Asamkirche)를 가보자고 했다. 사실 유럽을 돌아다니면 교회, 성당은 끝도 없이 마주치게 된다. 덕분에 처음에는 큰 감흥을 가지고 요모조모 살펴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 똑같은 교회나 성당이라는 생각에 대충대충 보게 된다. 그런데 확연하게 다른 건축물을 마주칠 때도 있다. 아잠교회처럼.
외관만으로는 교회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유럽에서 흔하게 접하는 교회는 대부분 고딕 양식의 삐쭉삐쭉한 첨탑을 가지고 있는 것에 반해 아잠교회는 그러한 징표가 없다. 게다가 크기도 작은 편이라 안내책자나 표지판이 없다면 교회라고 생각하기도 힘든 건축물이다.
하지만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가자 다른 세상이 시작되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공간이 빈틈없이 오직 ‘신’이라는 이름으로 채워져 있는 느낌이었다. 공간의 분위기에 압도당해 사진을 찍는 것조차 매우 조심스러웠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관람객들도 조심조심 셔터를 누르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밖으로 나왔다. 뮌헨에 다시 도착한 느낌이었다.
발길과 주심(酒心)이 닿는 곳으로 이루어진 하루는 만족스러웠다. 예전에도 그렇게 보낸 시간들이 있었다. 그냥 ‘가자’라는 한 마디로 이루어지는 여행. 금요일 밤 남자 셋이 아무 이유 없이 강촌을 가서, 뜬눈으로 기차역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새벽 기차로 돌아온 기억. 밤 11시, 제주도라는 한 마디에 광주행 심야버스와 목포행 새벽 버스 그리고 제주행 여객선을 탔던 기억.
사실 그냥 아침에 나서서 해 질 녘에 돌아오는 ‘어디론가’의 여행은 언제나 할 수 있었다. 다만 온갖 핑계들 그리고 걱정과 자조(自嘲)들이 그러한 여행을 방해했을 뿐이었다. 그랬다. 계속 잊고 있었다. 아니 잊으려고 했었던 것 같다. 그냥 느끼고 생각하는 바를 실행하는 것. 삶이 짐처럼 느껴지는 순간부터, 조금이라도 지금의 경로에서 벗어나는 결정은 날 힘들게 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냥 한번 행동한다고 별다를 것은 없는데...... 그러게 말이다.
해가 저물었다. 내일 이곳을 떠나니까 뮌헨의 밤은 한동안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비어가든에서 맥주를 마실 날은 반드시 다시 올 것이라고 믿는다. 이제는 서른여섯 혹은 그 보다 많아질 숫자보다 내 느낌과 의지를 더 믿을 수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