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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원 Jan 03. 2016

프라하 #1
-뜨거운 광장-

여행, 기록 그리고 출발

예상치 못한 더위였다. 뜨겁게 달궈진 돌길은 발바닥에서부터 열기를 느끼게 했다. 낑낑거리며 도착한 숙소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허겁지겁 욕조에 찬물을 잔뜩 받아놓고는 한참을 앉아있었다. 기후이변으로 드물게 찾아오는 현상이라지만 ‘이상고온’에 이렇게나 힘들어할 줄은 몰랐다. 정말 더위에 지친 것인지 아니면 절반 이상 지난 여행 일정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 몸이 무척이나 무기력했다.


잠깐 잠들었다가 프라하의 구시가지로 나갔다. 구시가지 광장에는 언제나 그렇듯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사람들로 가득했다. 세계 어느 도시를 가도 광장은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은 묘한 아늑함이 있다.  그곳은 사람들로 붐비면서도 어디쯤에는 여백이 느껴지고, 큰 건물들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트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광장의 본래 기능을 충실하게 구현해내는 것 같다.     



광장은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런 목적으로 처음부터 기획되고 만들어진 공간이다. 아니면 그런 공간이 광장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역사 속에서 수많은 토론과 결정 그리고 퍼포먼스가 광장에서 이루어졌다. 광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고민할 수 있고, 함께 결정할 수 있으며, 함께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광장의 기능은 지금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광장에 모인 많은 사람들 중 누군가는 목소리가 크고, 누군가는 덩치가 크며, 누군가는 허약하고 누군가는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을 꺼릴 것이다. 하지만 광장에 있는 이상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고 누구나 전체를 위한 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 그것이 광장이라는 공간이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소리를 낼 수 없고 미약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광장 한 귀퉁이에 그 사람의 자리는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사실 모두를 위한 광장의 존재는 민주주의에 필수적이다. 누구나 선거에서 행사할 수 있는 하나의 표를 가지고 있고, 누군가의 표가 다른 누군가보다 클 수도 없고 커서도 안 된다. 모두가 하나의 결정에 만족하는 경우가 드물기에 다수결이라는 수단이 ‘필요악’처럼 등장하게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수결이 절대선이 아니기에 소수가 제시하는 의견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지나치게 교과서적이고 동화책 같은 이야기를 내가 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만 이런 원칙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느껴질수록 더욱 강조되어야 하는 것이다. 함께 사는 삶이기에 다수의 결정을 따르는 것은 필요하지만, 다수결은 절대선이 될 수는 없다. 그래서 다수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논쟁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누구도 항상 옳을 수 없고, 옳다고 여겨지는 순간조차도 틀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매체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제시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아도 광장이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많은 경우 그러한 광장을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무시해버린다는 사실이다. 


다수결에 의해 권력을 가졌다는 것이 절대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결정권을 가진다는 것이 절대선이라면 역사의 수많은 폭군들도 모두 성군으로 불려야 할 것이다. 결정권을 가진다는 것은 광장의 모든 목소리를 고려할 책임이 있음을 뜻한다.(물론 광장의 존재를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기본 전제이기는 하다. 그 전제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는 하지만 말이다.)


수많은 광장이 있었지만, 그 광장 속에서 충분히 이야기가 이루어지고 그 이야기가 실현되는 걸 본 것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광장에서 다양한 이야기가 오가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그런 당연함을 발견하는 것이 부자연스러워진 것은 그저 나만의 느낌일까?      



부패한 당시 로마 교회를 비판하다 파문을 당해 결국 화형을 당한 후스의 동상 아래에서는 사람들이 걸터앉아 광장을 느끼고 있었다. 나 또한 앉아있고 싶었지만 그저 시간을 보내도 될까 하는 무의미한 걱정에 또 다른 사람들처럼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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