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를 읽고
인간의 수명이 얼마나 늘어날지는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서 200년 뒤에 이 글을 다시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아직까지는 ‘없다’라는 대답이 정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시점에서는 인간이 200년이 넘는 시간을 살아남을 것이라고 자신하기 어렵다. 덕분에 인간에게 200년이라는 시간은 무척이나 길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시간이다.
그러나 진화라는 측면에서 200년이라는 시간은 무척이나 짧은 시간이다.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인간이 수렵채집 시기의 식습관을 버리지 못한 예를 제시하지 않더라도, 한 개체의 일생은 종의 진화를 설명하기에는 무척이나 짧은 시간이다.
대부분의 경우 한 개체는 일생을 보내면서 자연선택에 의해, 자신이 속한 종에 대한 도태 혹은 생존의 결정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목격하지 못한다. 왜냐 하면 그 순간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순간’이 아니라 한 개체의 일생보다도 긴 시간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는 삶에서 엄청난 적응의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생활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인간이라는 종의 생존과 절멸이 결정된다면 삶의 매 순간은 처절한 전쟁과도 같을 것이다. 요컨대 변화하는 환경에의 적응을 끊임없이 요구받는 인간이지만 진화라는 측면에서는 아직 정신 못 차릴 만큼 급박하게 진행되는 상황은 아닌 셈이다.
그런데 요즘의 세상에서 인간은 커다란 문제를 안고 있다.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저자의 관점을 모두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다음에 제시되는 시간의 흐름은 대부분 수긍할 수 있는 것들이다. 2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 진화, 7만 년 전 인지혁명(창작하는 언어의 등장), 12,000년 전 농업혁명, 5백 년 전 과학혁명, 2백 년 전 산업혁명. 혁명이라 불리는 각각의 전환점이 가지는 의미들을 무시하고 단순하게 진행되는 데 사용된 시간만 따져본다면 그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수준이다. 인지혁명까지 13만 년, 농업혁명까지 58,000년, 과학혁명까지 11,500년, 산업혁명까지 300년. 처음에는 두 배가 빨라지는 것 같더니 최근에는 몇십 배가 빨라졌다.
사실 이렇게까지 거시적인 현상을 살펴보지 않더라도 당장 우리의 삶에서 변화의 빠른 속도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하고 나서 이렇게나 빠르게 보편화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지금의 장년층이 당연하게 생각했던 삶의 기준들의 상당수들은 지금의 청년층에게 사실상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는 것은 생존을 위해서는 좋지 않은 상황이다. 변화에 생존하기 위해서는 적응이 필수적인데 이것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낳을 수밖에 없고, 적응의 전략이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 또한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현상은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한국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전통적인 규범과 농업 중심의 생활양식이 삶의 중심인 어린 시절을 보낸 지금의 50대 이상에게 지금의 세상은 어쩌면 하루아침에 변해버린 것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취업을 위해 그리고 성공을 위해 계속 ‘조금 더’를 요구받는 청년에게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미치도록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 덕분에 뜬다 싶으면 유사 업체가 우후죽순처럼 등장하는 요식업 분야 역시 그런 경향을 잘 보여준다.
이렇게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가는 세상의 모습 덕분에 우리는 언제나 더욱 빠른 적응과 행동을 요구받는다. 그런데 인간이라는 종이 그렇게나 빠르게 자신의 삶을 순간순간 바꾸어 낼 수 있는 존재일까? 생존을 위해서는 변화의 속도를 넘어서는 적응의 속도를 가져야만 하는 것일까?
이와 관련해 역설적이게도 저자는 그야말로 혁명적 전환을 가져온 현대사회에 대해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과연 예전보다 더 행복해졌는가?’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머리를 쥐어뜯을 만큼 고민해본 적이 없다. 만약 무엇을 가지는 것이 행복이라면 행복은 쉽게 달성될 수 있었겠지만, 가지려고 하는 무엇의 끝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모습이다.
한국의 상황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통상 진화라는 측면에서 순간과도 같은 개별 인간의 일생에서 생존을 위한 적응이라는 상황을 목격한다는 것은 엄청나게 놀라운 일이지만, 그만큼 오늘날의 한국은 빠른 변화에 대한 욕망이 내재화되어 있는 곳이다. 하지만 빠른 변화에 대한 빠른 적응이 행복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정확히는 그것이 맞는 결론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만이 존재하는 것 같다.
인간의 능력은 놀라울 정도로 커졌지만 인간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는 저자의 지적처럼, 지금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일지 모른다. 과거 어느 때보다 강력한 힘을 떨치고 있지만 이 힘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생각이 거의 없는 사피엔스의 위험성을 걱정하는 저자의 경고가, 급하게 꾸려낸 포스트 알파고 프로젝트에 대한 일침처럼 느껴지는 것은 필자만의 묘한 기시감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