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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원 May 20. 2016

스스로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진지한 고민

[명리- 운명을 읽다]를 읽고

[출처 : 다음]


올해 1월이었던 것 같다. 우연히 ‘노유진의 정치카페’를 듣다가, 음악평론가 강헌이 명리학에 관한 책을 출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음악에 대한 조예도, 명리학에 대한 조예도 깊지 않은 나였지만, ‘강헌’이라는 이름과 ‘명리학’이라는 단어는 나를 묘하게 끌어당겼다.      


하지만 자주 방문하는 서점에서 발견한 ‘명리’라는 책을 쉽사리 펴보지는 못했다. 사실 관상, 손금, 별자리, 타로 등을 비롯한 온갖 잡기에 관심이 많고 실제로도 이것저것 살펴본 경험이 많은 필자지만 왠지 이 책을 살펴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그때 팟캐스트에서 들었던 책이 여기 있구나 하는 수준의 반응에서 머물렀다. 사실 관심이 조금이라도 가는 책이라면 서점에서 도입부나 목차라도 뒤적이는 필자의 성격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렇게 필자는 서점에서 부지런히 다른 책들을 뒤적거렸고 시간은 흘렀다.     


서점의 책들은 기본적으로 분야별로 구분되어 진열되고, 그중 몇몇의 책들은 좀 더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된다. 평소처럼 필자는 눈에 잘 띄는 곳과 분야별 서가들을 방황하듯 오갔다. 그러다 문득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곳에 ‘명리’가 놓여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 번 지나쳤던 책이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평소 습관처럼 책을 들었고 읽기 시작했다. 사람의 입장에서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이야기보다 재미난 것이 또 있을까? 저자인 강헌의 살아온 이야기가 술자리에서 구성진 만담을 듣는 것처럼 머릿속에 착착 감겨왔다.      


소설가가 되려고 국문과를 갔다가 재능이 없다 느껴 좋아하는 음악을 좇아 음악대학원으로 진학. 좋아하는 것과 밥벌이는 달라서 졸업 후 영화판에 뛰어들었지만 우연히 쓴 고 김현식에 대한 평론으로 음악평론가가 되어 먹고 산 사람. 그러다 죽음 직전의 상황을 경험하고 명리학을 공부하게 된 지금까지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필자는 책 속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재미를 느꼈다.     


사실 재미라는 표현보다는 공감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필자의 삶 또한 강헌의 삶과 비슷한 느낌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학문을 동시에 접할 수 있다는 말에 끌려 대학은 교육학과를 진학하고, 정치/사회이론을 공부하고 싶어 정치학과로 석사를 마치고는, 금융에 대해 알고 싶어 은행에서 일한 뒤 지금은 다른 것을 꿈꾸는 필자의 삶은 마치 강헌의 삶처럼 갈지자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자신에 대해 알고 싶어 명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저자의 말처럼, 필자 역시 ‘나’라는 존재에 대한 궁금증의 해답을 찾아가는 방법으로 이 책 그리고 명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명리학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흔히 ‘미신’이나 ‘점’이라는 단어를 연상하기 쉽다. 물론 근대의 과학(science)이라는 개념에 비추어보면 명리학의 음양이나 오행과 같은 개념들은 어이없는 접근일 수 있다. 그러나 객관이라 신봉되는 과학의 세계조차 무지의 영역이 훨씬 많다는 점 그리고 지금까지도 명리학이 사람들에게 꽤나 영향력 있게 작동한다는 점은, 명리학을 그저 무가치한 것으로만 여길 수 없게 만든다.     


특히 책의 초반부에서 저자가 언급하듯이, 명리학은 그저 길흉화복을 예측하기 위함이 아닌 인간이 자신에 대해 성찰하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스스로 찾기 위한 하나의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저자 스스로도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경우는 30%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만큼 운명(運命)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정해진 명(命)을 운용하는 것(運)이기에 자신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결국 명리학은 결정된 것이 없으니 결정될 때 활용될 수 있는 것들을 꼼꼼히 살펴볼 필요에 의해 이루어지는 접근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모든 사람이 명리학자가 되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과 필자의 마음은 사실 동일하다. 갈수록 팍팍해지는 삶과 더 큰 불안이 느껴지는 미래를 직감하는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단단한 자아를 만드는 것이다. 명리학을 통해 자기를 분석하고 자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수 있다면, 어떤 길흉화복의 예측보다도 사람들은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명리학의 깊이와 넓이를 감안할 때 이 책은 명리학으로 들어가는 문을 두드리는 수준의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부처가 될 수 없듯이 이 책을 어느 정도 읽고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사주팔자에 대해서는 나름의 견해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누군가에게 재미로라도 자신의 사주팔자에 대한 견해를 듣는다면, 그에 대한 자기 나름의 판단 기준을 이 책을 통해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필자처럼 호기심이 많다면 책을 마친 지금도, 때때로 읽었던 부분들을 다시 읽으며 외우기도 하고 고민하기도 하는 상황을 경험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추가적인 공부를 위해서는 다른 책을 더 많이 봐야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말이다.      


너무나 용해서 일부러 약간씩 틀리게 썼다는 토정비결의 이지함 선생이 되기를 바라지는 않더라도, 강헌이라는 사람의 삶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책의 재미는 보장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책의 도입부에만 주로 다루어지기는 하지만) 아니면 가끔씩이라도 오늘의 운세를 기웃거리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이 책을 통해, 가벼우면 가벼운 대로 심각하면 심각한 대로, 자신의 모습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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