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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원 May 15. 2017

대구의 정치성향에 관한 지극히 개인적인 다학제적 잡설

내 아버지는 경북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수십 년을 사셨다. 나 역시 20년 가까이를 대구에서 생활했지만 서울로 대학을 진학했고 꽤 오랜 시간을 서울에서 생활했다. 일반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것이지만, 나와 나의 아버지가 동일한 사람에게 투표한 적은 없었다. 관련해서 우리 부자는 대통령선거때가 되면 누구를 뽑을 것인지에 대해 소소한 의견교환을 해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버지가 자신의 견해를 나에게 강요하신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통상 우리 부자의 의견 교환은 선거 후에 진행되었고, 각자 나름의 이유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정리되곤 했었다. 이번 선거 역시 그러했다.


너희들은 문재인 찍었지?


난 대답을 하지 않고 누구를 찍으셨냐고 물었다.

홍준표지


평상시 같았으면 으레 그러려니 했겠지만 이번에는 의외였다. 왜냐 하면 불과 선거 한 달 여 전에 아버지를 만났을 때, 아버지는 유승민에게 많은 관심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아버지는 초등학교만 졸업하셨고, 스스로 지식과 정보를 익히기 위해 노력하지는 않는 성향이시다. 그런 아버지가 유승민에 대해 관심을 드러냈던 이유는 순전히 이회창 때문이었다. 이회창에 대한 강한 호감을 가지고 계신 아버지는 유승민의 대선 출마 선언에 등장한 이회창의 사진을 우연히 신문에서 보시고 내심 유승민을 마음에 두신 것 같았다.


그런 아버지가 홍준표를 찍은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그래서


유승민은요?
유승민? 유승민은 왜 갑자기? 유승민은 안돼. 배신자잖아. 지를 키워준 게 누군데.

여기까지만 들으면 미디어에서 흔하게 주입된 이른바 유승민 배신자론이 대구에 작동한 것처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 궁금증은 그 담론이 적용된 방법이었다. 내가 알기로 아버지가 이제 TV를 통해 시청하시는 주된 방송은 드라마다. 뉴스를 보신다고 해도 지상파 정도이지(물론 드라마 역시 지상파만 보시는 것 같다) 종편을 보실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다. 스마트폰이나 PC를 통한 인터넷 사용은 전무하다. 정확하게는 사용이 불가하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물론 카톡과 같은 SNS는 언감생심이다. 가끔 신문을 보시기는 하지만 2주에 1회 정도 철 지난 신문을 보시는 수준이다.(물론 놀라운 것은 그 간헐적인 신문 체험에서 유승민을 발굴해내셨다는 점이긴 하지만)


그런데 어떻게 그것도 불과 1개월 만에 본인 입으로 내뱉은 유승민이라는 이름을 기억에서 지우고 홍준표를 택할 수 있었을까? 이어지는 썰은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가설들로 그야말로 썰이다.


가설1) 정치적 접근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그리고 박근혜로 이어지는 장기간 동안 형성된 TK라는 정치적 세력의 일원으로, 아버지의 정치의식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세력은 오랜 기간 동안 이 지역에 맹주로 자리잡은 자유한국당이라는 가설이다. 사실 아버지 개인에게 이득을 가져다 주는 것은 없었지만, 이 지역에서 대통령이 나오는 것만으로도 아버지는 이른바 정치적 효능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 가설이 맞으려면 아버지의 최초 선택은 유승민이 아니어야 했을 것이다. 게다가 아버지의 최초 선택이 유승민이었던 이유가 이회창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이 가설은 희박해 보인다.


가설2) 경제적 접근

이 가설은 필자가 대학 때 한창 고민했던 가설이다. 실질적으로 경제적이든 정치적이든 이득을 보는 사람 혹은 세력이, 자신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누구를 뽑으라' 정확하게는 '누구를 뽑아야만 삶이 나아진다'라는 담론을 퍼뜨리고 다녔다는 가설이다. 고용주 혹은 큰 거래처의 사장에게는 개인적인 이익과 연결되는 후보 선택이지만, 자신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른바 '을'의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는 '이번 선거에서 누군가가 되어야 일반적인 삶이 나아진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물론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이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얼마나 영향을 끼치겠느냐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집단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한국에서, 특정한 정치적 선택이 모두를 위해 좋은 것이라는 이야기가 별다른 정치적 성향이 없는 사람에게 그것도 자신보다 사회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는 사람이 이야기하는 상황이라면 그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이를테면 자신에게 '갑'인 사람의 경제적 이해를 자신의 경제적 이해로 인식하는 방식인 셈이다.)


이 가설이 맞으려면 아버지의 현재 경제적 상황이 모종의 갑을관계로 구성되어 있어야 하는데, 아파트 경비일을 하시는 아버지에게 모종의 갑을관계가 있기에는 어려워 보인다. 물론 고용주가 있는 관계이지만 특정한 회사에 강하게 소속되어 삶을 통제받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이러한 가설이 실현되는 장면을 상상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가설3) 문화적 접근

늘 해오던 것 대신 다른 것을 선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전라도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선거에서는 전라도가 지지하는 쪽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대구라는 지역에서 투표라는 행위를 할 때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에 대한 거북함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가설이다. 이러한 가설을 적용한다면 사실 문재인 외의 다른 후보들이 다 해당이 되어야 하는데 이것만으로는 유승민에서 홍준표로 선호가 변경된 것을 찾아낼 방법이 없다.


가설4) 사회적 접근

투표라는 행위는 정치적 의사표시이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응당 해야 하는 것으로, 그 선택은 이른바 대세를 따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가설이다. 여기서 '대세'는 전국적인 대세가 아니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그것도 이러한 주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 사이의 대세이다. 아마 필자의 아버지는 직장 동료들 그리고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대선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으리라.(사실 필자의 아버지가 먼저 이런 이야기를 활발하게 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말수가 많은 편도 아니시고 먼저 말을 건네는 일도 무척 드문 분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유승민에 대한 언급이 아버지의 입에서든 누군가의 입에서 등장했을 것이고, 그리고 누군가가 '배신자'를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만큼 키워준 게 누군데'라는 이야기들은 아마 필자의 아버지에게 유승민을 제외할 이유를 만들어주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주목할 부분이 있다. 필자의 이러한 가설이 맞다는 전제하에 나오는 의문은 그러면 왜 홍준표인가이다. 역사적으로 만들어졌음직한 공고한 TK의 정치의식 속에서 박근혜를 지지하고 그에 맞추어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를 지지하게 된 것일까? 사실 이에 대한 대답은 부정적이다. 그랬다면 아버지는 처음부터 홍준표를 지지했을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버지는 박근혜 탄핵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그에 대한 변명이나 변호를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현 상황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잘못한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해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준표가 선택된 이유는 주변의 대세가 홍준표였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겠노 그래도 찍던데 찍어야지'라는 정서와 함께 대안이 될 뻔 했던 안철수의 TV토론에서의 자폭이, 필자의 아버지에 영향을 끼친 이른바 대구의 '대세'를 만들어냈을 것이라고 본다. (사실 전통적인 지역 정서를 감안할 때 홍준표가 던진 메시지들은 너무 과했다.)


일견 씁쓸한 듯한 분석의 결과지만 내가 더 중요하게 들었던 이야기는 아버지의 이어진 말이었다.


대구는 멀었다.

아마 최종 투표결과가 대구, 경북을 제외한 전 지역이 파란 색이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자세한 뒷말은 없었지만 아버지는 대구의 정치적 성향 혹은 인식이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대세가 이러하니까. 그런 점에서 아버지에게 투표는 정치적 행위이기 이전에 사회적 행위인 셈이었다.



언뜻 투표가 정치의사의 표출이 아니라 사회적 행위라는 점 그것도 대세를 쫒는다는 점이 서글프게도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바꾸어 생각하면 좋은 대세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으로, 세대 간의 정치에 대한 시각 차이를 시시비비의 영역에서 벗어나게 만들 수 있다고 여겨진다. 일반적인 한 세대가 경험하기에 벅찰 정도로 급격하게 변화한 한국 사회에, 세대 간의 시각 차이는 결국 누군가 옳고 틀리다는 접근보다는 무엇이 대세가 되고 있는지를 그리고 왜 그런지에 대해 계속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에서 극복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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