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이야기 정말 많이들 한다. 그래서 많은 회사나 조직의 사장님들 역시 조직혁신을 위해서 조직문화를 바꾸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수시로 언급한다. 덕분에 크고 작은 많은 조직들에서는 조직문화를 바꾸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프로젝트의 상당수가 실패한다는 점이다(특히 한국의 경우에). 통계적으로 측정해 증명할 수는 없겠지만 새로운 시도가 잘 정착되었다는 사례를 접해보진 못 했던 것 같다. 물론 성공한 사례가 아예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현재 시도되고 있는 사례들 역시 무조건 실패하리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상당수의 조직문화 혁신 프로젝트들은 시작은 거창하게 끝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변화와 혁신을 부르짖는 상당수의 대기업에서 조직문화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나 팀은 늘 새로운 프로젝트를 찾아 헤매기 일쑤다. 기존의 프로젝트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니 새로운 것이라도 해야 일을 한다는 표시를 낼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은 사실 한국의 상황에서 당연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조직문화란 조직 내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말한다.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용어에는 매우 디테일한 것부터 엄청나게 큰 부분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색 구두는 암묵적으로 용납되지 않는다든가 어떤 류의 농담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든지와 같은 것부터 전사적으로 호칭을 어떻게 한다든지와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살아가는 방식'은 사실 많은 경우 불문율로 존재하고, 그 구체적인 모습은 '어색한 것'과 '당연한 것'으로 표현된다. 신입으로 입사하거나 이직 등을 통해 조직을 옮겨 본 사람이라면, 평소 자신의 생각 혹은 이전에 속했던 조직에서는 어색하거나 당연했던 일들이 새로운 조직에서는 적용되지 않고, 다른 '어색한 것'과 '당연한 것'을 만나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조직문화가 바뀌기 어려운 이유는(특히 한국에서 더욱 힘든 이유는) 바로 이러한 '어색한 것'과 '당연한 것'을 만들어 놓은 것이 조직의 리더(들)이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상명하복 문화가 강하게 형성되어 있는 한국에서, 리더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어색한 것'이 되고 그 반대의 것이 '당연한 것'이 되는 것은 일견 당연한 현상이다. 업무와 관련된 이른바 공적인 의사결정이 아니더라도 조직 내에서 이루어지는 수많은 의사결정에서, 리더의 견해가 가지는 힘의 크기는 매우 크다. 물론 세상 어떤 조직도 그러한 점은 비슷하겠지만, 한국이 그중에서도 매우 큰 편이라는 것은 다들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조직문화를 바꾸라는 것은 결국 리더가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조직문화를 바꾸라고 사장님이 지시할 필요가 없다. 사장님이 바뀌면 나머지는 알아서 바뀐다. 특히 한국에서는 말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할까? 아직 성공과 실패를 논하기는 어렵지만 최근 한국의 대기업에서는 직급 단순화, 수평적 호칭을 도입하는 것이 일종의 유행이다. 올해 3월 대대적인 인사제도 개편을 하면서 임직원 간 호칭을 '님'으로 만든 삼성전자의 경우 관련해 재밌는 기사가 있다.
2017-3-15 /서울신문/ 메일에선 '님' 얼굴 보면 '상무님'.. 도로 삼성전자?
삼성전자가 직급 파괴 실험을 하면서 임직원 간 공통 호칭을 ‘님’으로 통일했지만 현업 부서에서는 여전히 낯설다는 분위기다. 부서 간 메일을 주고받을 때는 원칙대로 ‘님’이라고 써도, 실제 얼굴을 보고 말할 때는 깍듯이 기존 직급으로 부른다는 것이다. 시행 초기라 새로운 제도가 안착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회사 측 입장이지만 임원들이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도로 삼성전자’가 될 것이라는 게 직원들 생각이다.
14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공식적으로 임직원 간 호칭은 ‘님’이다. 팀장, 그룹장, 파트장뿐 아니라 직책이 없는 담당 임원도 ‘님’ 일뿐이다. 지난해 6월 삼성전자는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고 창의적·수평적 조직 문화 조성을 위해 올해 3월부터 일본식 호칭인 ‘부장님’ ‘차장님’ 대신 ‘님’ 또는 ‘프로’, ‘선후배님’ 등으로 부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공개적으로 이 같은 사실을 알린 건 그만큼 변화가 절실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사내 게시판에는 “우리가 호칭 때문에 수직적 문화가 안 바뀌었느냐”는 비판 글도 올라왔지만, 회사는 내부 캠페인을 벌이는 등 호칭 문화 개선에 힘써 왔다.
문제는 임원들이다. 수원사업장 등 현장에서는 직책이 없는 임원에 대해서도 ‘전무님’ ‘상무님’ 등 직급으로 부르는 것으로 사실상 공식 방침을 정했다. 수원사업장의 한 사업부장(부사장)은 최근 임원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근무기강을 지적하며 “아래(직원들)에 잘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또 “부장들은 워크스마트에서 제외한다”면서 전사 차원에서 추진하는 제도마저 허용하지 않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워크스마트는 직원들이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근무 환경을 유연하게 바꾸는 캠페인으로 주 40시간을 채우면 하루 4시간 근무도 허용하는 자율 출퇴근제가 대표적이다. 삼성전자의 한 간부급 직원은 “요즘 들어 과거의 군대식 문화로 돌아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측은 “어색하긴 해도 일부 직원들은 님으로 부른다”면서 “직원들 출근 시간만 봐도 워크스마트 제도는 잘 정착됐다”고 말했다.
기업 내부 사정을 모르는 필자이기에 위의 기사 이후 삼성전자 내부의 조직문화 혁신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단 한 가지만은 확신할 수 있다. 조직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조직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하위 직원이 아니라 극히 일부를 차지하는 조직의 리더(들)이며, 따라서 어떠한 조직문화 혁신도 리더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새로운 조직문화를 위해 모든 걸 바꾸어도 CEO가 자신에 대한 특권을 포기하지 못 하거나 자신이 겪을 불편함을 감수할 수 없다면, 조직문화는 결코 바뀔 수 없다. CEO가 예외로 남는 한 그 아래의 작은 권력들(임원 등) 역시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예외로 남으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러한 일들은 외부적으로 보기에는 중요하거나 거창한 것으로 보이지 않기에 예외로 남으려는 시도 또한 강할 수밖에 없다. 그런 예외들이 결국 처음의 거창한 조직문화 혁신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다.
사실 기존 한국의 발전모델은 전형적인 따라잡기식 성장모델이었기 때문에, 방법은 정해져 있고 빨리 가기만 하면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전형적인 상명하복식 의사소통 구조가 효과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시대에 그러한 방법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이미 한국은 그리고 규모가 큰 대기업들은 따라갈 상대 대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 시장을 개척하지 않으면 더 성장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그래서 너도나도 창의성과 혁신을 부르짖고 있다. 하지만 그런 창의성과 혁신을 가져다 줄 조직문화는 목이 터져라 변화를 외치는 리더 당신이 불편해져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