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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원 Dec 02. 2015

로마 #2
-숫자와 사람사이의 부등호-

여행, 기록 그리고 출발

정해진 온도가 되면 에어컨은 더 이상 냉기를 내뿜지 않는다. 숙소의 에어컨은 그 온도가 매우 낮았던 것일까? 리모컨을 아무리 눌러도 에어컨이 꺼지지 않은 덕분에, 새벽녘부터 이불속에서 이렇게 저렇게 버텼지만 결국 일찍 일어났다.      


로마는 바티칸만 보기로 했다. 사실 수많은 건축물과 문화재로 가득한 로마지만,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소매치기로 악명 높은 로마를 달가워하지 않았던 와이프와 이미 십 년 전에 와서 큰 아쉬움이 없었던 나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박물관의 개관시간보다 일찍 도착했지만, 이미 엄청난 인원이 줄을 서 있었다. 거의 1시간 30분여를 기다려 박물관에 입장했다. 벽돌을 차곡차곡 쌓으면 빈틈이 생기지 않는 것처럼 시대별 그림들이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대부분이 성화(聖畵)인 수많은 그림들에서 내 눈에 이채로웠던 것은 몇 편 되지 않는 현대의 그림이었다.                          


[피에타, 빈센트 반 고흐]                                                                                         [포옹, 페드로 카노]


고흐가 피에타를 그렸다는 사실이 놀라우면서도 당연하게 다가왔다. 아들의 생이 끝났다는 한없는 슬픔 그리고 동시에 시작되는 불멸의 탄생. 본인의 그림만큼이나 자신의 감정이 양극단을 쉼 없이 오갔을 고흐에게, 피에타는 당연히 그려낼 수밖에 없는 주제였을 것이다.     


한참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누구인지 무슨 상황인지 알 수도 알 필요도 없었다. 두 손으로 그저 서로의 등을 끌어안고, 가슴을 맞닿은 것만으로 충분했다. 이름도 생경한 페드로 카노(Pedro Cano)의 포옹(Embrace) 앞에서, 그저 저 둘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중생 눈에는 중생만 보이는 것처럼, 피에타든 포옹이든 사람들이 서로 어루만지는 그림에 눈이 가는 건 그만큼 사람 사이의 따뜻함을 내가 원하고 있어서 일까? 아니면 툭하면 숫자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숫자 안에 살아 숨 쉬는 사람을 쉽게 무시해버리는 지금 이 시대 때문일까?     



바티칸 박물관과 산 피에트로 대성당까지 둘러보고 숙소로 향했다. 지하철역에서 표를 사려고 보니 자동판매기는 동전만 사용할 수 있었다. 역 인근의 타바끼(우리 식의 편의점)를 가서 가지고 있는 최소 단위인 20유로 지폐를 내고 승차권 두 장을(1.5유로 × 2) 사려고 했다. 주인은 잔돈이 없다며 한사코 안 된다고 했다. 강하게 거절하는 손바닥 아래의 매대에는 1유로짜리 다섯 개 묶음이 줄을 맞춰서 진열되어 있었다. 무엇인가를 더 산다면 그 묶음 중 일부를 받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작전을 바꿔 그 옆의 레스토랑에 가서 냉장고에 있는 콜라 한 병을 집어 들었다. 5유로. 이 곳의 주인 역시 20유로를 주자 아예 안 팔려고 했다. 짜증도 많이 나고 어이도 없었지만, 시간을 더 허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통하지 않을 영어 대신에 안쓰럽고도 불쌍한 눈빛으로 주인에게 지폐를 계속 내밀었다. 결국 식당 주인은 큰 인심 쓰듯 돈을 거슬러 주었다.      


와이프는 이미 화가 단단히 났다. 하지만 일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간신히 숙소로 돌아와서는 다음날 떠날 기차표를 예약하기 위해 테르미니역으로 갔다. 유레일패스를 개시한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개시한 곳에서 예약은 할 수 없다고 하여 근처에 있는 티켓 자동판매기로 갔다.(이탈리아 기차는 반드시 예약이 필요함) 밀라노까지 한번 그리고 밀라노에서 스피츠(스위스)까지 한번 이렇게 두 개의 티켓이 필요한데, 스피츠로 연결되는 티켓은 몇 번이고 기계를 바꿔가며 해봐도 예약이 되지 않았다.      


그제야 눈에 들어온 ‘International'이라고 크게 쓰여 있는 창구 그리고 그 앞에 진을 치고 있는 수많은 백패커들. 대기 순번을 알리는 번호표를 뽑았지만, 내가 받은 번호 앞에는 150명도 넘게 남아 있었다. 수많은 ’international' 여행객들이 이렇게나 오래 기다려야 하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밀라노에서 있는 세계 엑스포 때문인지 엄청나게 많은 티켓 자동판매기가 설치되어 있음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2시간 정도 후에야 간신히 예약을 할 수 있었다.     


내가 그들의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그때만 그랬던 것일까? 시간이 걸린다거나 일의 절차와 방법을 준수하는 것에는 크게 불만이 없다. 다만 그저 자신의 입장에서 잔돈을 지급하는 것이 번거롭고, 새로 설치된 기계가 100% 작동하지 않아도 상관없기에 그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자신의 이익, 자신의 지갑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으면 어찌되든 상관없다'라는 문장이 서글프게 머릿속을 맴돌았다.    


부정적인 것이 우연이라도 연속으로 마주치게 되면 인상으로 남아 쉽사리 변화하지 않는 것처럼, 십 년 만에 온 로마의 인상은 좋지 못했다. 더욱이 처음 온 와이프는 우연으로 마주친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다음날 아침 출발을 위해 짐을 꾸리다가 그냥 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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