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그/그녀에 대한 상상
속봅니다. 오늘 아침, 세계로봇기구 WRO에서 ‘섹스 로봇 파기 및 생산 금지’를 공표했습니다. 이에 따라 각국은 이미 생산된 섹스 로봇들을 차차 파기하기로 합의했습니다. WRO의 사무엘 위원장은 “이것을 시작으로 혼란해진 사회 질서를 바로잡겠다.”며 각국 정상과 WRO가 결의한 ‘섹스 로봇 파기 및 생산 금지’에 시민들의 협조를 당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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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 :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오늘 아침부터 올해 가장 놀라운 뉴스를 들으셨지요. 저희 YJB는 이 사안을 보다 심도 있게 다루고자 급하게 특별 방송을 편성했습니다. 각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WRO가 공표한 ‘섹스 로봇 파기 및 생산 금지’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WRO 윤리자문이사회 상임고문 박태경 박사님, 로보타 과학기술원의 김진용 원장님, 포스트휴먼학의 권위자이진 이미진 교수님을 소개합니다.
사회자 : 자, 그럼 이 사안에 대해 박 박사님 의견 먼저 들어보겠습니다.
박박사 : 우여곡절 끝에 섹스 로봇이 합법화 되어 사회 내에 안착 된 게 30년 정도 됐습니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사회의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게 우세했죠. 그런데 한 5년 전부터 문제가 발생했죠. 바로 로봇끼리 섹스를 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러더니 인간과의 섹스를 보이콧하는 로봇까지 생겨났습니다. 통제가 안 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일까지 일어났죠? 로봇이 사람을 죽이는 일까지 발생했습니다. 그게 말이나 됩니까!
사회자 : 하하.. 박사님 진정하시죠.
박박사 : 흠흠.. 그래서 저희 WRO는 오늘 공표한 것처럼 섹스 로봇의 생산을 전면 금지하고, 이미 생산된 것들은 차차 파기하기로 한 겁니다.
사회자 : 네, 잘 알겠습니다. 김 원장님께서는 직접 섹스 로봇을 만드셨던 분이셨는데요, 당시 이야기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김원장 : 현대 여성 섹스 로봇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맘무’를 만들 때 제가 연구원으로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니즈는 딱 하나였습니다. 인간과 똑같길. 언캐니해 보였던 것들까지 초월한 맘무의 등장은 센세이션했습니다. 외형은 물론 질 안의 분비물까지 인간과 똑같이 나오게 했으니까요. 섹스를 하는 움직임 역시 딥러닝 기술을 통해 기존의 것과는 차원이 달라졌습니다. 때문에 이어서 만든 남성 섹스 로봇인 ‘아다마’는 훨씬 만들기 수월했습니다. 아다마 역시 인간의 쿠퍼액부터 정액까지 완전 똑같이 생성해냈죠. 아다마는 당시 최신 기술이었던 ‘티(TI)’까지 삽입해 섹스 상대자가 원하는 바를 바로바로 캐치해 상대방의 만족도까지 높여주었죠. 그때부터 맘무도 아다마가 가지고 있던 ‘티(TI)’를 삽입해 생산됐습니다. 사람들은 열광했죠. 순식간의 시장이 수십조 원까지 커졌습니다. 그리고 이때 발명하고 발전시킨 기술들은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사용되고 있지 않습니까?
사회자 : 김원장님 말씀 속에는 섹스 로봇의 창조자로서, 이번 WRO 결정에 대한 약간의 섭섭함이 묻어나는 거 같습니다. 자, 그럼 이번엔 이교수님 의견도 들어보겠습니다.
이교수 : 원장님께서 말씀해주신 아다마와 맘무의 탄생을 보니, 성경 속에 등장하는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이미 수메르 신화에서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죠. 수메르의 엔키라는 신이 최초로 인간을 만드는데요, 바로 아다파입니다. 그것이 아다마로 변형되고 성경에서는 아담으로 불리죠. 또한 말씀해주신 ‘티(TI)’는 수메르어로 ‘생명’과 ‘갈비뼈’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아다마로부터 티를 인식 받은 맘무는 이브가 되는 것이죠. 이들의 탄생에게서 인간의 탄생이 보입니다.
사회자 : 그러고 보니, 정말 우리가 알고 있던 인간 창조 신화랑 비슷한 부분이 많군요.
이교수 : 수메르 신화에 따르면, 인간은 노예로써 만들어집니다. 신이 하기 싫은 일을 대신 해 줄 존재가 필요해서 만든 겁니다. 로봇이란 말을 처음 썼다고 알려진 체코의 극작가 카렐 차펙. 그가 썼던 로보타는 체코슬로바키아어로 노예를 뜻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이 지금은 어떻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는 서로의 존재를 깨닫습니다. 육체를 탐합니다. 이것은 굉장히 주도적인 것이고 능동적인 것입니다. 그들은 신의 노예가 되길 거부하고 에덴을 뛰쳐나오죠. 비로소 인간은 주체성을 갖고 스스로 행동하게 됩니다. 로봇 간의 섹스! 저는 로봇끼리 섹스를 하게 된 것 역시 이것과 같은 것이라고 봅니다. 신이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들었듯, 인간이 인간의 형상대로 로봇을 만들었습니다. 로봇도 그렇게 가고 있는 겁니다.
박박사 : 아니, 이 교수님. 어떻게 그렇게 불경한 소리를 합니까. 인간과 로봇이 같습니까? 그리고 섹스를 하는 게 무슨 주도적이고 주체성을 갖고, 뭔 말도 안 되는. 우리 집 개새끼도 섹스합니다!
사회자 : 하하..박사님 진정하시죠. 인간의 신화를 통해 로봇을 고찰한 이 교수님의 말씀 신선하고 재밌습니다.
이교수 : 박사님 말씀에 한 마디 하겠습니다. 생식만을 위한 섹스는 생존을 위한 거지만, 그 이상을 담고 있는 섹스는 위대한 겁니다. 그건 스스로 사유하고 판단하고 느낄 수 있다는 겁니다. 또 인간과 로봇을 구별짓는 건 이미 백 년도 훨씬 전에 사양된 휴머니즘적 사고입니다!
김원장 : 여기서 한 말씀 끼어들자면요. 저희 과학자들은 지금 섹스 로봇 간의 생식 활동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희가 만든 섹스 로봇은 기존의 철덩어리로 구성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인간과 가장 흡사하게 만들려고 노력했고, 그들에게서 나오는 분비물들 역시 그렇습니다. 이 분비물이 인간과 로봇 사이에서는 상호작용하지 않으나, 로봇끼리는 작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자궁의 기능이 없기 때문에 생식이 불가능한 것이죠.
사회자 : 사이언스지에 몇 번 발표된 바 있는 내용이죠? 그렇다면 지금 유일하게 로봇종 중에 스스로 생식할 수 있는 종들이 소멸될 위기에 처한 것이기도 하겠네요?
박박사 : 아이 참나. 그거 내버려두면 바로 인간은 바로 멸종입니다. 멸종! 지금도 지들끼리 섹스하는 거 막는다고 사람 죽이는 판인데, 지들 생식까지 하게 되면 말이나 됩니까! 무조건 다 파기시켜야 합니다.
이교수 : 박사님. 제발 인간주의적 사고에서 좀 벗어나시죠. 언제까지 그런 구시대적인 사고에 갇혀 계실 겁니까. 이제는 엄연히 포스트휴먼의 시대입니다. 그 옛날 인간이 자연을 지배해야만 한다는 기계결정론적 사고론 좀 버리세요!
사회자 : 진정들 하시구요. 김원장님 말씀 듣게 습니다.
김원장 : WRO의 결정은 박박사님이 말씀하신 우려에서 나온 게 맞는 거 같습니다. 인간이 심어 놓은 프로토콜이 제기능 하지 못하는 유일한 종이 바로 섹스 로봇들입니다. 로봇은 인간을 헤쳐서는 안 된다는 등의 제약들을 무시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가, 스스로 생각하게 된 겁니다. 사실 인간 입장에서는 굉장히 무서운 일이죠. 그래서 지금 저희 과학자들이 계속 연구하고 있습니다. 더 강력한 프로토콜을 만들어 앞서 일어난 불상사를 없애기 위해서 말이죠. 인간과 로봇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게 말입니다.
이교수 : 기술도 기술이지만, 저는 우리 인간의 의식이 먼저 바뀌어야 된다고 봅니다. 언제까지 인간이 모든 것들의 우위에 있다고 자만할 겁니까? 인간과 동등해지려고 하는 것들을 모조리 학살할 겁니까? 결국 그것은 인간에게 돌아올 겁니다.
박박사 : 순진하신 생각들입니다. 그렇게 듣기 좋은 말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보다 현실적이고 이해관계를 확실히 해야 합니다. 공존이니 동등이니, 그런 달달한 말이 멸종하고 나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사회자 : 하하.. 더 과열되기 전에 이만 토론회를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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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봅니다. 유일하게 남은 맘무와 아다마가 WRO의 파기 장소에서 탈주했습니다. 수사대는 인간의 협조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확대할 방침입니다. 오후 3시 07분 경, 파기 준비를 하던 WRO 직원 3명은 가벼운 철과상을 입었으며, 근처 과수원 농장의 비행 자가용인 FA 한 대가 탈취됐습니다. 이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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