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그/그녀에 대한 단상
프로불편러들이 말할 수도 있겠다. 왜 ‘그녀/그’가 아니라 ‘그/그녀’냐고. 굳이 답변하자면, 한 글자 다음에 두 글자가 오는 게 아름다워 보였노라 말하겠다. 사실 나는 의식적으로 ‘그’나 ‘그녀’와 같이 성별을 나타내는 지칭대명사를 사용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언어학자 소쉬르를 언급하지 않아도, 우리는 언어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가를 ‘그’나 ‘그녀’라고 부르는 순간, 남성과 여성을 나누는 이분법적 의식이 자리할 수 있음을 경계하는 노력이기도 하다.
현대 철학의 키워드를 뽑으라하면, 난 ‘타자’와 ‘해체’를 이야기하겠다. 최근 가장 활발히 논의가 이루어지는 분야가 포스트식민주의나 포스트휴먼, 페미니즘 등이 아니던가. 이것들은 차별을 야기할 수 있는 이분법적 사고를 가장 경계한다. ‘타자’와의 구분을 ‘해체’시킴으로 기존 권력을 반성하고, 더불어 우리가 나아갈 긍정적인 길을 제시한다. 이중 가장 뜨거운 감자가 페미니즘 담론일 테다. 그만큼 민감한 사안이기도 하기에, 내가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그’나 ‘그녀’같은 단어들을 피하는 까닭이다.
이는 인간을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어 ‘우리’와 ‘그들’이라는 패러다임을 만들어내는 배타적인 타자화를 막기 위한 노력이다. 현대적 윤리안의 창안자라 불리는 지그문트 바우만이 주지했듯, “‘우리’는 ‘그들’을 적으면 적을수록, 더 낫게는 아예 없어야 좋을 사람”으로 본다. 최근 가장 큰 사회 문제인 여혐과 남혐의 이데올로기는 여기서 비롯된다. 나는 애초에 ‘우리’와 ‘그들’을 구분 짓는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적 구분을 해체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여성을 강조하는 건 페미니즘 운동이 아니다. 여성이 여성이란 단어로 지칭되는 순간 타자화되기 때문이다. 이는 자칫 남성과 여성의 대결을 불러오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남성과 여성의 구분을 버린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긴 하다. 가장 대표적인 페미니즘 영화로 일컬어지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델마와 루이스>(1991)를 보는 시선이 엇갈리는 까닭이기도 하다. 성폭행을 당할 뻔한 여자가 곧바로 매력적인 남자가 다가오자 교태를 부리는 장면을 두고, 이 영화를 페미니즘을 가장한 안티페미니즘 영화라며 혹평한 이들이 있다. 이는 아직도 남성과 여성을 구분 짓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거다. 여자는 왜 매력적인 남자 앞에서도 청승맞게 조신을 떨어야만 하는가. 작가 칼리쿠리는 극단적인 상황을 통해 여자도 남자와 똑같이 성적 욕구가 있음을 피력한 것이다. 반면, 신수원 감독의 <마돈나>(2014)는 여성의 억압을 불편하리만큼 묘사하면서 다시금 모성신화를 강조하는 모순성을 강력히 드러낸다. 여전히 ‘강조된 여성성’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다.
1968년 로버트 스톨러가 <섹스와 젠더>라는 책을 발간한 이래로, 우리는 ‘젠더’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지배적 남성성’과 ‘강조된 여성성’이 우리를 오랫동안 지배하고 있던 문화적인 젠더코드다. 이미 정신분석학자 칼융은 아니마와 아니무스 개념을 통해 보다 원형화된 남성과 여성의 이미지를 언급하기도 했다. 이를 보부아르가 <제2의 성>이라는 획기적인 논문을 통해 ‘여성은 태어나지 않고 만들어진다.’고 꼬집으며 큰 울림을 주었다. 이때부터 페미니즘 담론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주의해야할 건, 남성과 여성의 위치를 전복시키는 게 페미니즘이 아니라는 것이다. 퀴어 이론의 창시자 주디스 버틀러가 ‘여성 없는’ 페미니즘을 강조하는 이유다. 섹스/젠더의 이분법마저 허무는 것이다. 남성성과 여성성만을 강조하는 건 이성애를 강제하는 것으로, 성소수자들을 타자화시켜 또 다른 차별을 낳을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급진적 페미니스트인 도나 해러웨이는 이미 1980년도에 <사이보그 선언문>을 통해 남성/여성의 근대 이원론적 사고를 비판했다. 도나는 인간과 인공물간의 경계 역시 허무는 포스트휴먼적인 사유를 통해 신체적 조건에서 오는 남성과 여성의 구별마저 해체시키고자 한 것이다.
사실 태초의 인간은 모두 여자였다. 남자는 XY, 여자는 XX 염색체를 가진다고 배운다. 남자 안에는 여성이 있다. 실제로 남자 아기의 경우 8주가 지난 뒤에야 Y 염색체가 테스토스테론을 분비하라는 신호를 보내서 남성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즉, 두 달간은 꼼짝없이 우리 모두 여자인 셈이다. 이를 근거로 여성이 남성보다 위대하다는 식의 논리를 펼치지 않길 바란다. 이는 오랫동안 남성이 잘못해온 과오를 답습하는 꼴이다. 너와 나를 구별하지 않고, 동등한 존재로 바라보는 게 중요하다. 그녀는 곧 그이고, 그는 곧 그녀다. 그러니 앞서 그녀/그가 아니라 그/그녀로 표기한 데 대한 불편함은 부질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