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에 앉아

#3-3 벤치에 대한 일상

by 술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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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하면 술이지 모. 나는 술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혼자 먹거나 하진 않지만. 특히 날 좋은 날, 해지고 부는 선선한 바람이 좋은 날, 바깥에 앉아, 벤치에 앉아, 편의점에서 꺼내온 그 시원한 맥주와 소주를 그냥도 아니고 섞어서, 섞다가 지치면 소주만 먹길 좋아한다. 이게 약간 시즌제다. 너무 덥거나 너무 추우면 할 수 없는 일이니까. 그러니 더 소중하다.


한창 벤치와 사랑에 빠졌을 때는 하루에 한 번씩은 벤치에 앉아 술을 먹었던 거 같다. 아, 말은 똑바로 해야지. 벤치가 아니라 술과. 아무튼, 그때는 친구들도 다 학생이라서 여름방학하고 맨날 모여 놀고, 놀다 지치면 벤치에 앉아 술을 자셨다. 지금은 만나기도 녹록치 않고 술을 먹으면 벤치보다는 어느 술집을 가길 선호한다. 예전에 벤치에 앉아 밤새 술을 먹다가 떠오르는 태양이 너무 뜨거워서 집에 간 적이 있었는데, 정말 추억이다.


벤치에 앉아 술을 먹으면 그 풍경이 오롯이 다 내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청승맞게 벤치에 앉아 술 먹길 좋아하는 것 같다. 별 하나 없는 밤하늘이지만 이따금씩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을 때 그 광활하게 뚫려있는 속 시원함이 좋다. 빌딩숲으로 가득 찬 삭막한 도심 속이지만 그 사이로 즐비한 나무들을 보면 또 그게 그렇게 마음이 편하다. 무엇보다, 이 드넓은 공간에 앉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게 정말이지 술 맛나게 한다.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언제까지 너와 이 풍경을 벗 삼아 벤치에 기대 술을 자실 수 있을까? 이런 핑계, 저런 핑계들은 벤치를 멀게 한다. 내년 여름에도 벤치에 앉아 너와 그저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웃으며 술을 마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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