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로 떨어진다.

#3-2 벤치에 대한 상상

by 술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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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바람이 차다.

걸을 때 마다,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진다.

아니, 걷는 다기 보다 헤집고 간다.

살을 에는 차가운 것들이

곳곳에 가득 차 있으니.

앙상한 가지가 이따금씩 춤을 춘다.

차가운 것에 계속 짓눌려

똑, 하고 부러진다.


빨간 목도리를 귀까지 덮은

너에게로 떨어진다.

벤치에 앉아 발을 동동 구르는

너에게로 떨어진다.

검은 코트가 품고 있던

너의 새하얀 손이 나온다.

1월의 순백은 너의 손을 닮았다.

그 손이 힘없이 스러진 가지에게로 간다.

아려한 너의 손이

아련한 가지에게로 간다.


바스러질까, 아스러질까.

너의 손은 가지를 소중하게 안는다.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게 딱 적당하게.

이불을 덮듯 포근하게 가지를 덮는 너의 손.

가지에게서 생기가 돋는다.


본래 띠고 있던 갈색 빛은 더욱 더 짙어지고,

곳곳에 푸르스름한 빛까지 돋는다.

생긋한 너의 미소처럼.

빨간 목도리가 품고 있는

너의 새빨간 입술이 꼭 그런 것처럼.

너는 고개를 든다.

가지가 태어난 그곳을 바라보는 너의 눈동자에

그 커다란 것이 한 번에 담긴다.

우주의 찬란함을 닮은 너의 눈동자 속으로

그것이 빠져든다.


이따금씩 하늘의 푸르스름함이 반사되어

저 하늘을 더 높게, 높게, 높게 만든다.

때마침 기분 좋은 하얀 가루가 내렸다면 더 좋았을,

그런 하늘을.

나는 너에게로 간다.

아니, 너에게로 떨어진다.

주체할 수 없는 그 어떠한 힘이다.

가지를 너에게로 보낸 중력보다,

더 강력한 힘이다.


1월보다 더 새하얀 손이 나에게로 닿을 때,

나는 어김없이 8월의 붉음보다 더 짙게 빨개진다.

가장 강력한 붉음이 나를 덮친다.


너의 반을 가리던 빨간 목도리가 내려가고

생긋한 미소가 내게 온다.

온 몸의 생기가 돋는다.


설상가상, 동시에 눈이라도 마주치게 된다면

상상도할 수 없는 그 강력한 힘이

나를 엄습할 것이다.

너는 말한다.

그 음성이 나를 감싼다.

살을 에는 차가운 것들이 일제히 소멸되고,

모든 것이 말랑말랑한 포근함이 된다.

왔어?

.

.

.

응. 아까부터.

나는 너에게로,

오래 전에 와 있었다.


가지가 네게 떨어졌듯이,

그것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1월, 바람이 포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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