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고양이에 대한 상상 (일부분만 발췌합니다.)
(일부분만 발췌합니다.)
*
수찬은 바로 고개를 돌렸다. 헛구역질이 났다. 전투모를 벗었다. 작대기가 하나 있었다. 머리를 움켜잡았다. 거친 숨을 몇 번 내쉬었다. 다시 그쪽을 힐끔 쳐다봤다. 다시 헛구역질이 났다. 눈을 질끈 감았다. 머리가 댕강 잘린 채, 내장이 여기저기 튀어 나와 있는 고양이 시체가 있었다. 비릿한 냄새가 온 몸을 휘감았다. 쓰레기 소각장 근무지로 뛰어갔다. 수찬이 넋이 나간 모습으로 뛰어오자 영진이 전투모를 벗고 일어났다.
“왜 이래, 이 새끼.”
벗은 전투모로 헉헉대고 있는 수찬의 얼굴을 툭툭 쳐댔다.
“강영진 상병님, 저..저 코너 뒤에 고양이 시체가 있습니다.”
푸르스름한 초저녁에 내리쬐는 달빛이 수찬의 얼굴을 더욱 창백하게 만들었다.
“아, 나 이 새끼. 고양이 시체 처음 보냐? 미친 새끼가 호들갑이야.”
“아니..그게..목이 잘려있고, 막 내장이..”
영진이 아까보다 쎄게 전투모로 수찬의 얼굴을 가격했다.
“아이씨, 더럽게. 야 가서 뭘로 덮어 놓든지, 처리하고 와. 나 보게 하면 뒤진다. 진짜.”
영진이 수찬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수찬이 무릎 꿇고 쓰러져 정강이를 문질렀다. 영진은 수찬의 어깨를 발로 밀었다. 수찬이 맥없이 쓰러졌다. 영진이 수찬의 이름을 호명하자 곧바로 일어나 차렷 자세를 취했다.
“이병 정수찬”
“야 씨발 오바 좀하지 마. 야 저기 삽 가지고 가서 처리하고 와.”
수찬이 쭈뼛쭈뼛 소각장 귀퉁이에 있는 삽자루를 들었다. 수찬의 옷에 붉으스름한 피가 보였다. 영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바라봤다.
“아이씨. 너 만졌냐? 야 가까이 오지 말고 빨리 꺼져”
수찬은 영진이 다리 꼬고 앉아 있는 소각장 뒤편을 계속 힐끔댔다. 삽자루를 땅에 질질 끌며 아까 그곳으로 향했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순간 휘청했다. 때마침 근무 교대자들이 왔다. 회색 활동복에 전투모를 비딱하게 쓴 영진의 동기들이 다가왔다. 영진과 인사를 나눴다.
“특이사항 있냐?”
“무슨 쓰레기 소각장의 특이사항이 어딨냐. 애들 분리수거 잘 했는지만 보면 되지. 상병 짬 둘이 보니까 뭐 다 해오겠지만.”
“존나 개꿀.”
“아 씨발 근데 다음 달에 탄약고로 바뀌면 또 야간근무있잖아. 졸라 짱난다.”
“븅신아. 한 달씩 더 늘어났잖아. 찰리 포대 파견 근무 갔다 와 가지구. 야 근데 저 새끼 뭐하냐? 삽자루 들고.”
수찬을 가리켰다. 영진이 소리쳤다.
“야! 빨리 안 갔다 와!!!?”
수찬이 큰 소리로 대답하고는 뛰어 갔다. 구토가 치미는 그곳으로.
*
주말 아침. 지난 밤 갑작스런 폭풍우 때문이었는지, 수찬은 계속 해서 잠에서 깼다. 지난 번 쓰레기 소각장에서 본 처참하게 죽어있는 고양이가 계속 생각났다. 수찬은 잠을 못자 피곤했지만, 허리를 꼿꼿하게 편 채로 탁자에 앉아 있었다. 같은 내무반 선임들은 누워서 티비 채널을 이리저리 틀었다. 그때 집합 방송이 나왔다. 주말인데 웬 집합이냐며 선임들이 거친 말을 한마디씩 내뱉었다. 영진이 괜한 수찬의 머리를 한 대 갈기며 내무반을 나갔다.
“주말에 미안한데, 어제 존내 바람이 불어서 어쩔 수가 없다. 우리가 지금 쓰레기 소각장 담당이니까 가서 주변 청소 좀 하고 오자.”
당직 사관이 귀찮음이 가득 찬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저기서 탄식이 나왔다.
“야야. 알파 집중!! 야간근무 안 서는 게 어디냐. 다 닥치고 현 시간부로 쓰레기 소각장 위생 작전 실시합니다. 헤쳐!”
상병장들은 모여 웃고 떠들고, 일이등병들은 뛰어다니며 쓰레기를 주웠다.
“야 이 새끼들아. 똑바로 안 해? 빨리 하고 들어가자! 야!! 저기 쓰레기 있다. 저거 주워! 눈깔 똑바로 뜨고 빨리 빨리 주워!”
영진은 주머니에 손을 넣곤 발길질로 쓰레기가 있는 곳을 가리키며 후임들을 쪼았다. 수찬은 욕먹지 않기 위해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주웠다. 두 손 한 가득 쓰레기를 모았다. 정신없이 쓰레기를 줍는 도중, 깜짝 놀라 뒤로 넘어졌다. 쥐고 있던 쓰레기들이 날아갔다. 고양이 시체가 또 있었다. 이번엔 다른 놈이었다. 하지만 그때와 같았다. 머리는 댕강 잘려 있었고, 내장은 다 뒤집어 꺼내져 있었다. 헛구역질이 저절로 났다.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수찬이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헐레벌떡 뛰어갔다. 때마침 당직 사관이 나와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다. 수찬은 곧바로 당직 사관에게 향했다.
“저 새끼 뭐야?”
선임들이 말릴 틈도 없었다. 수찬은 놀란 토낀 눈을 하고는 당직 사관에게 바로 고양이 시체에 대해 말했다. 함께 쓰레기 소각장에 나갔던 인원들 모두가 그 고양이 시체를 목격하게 됐다. 비위가 약한 몇몇은 실제로 구토를 하기도 했다.
당직 사관이 따로 수찬을 행정반으로 불렀다. 일전에도 같은 고양이 시체를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당직 사관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이것은 분명히 누군가가 일부러 죽인 것이었다. 한 번의 우발적인 것도 아니라, 이렇게 연속적으로. 폐쇄적인 군대 내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굉장히 큰일이었다. 당직 사관은 당직 사령에게 보고해야겠다며 수찬을 보냈다. 당직 사관은 채비를 하고 본관 작전회의실로 향했다.
*
점호 시간. 점호 준비로 바빴던 움직임들이 일제히 부동이 되는 시간이었다. 수찬 역시 망부석처럼 주먹을 꽉 쥐며 차렷 자세를 유지했다. 방송이 나왔다. 전체적인 전달상황이 있어 다목적실에서 한꺼번에 점호를 취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자자. 주목.”
“주목”
당직사관에 말에 따라 다목적실에 모인 알파 대원들이 복명복창했다.
“아까 오전에 고양이 시체 다들 봤지? 누가 일부러 그런 거 같다. 근데 이게 저번에도 그랬다고 한다. 그리고 방금 이 사안이 대대장님께 보고됐다. 대대장님께서 이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든지, 범인이 잡히든지 할 때까지 쓰레기 소각장도 야간 근무를 하라고 하신다. 대대장님 진급 얼마 안 남아서 조낸 예민하니까, 잘들 하자.”
아까보다 더 큰 탄식들이 나왔다. 순식간에 다목적실이 혼란스러워졌다.
“자자. 조용! 조용! 어쩔 수 없잖아. 어떤 미친 사이코 새끼 때문에. 다들 그렇게 알고, 오늘부터 바로 야간 근무 투입한다. 알겠나?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힘없는 대답소리만이 들렸다. 점오가 끝나자 여기저기서 욕지거리가 들렸다. 그것은 고양이나 고양이를 죽인 범인에게로 쏠린 것이기 보다, 수찬에게 향한 것이었다. 수찬의 발견이, 수찬의 보고가 야간 근무를 만들었으니 말이다.
내무반으로 들어가자마자 영진이 수찬을 발로 찼다.
“아이 씨발새끼. 야이 새끼야. 너는 보고체계도 몰라? 바로 당직 사관한테 말하는 새끼가 어딨어. 이 새끼야. 너 때문에 씨발 오 십 명이 넘는 새끼들이 개고생해야 되잖아!”
영진이 쓰러진 수찬에게 발길질했다. 옆에서 영진을 말렸지만 역부족이었다. 수찬은 쓰러져 맞으면서도 ‘죄송합니다’를 연거푸 말했다.
*
수찬이 제대로 숨도 못 쉬고 있었다. 방독면을 쓴 채로 몇 시간을 누워 있었다. 잠이 올 리가 없었다. 수찬은 자기 허벅지를 꼬집으며 그 고통을 이겨내려고 했다. 눈이 반쯤 풀렸다.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어딘가에서 베개가 날아와 수찬을 가격했다.
“한 번만 더 소리 내면 뒤진다. 베개 가지고 튀어 와”
수찬은 숨도 잘 못 쉬는 몸을 가누며 베개를 들어 영진에게 갔다.
그날 이후로 수찬은 공공의 적이 되었다. 직접적으로 수찬을 괴롭히는 이들은 몇몇 없었지만, 그를 향한 무시와 멸시는 공공연했다. 물론 영진의 행동은 점점 더 심해졌다.
*
방독면을 쓰고도 숨쉬기가 익숙해진 어느 날이었다. 알파 포대가 쓰레기 소각장을 담당하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곧 탄약고 근무로 바뀌기 때문에 포대 내 군기가 더 엄격해졌다. 보통은 공포탄만 장착하고 근무를 나가지만, 때에 따라 실탄도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사기를 살려주기 위해 그동안 했었던 쓰레기 소각장 야간 근무도 없앴다. 그때 이후로 고양이 시체가 더 이상 나오지 않은 것도 한 몫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