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달에 대한 상상
운이 좋게도 FETM 프로젝트에 참가할 수 있게 됐다. FETM은 지구와 달을 잇는 우주 운하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다. 나는 잡일을 하는 일용직 노동자에 불과하지만, 이 역사적인 프로젝트를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이 크다. 지구와 달을 잇는 그것을 내 손으로 만들고 있다니!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지.
지구에 있는 친구들은 아직도 나를 부러워한다. 매주 FETM에 관한 방송을 내보낸다는데, 그게 그렇게 인기 프로그램이라 한다. 이번 연말 콘텐츠 어워드에서 이 프로그램이 당당히 대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예능과 다큐의 중간 지점을 잘 공략해 웃음과 감동을 전해준다는 게 선정 이유였다. 우주라는 볼거리도 있으니, 티비로 우리의 삶을 보는 이들은 부러울 만도 하겠다.
수많은 지원자들이 몰렸었다. 전 지구적인 작업이기에 국적은 물론, 나이, 성별 가릴 것 없이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내 옆에서 공구리를 치고 있는 이자는 해외 유명 대학교의 신소재공학 박사학위까지 있는 사람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공구리는 단순히 콘크리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복잡한 물질들을 섞은 것이라 다루기 까다롭기는 하다. 그렇다고 신소재공학을 전공해야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어차피 재료는 위에서 갖다 주고, 우린 그냥 그걸 잘 섞어서 바르기만 하면 된다. 머스크! 다 섞었어?
총 다섯 번의 테스트가 있었다. 첫 번째는 항상 그렇듯이 서류 전형이었다. 사실 이것부터가 난관이었다. 자기소개서도 자기소개서지만, 우주 건축물에 관한 논문을 제출해야 했다. 열다섯 페이지 분량을 맞춰야 했는데,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행히도 내가 우주 건축학을 전공해서 망정이었다. 나는 르네상스의 건축가 알베르티부터 20세기의 천재 건축가 가우디까지를 계보적으로 연구하여 그 옛날 선조들의 지혜를 우주 건축물에 도입할 수 있음을 피력했다. 저 멀리서 잔해물을 청소하고 있는 저자는 예술가였다. 나름 잘 나가는 추상회화 작가였다고 한다. 그는 우주 건축물의 미학 양식에 대해 서술했다고 한다. 물론 그가 제안한 미학대로 짓고 있지는 않지만. 어이 폴록! 쉬엄쉬엄 하라고.
두 번째는 필기시험이었다. 이 일이 적성에 맞는지, 동료들과 잘 협업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시험이라는데 전혀 공감되지 않는 문제들이 나왔다. 이를테면 “1*2*3*6*7*8*( )*21”에서 괄호 안에 들어갈 숫자는? 뭐 그런 거였다. 이게 이 일을 함에 있어서 과연 어떤 연관성이 있는 걸까? 저기서 C구역의 수치를 재고 있는 저 두 명은 수학 선생님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이곳에서 낸 문제의 모든 게 잘못됐다며, 362페이지에 걸친 방대한 분량의 반박 자료를 보냈다고 한다. 물론 단 몇 페이지에 불과한 답장을 받아들곤 곧바로 자신들의 패배를 인정했다. 그럼에도 그 노력이 가상해 FETM 프로젝트에 참가할 수 있었다. 헤드! 러셀! 수치 얼마야?
세 번째는 체력 테스트. 낯선 우주 공간에서 이 역사적인 작업을 진행하려면 체력이 필수긴 하니까. 나는 꾸준히 점핑볼을 해 와서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대학생 때는 학교 대표로 뛰기도 했다. 부스터가 달린 점핑볼 전용 신발을 신고 무지막지하게 볼을 쟁취하다 보면 땀에 흠뻑 젖지 않던가. 그만한 운동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놀랍게도, 체력 테스트 중 종목 하나가 점핑볼이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결승전에서 그를 만나기 전까지. 하필, 결승전에서 점핑볼 TOP 10 랭커인 조던을 만날 게 뭐람. 다행히 우리 팀에 지난 점핑볼 MVP를 수상한 호날두가 있었기 망정이었다. 지금 이 둘은 저 뒤에서 사이좋게 우록시탄을 나르고 있다. 우주 운하 바닥에 까는 것인데, 무게가 엄청나다. 역시 점핑볼 프로 선수들은 다르긴 다르다.
네 번째 테스트는 PT 면접이었다. 주제는 ‘우주 운하 건설을 통한 전 우주적 상생 발전 가능성과 미래 융합 단지 건설 향후 계획’이었다. 삼 차까지 붙은 후보생들 세 명씩 짝을 이뤄 PT 면접을 준비했다. 나는 옛날에 사장된 줄만 알았던 영화라는 걸 하고 있는 미국 사람과 독일 정치인하고 팀을 이뤘다. 영화라는 게 비주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데, 역시나 PT 이미지를 기가막히게 뽑았다. 독일의 정치인은 말빨이 죽였다. 역시 정치인은 말을 잘해야 돼. 아, 나는? 우주 건축물에 관한 자료 조사를 담당했다. 스필버그 이 친구야, 수고 많았네. 마지막에 외계인하고 인간하고 손가락 마주대면서 PT 끝내는 부분은 나도 울컥했다네. 아~ 괴벨스! 자네 말을 어떻게 그렇게 잘하는가? 선동당할 뻔하지 않았는가!
드디어, 마지막 임원 면접. 이 프로젝트의 주인들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방 안에 들어가니 텅 비어 있었다. 의자 하나만 달랑 놓여있었다. 너무 어두워 방 안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의자 위에서만 내리쬐는 텅스텐 조명만이 있었다. 낯선 기계음이 들렸다. 의자에 앉아 손을 허벅지에 비볐다. 정면에 홀로그램이 떴다. 둥그런 물체가 둥둥 떠다녔다. 방 안 구석구석의 CCTV들이 반짝거렸다. 일제히 나를 향해 있었다. 둥그런 물체가 내 주위를 빙글 돌았다. 입이 말랐다. 다시금 낯선 기계음이 들렸다. 어떠한 언어도 아니었다. 그런데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니 들었다기보다 인지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 뇌로 직접 전달되는 듯했다. 나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들 역시 내 대답을 들었다. 내 입이 아닌, 내 뇌와 소통하는 거였다. 홀로그램 형상의 동그란 물체는 정신 사납게 내 주변을 계속 맴돌았다.
어째서인지 나는 합격을 했고, 이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 수천, 수만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이곳에 입성했다. 물론 여기서 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잡일에 불과하지만, 그 자부심만큼은 한 나라의 대통령 못지않다. 지금도 저 위에서 반짝이는 CCTV는 사람들 입맛에 맞게 조리되어 방송으로 나갈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삶을 부러워하겠지. 이따금씩 딴청을 피울 때면 어김없이 낯선 기계음이 들려온다. 아니, 인식된다. 그러면 두통이 심해진다. 어제는 사람이 실려 나가기까지 했다. 간혹 타원형의 로봇이 우리 주변을 순찰하며, 알약 하나씩 건네어 준다. 우린 그 알약을 먹으며 오늘 하루도 달을 향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