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일상에 대한 단상
일상이 일상일 수 있는 까닭은 일상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면, 일상답지 않은 말장난 같아 보일까? 사실 말하고자 하는 건 간단하다. 일상이 깨져야 그것이 일상임을 알아차린다는 이야기. 내가 물속에 들어가 봐야 내가 있던 곳이 육지였음을 깨닫는다. 숨을 참아봐야 내 콧속을 헤집고 다니는 것이 공기임을 자각한다. 당신이 사라져야, 당신이 나의 일상이었구나를 깨닫는다.
지금 당장 내 방 벽지가 무슨 색인지, 어떤 무늬인지 생각해보라. 내가 으레 앉던 의자는? 매일 일상처럼 마주하는 것들을 불현 듯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일찍이 러시아의 형식주의자 빅토르 슈클로프스키가 톨스토이의 일기를 인용하며 일상의 익숙함에 대해 말한 바 있다. 내가 방금 이곳을 청소했는지 쉽게 잊는다는 이야기다. 매번 그랬기에 그곳을 청소했는지, 안 했는지 분별조차 어렵게 된 것이다. 이는 습관화되는 무서움을 말한다. 그는 이것이 무(無)가 되는 과정이라 말했다.
모름지기 예술의 역할은 이러한 일상을 자각하게 해주는 것이다. 특히나 형식주의자들에겐 그것이 예술의 당위요, 목적이며, 존재 이유였다. 예술의 목적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 무(無)가 되어버린, 삶과 사물에 대한 감각을 회복하는 것이다. 슈클로프스키는 이를 위해 ‘시적 언어’를 강조했다. 이는 ‘비상투성’과 ‘낯설게 하기’를 통한 언어로, 예술적 경험을 불어 넣어주는 것이다. 극작가 브레히트가 언급하며 당시 연극 이론의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던, ‘소격효과’(Verfremdungseffect)는 슈클로프스키가 말한 ‘낯설게 하기’를 차용한 것이기도 하다. 이는 오늘날 영화 연출에도 종종 쓰이며 관객의 감각을 환기시키곤 한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낯설게 하기’를 언어 효과로 이해했다면, 초현실주의자들은 사물의 효과로 이해했다. 브레히트가 ‘낯설게 하기’를 ‘소격효과’로 가져왔다면, 초현실주의자들은 ‘데페이즈망’(depaysement)이란 용어로 가져온다. 하나의 사물을 그것이 속한 익숙한 환경에서 떼어내 낯선 곳에 집어넣는 것을 말한다. 가장 대표적인 게 뒤샹의 <샘>이 아닐지. 변기가 미술관 안에 버젓이 자리하고 있다니 말이다. 르네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어떤가? 파이프를 그려놓고 파이프가 아니라고 적다니. 마그리트는 이 문장을 ‘정박’시킴으로써,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각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라, 그림이라고! 이것으로 관객은 일상적으로 무감각해진 감각을 깨우게 된다.
오늘도 그냥 지나쳤을, 소중한 나의 일상. 일상이 깨져버린 후에야 ‘그때가 좋았었지’라고 푸념하지 않기 위해선, 우린 계속 일상을 낯설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지금 내가 앉고 있는 이 의자가,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이 벽지들이, 내게 안부를 묻는 당신이, 그리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이것을 특정한 예술의 영역으로 치부하기엔, 우리 각자의 예술이 너무나도 많다. 내게도 ‘낯설게 하기’나 ‘소격효과’나 ‘데페이즈망’ 같은 하나의 기법이 필요하다. 지금 내 품에 안겨 있는 까만 미니핀이 언제까지 내 품에 있을지도 모를 일. 내 무릎에 온기를 낯설게 담아 본다. 당연하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