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받침대로, 좋을 책

#9-3 책에 대한 일상

by 술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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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쭙잖게, 책을 쓴다고 한다. 영어 단어 하나를 더 외워도 모자랄 판에, ‘가나다라’를 고르고 있으니 세종대왕님은 좋아라 하시겠다. 그렇게 자격증 공부보다 ‘은는이가’의 적확함에 대해 고민하는 여섯 학생이 모였다. 성별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과도 제각각인. 단 하나의 공통점만 있는, 꼴에 작가.


한 교수님은 작가란 게 별 거 아니라고 하셨다. 어제 글을 썼고, 오늘 글을 쓰고, 내일도 글을 쓸 거면, 그러면 작가라고 했다. 작가가 되는 건 어렵지 않으나, 작가로 남는 게 어려운 것이다. 일단 우린 작가가 됐다. 내일도 글을 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쓰고 있으니 우린 작가다. 그래, 꼴에 작가다.


어떤 글을 써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여섯 명이 모이다 보니 여섯 개의 의견이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린 누구와 다르게, 친구의 말을 그대로 따르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결국 합의 본 것은, 그 다양한 여섯 시선을 한 책에 담아내자는 것이었다. 불현 듯 떠오른 한 단어를 가지고 여섯 명이 시가 됐든, 소설이 됐든, 에세이가 됐든 꼴리는 대로 풀어 제끼자고 했다. 그렇게 열 다섯 단어가 선정이 됐고, 우리는 진짜 막무가내로 자신들의 생각을 풀어 제꼈다.


다소 무책임하고, 무질서하고, 맥락이 없어 보일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안에는 무질서와 무맥락이 만들어 낸 예상외의 질서와 맥락이 자리 잡았다. 바로 글을 쓰는 우리, 그 자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20대들의 ‘각기 다른’ 생각과 이야기. 여기서 방점은 ‘다르다’는 것이다. 다름이 곧 우리의 맥락이다.


나는 좀 욕심을 부렸다. 그네들이 던져준 하나의 단어를 두고 세 가지 갈래로 퍼뜨렸다. 이른바 ‘상상상(想像常)’이다. 주어진 단어에 대한 나름의 사유를 통한 단상(斷想)이 첫 번째. 그것을 자유롭게 상상(想像)한 이야기가 두 번째, 그것과 관련된 나의 일상(日常)이 마지막 세 번째 갈래다.


만약 이 글만 모아 따로 책을 만든다면, 라면 받침대 모양으로 만들고 싶다. 적어도 이 책을 갖고 있는 사람이 이 책에 대해 최소한 하나의 쓸모는 느껴야 할 테니까. 책의 제목도 <라면받침대로, 좋을 책>이라 짓고 싶다.

왜냐면 이 책은 나만의 카타르시스(katharsis), 그 이상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내가 배설한 정신적 찌꺼기가 가득한 책이다. 이에 일말의 양심적 가책을 느끼며 최소한의 쓸모를 만들어 주고 싶은 기특함이라 생각해주면 고맙겠다. 아무쪼록 라면받침대를 구입하는 대신에, 이 책을 구매해주면 참으로 고맙겠다.

이 책을 깔고 라면을 먹으면, 얼마나 맛있게요~?


p.s 다음 책은 <베개로도, 좋을 책>이니 기대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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