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급에 대한 상상
자, 이렇게 갑작스런 회동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논의 된 이야기들을 잘 정리해서 지구로 보내겠습니다. 그럼 이만 회의를 끝내겠습니다.
탕! 탕! 탕!
< 우주 도로 건설을 위한 지구 협조의 건 >
전 우주의 평화를 수호하고, 질서를 바로 잡는 우주 연합 사무총장입니다. 저희는 지구 시간으로 지난 6억 년 전부터 지구를 우회하는 우주 도로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저희와 지적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없었기 때문에 지구에 동의를 구하지 않고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최대한 지구에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대작업이다 보니, 본의 아니게 피해를 끼치게 된 점 사죄드립니다.
당신들이 오르도비스기 대멸종, 데본기 대멸종, 페름기 대멸종, 트라이아스기 대멸종, 백악기 대멸종이라 불렀던 것들이, 저희 작업의 영향이었음을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운석이 떨어진 것은 물론이고, 초신성이 폭발해 감마선 노출의 위협을 야기했으며, 지구 내부의 맨틀과 해수면의 불안정한 움직임 역시 저희들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그 미미한 시아노박테리아가 이렇게까지 지구를 변화시킬 줄은 몰랐습니다. 저희의 불찰이었습니다.
결국엔, 저희가 이렇게 연락을 드릴 수 있는 존재까지 살 수 있는 행성이 되었군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는 행성 주인의 동의가 없었기에 부득이하게 지구를 우회하여 도로 건설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지구를 관통하여 도로 건설을 진행할까 합니다. 이에 협조해주실 바랍니다. 당신들의 새로운 거주지는 저희 우주 연합에서 제공해드리겠습니다. 지구가 속해 있는 은하와 가장 가까운 안드로메다 은하와 마젤란 은하, 두 곳을 선정했으니 선택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구는 얼마 못 있어 다시 한 번 대멸종의 위기를 겪을 것이라는 저희 연구 보고가 있습니다. 지난 다섯 번의 대멸종이 저희들의 불찰에 의한 거였다면, 이번에는 지적 사고를 한 지 7만 년밖에 안 된 종에 의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스스로를 사피엔스라고 부른다지요? 낯 뜨겁기도 합니다. 저희 행성의 자전 주기가 지구 시간으로 5만 년입니다. 7만 년은 저희 행성으로 치면 하루 반 정도 될 뿐인데, 본인들 입으로 슬기롭다고 지칭하다니, 참으로 재밌습니다. 아직 저희와 소통조차 못하는 존재들이 말이지요.
아, 저희도 한 때는 이들이 이 행성의 주인인 줄 알고 여러 번 연락을 취한 적이 있었습니다. 번번이 자기들 정치 조작으로 사용하더군요. 스스로를 깨어있다고 말하면서도, 어떻게 이리도 아둔하지. 다행히도 어렵사리, 이 지구의 진정한 주인인 당신들을 찾게 되어 이렇게 전문을 붙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하루, 그러니까 지구 시간으로 5만 년 이후 우주 연합의 산하 기구인 우주도로건설 기획부에서 방문하여 일을 진행할 예정이오니 참고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동안 사피엔스들이 날뛰지 않길 바라며,
6천만년 간 바다를 노닐고 있는 그대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