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급에 대한 일상
그들이 ‘급’이란 단어를 던져주었을 땐, 아마 급하다고 할 때의 ‘급’을 말했던 같아. ‘급 땡긴다.’ 뭐 이런 말 쓰잖아. 근데, 난 자꾸 계급 할 때의 그 ‘급’이 생각나는지. 요즘말로 ‘클라스’라고 하는 거 있잖아. ‘급이 다르다’, ‘클라스가 다르다.’ 뭐 이런 거. 요새 하도 흙수저니 금수저니 하며 급을 나눠서 그런 걸까?
다양한 것 중에 어느 하나를 선택할 때는 아마 그런 이유가 있겠지. ‘급을 듣고, 내가 계급의 ’급‘을 떠올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계급 갈등을 골똘히 고민하고 사회 변혁을 위해 힘써야겠다는 생각은 한 적도 없었어. 근데 왜 그런 단어가 생각났을까? 물론 마르크스에 한 때 빠져있었던 적이 있었지. 아, 이런 얘길 이렇게 공개적으로 하면 좌빨로 몰리나? 지금은 시장자본주의를 인정하며 자유를 수호해야만 한다는 입장이니, 오해마시길.
불안해서 안 되겠네. 마르크스에게 빠졌다는 건, 그의 상하구조론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그랬던 거뿐이야. 보통 상부 구조가 하부 구조를 지배한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잖아. 쉽게 말해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고 생각했잖아. 근데, 마르크스는 개소리 말라고 했어. 하부 구조가 상부 구조를 지배한다는 거지. 니 육체가 하고 있는 노동이 바로 너다 이거지. 그게 너의 정신까지 지배한다고. 난 처음에 이걸 듣고, 정말 내 안의 얼어붙은 바다가 산산조각 났어. 플라톤에서 내려와 기독교에서는 아예 진리가 되어버린 정신의 위상을 철저히 무너뜨린 거지. 데카르트의 뺨을 때리며 몸의 위상을 되찾아온 메를로 퐁티도 이런 의미에서 마르크스한테 빚을 지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정도면 내 결백이 증명됐으리라 본다. 굳이 날 몰아가려면 알튀세 같은 네오 막스주의자로 봐줘. 알튀세가 말한 이른바 ‘사구체 논쟁’ 때문에 우리나라 80년대 대학가가 아주 후끈했었잖아. 상부구조, 하부구조의 이분법적인 구조를 파기했지. 그리고 4개의 층위를 제시했잖아. 정치, 경제, 사상, 이론이 바로 그거였지. 기존 마르크스주의자라면 무조건 경제가 우위에 있었겠지만, 알튀세는 이들 사이의 우위 관계는 없다고 했어. 그 층위와 관계는 끊임없이 변화한다고. 그래서 한 때 대학가에서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층위가 무엇인지에 대해 열띤 토론이 벌어지곤 했었다지, 아마.
무슨 얘기를 하다가 여기까지 온지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급’이란 단어를 들으니 이정도가 생각나네. 그들은 어떤 게 생각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