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화장실에 대한 단상
내게 가장 신성한 공간을 뽑으라 한다면, 나는 단연코 화장실을 말하겠다. 그곳은 가장 사적인 공간. 그곳은 가장 본능적인 공간. 동시에 가장 사색하는 공간. 그러니 그곳은 가장 신성한 공간이다. 지상 낙원이라 불렸던 에덴동산을 오늘날 찾으라면, 바로 화장실이 아닐까. 그곳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아도 전혀 이상치 않은 공간. 생리적 욕구를 그대로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 오롯이 사색만 해도 되는 공간. 선악과를 먹기 이전 가장 행복했다던 그 시절 그 순간이, 바로 화장실에 있다.
카타르시스(Katharsis). 흔히 희열을 느꼈을 때 카타르시스를 말한다. 엄청난 짜릿함과 쾌감, 그것이 카타르시스다. 이는 최초의 문학(예술) 이론서 혹은 문학 비평서라 할 수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등장하는 용어다. 이 말은 우리말로 ‘배설’을 의미한다. 우리 몸 안에 것을 배출했을 때 나를 감싸는 그 감정. 그것이 카타르시스다. 그런 의미로, 화장실은 가장 카타르시스적인 공간이다. 우린 매순간 그곳에서 배설하며 정화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바. 나는 이것을 라캉이 말한 주이상스(Jouissance)라 본다. 그러니 화장실은 주이상스적 공간이기도 하다. 배설을 통한 희열과 정화와 주이상스가, 바로 화장실에 있다.
해우소(解憂所). 풀 해, 근심 우, 장소 소. 근심을 푸는 장소라는 말. 이것은 불교에서 화장실을 일컫는다. 불교적 표현으로 하자면, 번뇌가 사라지는 곳이다. 영어권에서도 화장실을 restroom이라 부르지 않던가. 외국어 고수들이 말하길, toilet이나 W.C 보다는 restroom을 많이 쓴다고 한다. 이 역시 우리말로 휴식 공간을 의미한다. 일할 때 종종 화장실로 피신 갔던 기억이 다들 한 번쯤을 있었으리라. 그곳에 앉아 모든 근심과 번뇌를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지 않았던가. 근심과 번뇌의 소멸이, 바로 화장실에 있다.
카니발(Carnival). 물론 특정 차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일종의 축제를 의미한다. 이는 다소 특별한 축제다. 지배 문화에 대한 풍자와 패러디를 통해 권력 관계를 뒤엎는다. 이때에는 정신적 상부구조보다 물질적 하부구조가 더 우선시되며 먹고 싸는 그로테스크한 것들이 강조된다는 게 바흐친의 분석이다. 즉, 사회가 제약하고 있는 금기들이 해체되는 일탈과 전복의 축제다. 바흐친이 분석한 카니발적 요소들은 꼭 화장실과 닮아있다. 화장실은 너와 내가 다르지 않음이 확연히 드러나는 카니발적 공간이다. 수직적 우열관계의 해체가, 바로 화장실에 있다.
그곳은 카타르시스를 만끽할 수 있는 에덴이며, 카니발이 연거푸 일어나는 해우소다.
이러니 어찌, 신성치 않다고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