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졸업에 대한 일상
내가 신입생 때, 90년대에도 애들이 태어났냐고 했다. 지도 89년생인 주제에. 앞자리 다르다고 유세는. 그리고 졸업할 때 되니, 아직도 0으로 시작하는 학번이 학교를 다니냐고 했다. 화석 혹은 암모나이트 뭐 그런 류의 것들로 분류되더라. 같이 나이 먹어가는 처지에, 꼭 그래야만 속이 시원했냐!
어쨌거나 마지막 학기를 마쳤다. 물론 졸업은 아니다. 그 흔한 토익 점수 하나 없어서. 진짜 토익 공부하기가 왜 이렇게 싫은지 모르겠다. 심지어 공부해도 안 되는 거 같다. 바보인가 봐. 그래서 수료상태가 될 거 같다. 근데 학교가 좀 양아치인 게, 돈을 안 내면 성적 증면서? 그런 거 같은 서류들을 못 뽑게 한단다. 최소 1학점 비용인 18만원을 내야한단다.
내가 화가 나는 게, 이게 입학할 때도 마찬가지지 않냐 이거다. 수시비용이 어마무시하지않냐 이거다. 진짜 어마어마한 게 아니라, 어마무시하다. 뭐 내가 공부를 잘 못해서 그런 걸 수도 있는데, 수시 비용이 거의 50만원 들어간 거 같다. 당시 내 친구들도 보면 대부분 그랬다. 지금은 5개인가? 밖에 안 된다고 하는 거 같은데. 그랬거나 저랬거나 학교에서는 수시비용 챙겨 먹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거 같다.
학교 다니면서 내야 하는 등록금은 말해 뭐해. 케이윌에 <말해! 뭐해?>랑은 어감이 다르니, 괜히 그 노래 흥얼거리지 않았음 좋겠다. 요즘은 장학제도가 잘 되어 있어서 여기저기 찾아 먹으면 얼추 작은 비용만으로도 되는 거 같긴 하다. 특히 한국장학재단을 잘 이용해야 한다. 학교에서 이것저것 하는 것도 많으니까 이것도 꼭 챙기길. 나는 진짜 바보 같아서 제대로 챙겨먹은 게 없는 게 천추의 한이다.
갑자기 생겨난 요상한 지도 교수 면담 제도부터 해서, 학교에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여태껏 하나도 없었는데 졸업하려고 하니까 봇물이 터진다. 관심이 있으니 불만이 생기는 거겠지 하고 좋게 봐주었음 좋겠다. 요지는, 대학교가 마치 기업화되고 있는 게 슬프다는 거다. 앞서 말한 지도 교수 면담 제도가 ‘요상’하다고 표현한 것도, 이 제도가 굉장히 자본주의적 시스템으로 작동하게끔 만들어 놓은 거 같다는 생각에서다. 사제 간의 학문적 교류가 아닌.
순수 학문은 점차 외면 받고, 좋아 보이는 이름은 죄다 갖다 붙인 요상한 학과들은 우후죽순 생겨나고. 사실 내가 전공한 과도 그런 거지만. 학교에서 학문보다는 취업 스킬을 배워가려는 작태도 사실 달갑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사회부적응자 소리를 듣는 걸 수도. 그럼에도 대학이 학문을 향한 통과의례가 아니라, 기업을 향한 통과의례가 되어버린 현실이 맞나 싶다.
아무튼, 드디어 끝이다. 졸업은 아니지만 학점 이수는 끝났으니 졸업과 매한가지지 뭐. 근데 이 졸업은 약간 슬프다. 중학교 다음은 고등학교, 고등학교 다음은 대학교. 이런 식으로 기존의 졸업은 넥스트 스텝이 있었잖아. 이 졸업은 그렇지가 않다. 이 사회부적응자의 넥스트 스텝은 과연 어디로 향할는지.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증말. 에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