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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깨비 Feb 01. 2017

넌 더럽지 않아

#12-3 화장실에 대한 일상


왜인지 화장실하면, 군대뿐이 안 떠오른다. 다 알다시피 군대는 단체다. 개인적인 공간은 전혀 없다. 딱 한 군데, 화장실만이 가장 사적인 공간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그럴까? 군대에서 화장실은 가장 안락한 공간이었다. 물론 더럽긴 매한가지다. 오물이 이곳저곳에 튀어 있고, 냄새도 지독하고. 그럼에도 갓난 이등병 때에는 그곳이 생활관보다 훨씬 오물이 적고, 냄새도 덜 한 곳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무슨 대한민국 육군 고생은 지가 다 한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사실 난 별명이 꿀벌일 정도로, 꿀쟁이였다. 내가 있던 부대가 워낙 빡센 곳이기도 했는데, 그나마 내가 그들 중에는 편안하게 지냈다. 나보다 더한 놈들도 있었지만, 그 정도 꿀 빤 거에도 만족한다. 물론 다 상병 이후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등병 때는 아무리 편한 곳에 있어도, 아무 일도 안 한다고 해도 편할래야 편할 수가 없다. 군대가 힘든 건 훈련 따위라기보다, 내무생활이니까. 다른 이등병들도 오죽 했을까.
   
나는 밥을 느리게 먹는 편이다. 중학교 때는 교실에서 점심을 먹으니까 상관없었는데, 고등학교 때는 급식실에 가서 먹어서 문제가 좀 있었다. 내가 밥을 천천히 먹으니까 같이 먹는 친구들이 나를 기다려줘야 되잖아. 그래서 별명이 다람쥐였다. 막판에 가면 입안에 반찬을 다 집어넣고 오물조물 씹는다구. 더 큰 문제는 군대에서였다. 거긴 친구도 아니잖아. 선임들이 날 기다릴 수 없는 노릇이잖아. 그렇다고 음식을 남긴다? 쳐 맞을 일 있나. 최대한 조금 받고 최대한 빨리 먹으려 했다. 그래도 쉽지 않아서 일부러 일을 더 하다가 혼자 밥 먹을 궁리만 했다. 맘 편히 밥 좀 먹게. 
   
아이스크림 같은 부식이 나오면 몰래 건빵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떨어진 돌멩이도 맛있을 이등병 시절에, 아이스크림 같은 한줄기 빛 같은 음식을 내 음식 먹는 속도 때문에 포기할 수는 없으니. 그렇다고 생활관에 앉아 이등병 조무래기 혼자 아이스크림을 빨 수는 없잖아. 그래서 내가 찾은 곳이 바로 가장 개인적인 공간, 화장실이었다. 5.1 서라운드 채널로 들리는 오물 떨어지는 소리와 4DX관은 비교도 안 되는 냄새들이 종종 걸림돌이 되긴 했지만, 아이스크림을 향한 내 집념은 막을 수 없었다. 이게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쉽더라. 맘 편히 먹을 수 없는 빵이나 그런 간식 같은 걸 자연스럽게 화장실에 들고 가서 먹게 되더라니까.
   
내 지난 군대 생활의 연민을 느껴달라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본의 아니게 느꼈다면, 그럼 좋고. 약간 도깨비 따라한 건데, 알아봐주면 좋고. 작작해야겠다. 아무튼, 더럽게만 느껴졌던 화장실이란 곳이 이렇게 안락한 공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생리작용을 해소할 수 있는 곳이 화장실이잖아. 군대에서 드는 분심들이 화장실에만 가면 해소됐다. 그 달콤한 몽쉘(난 초코파이보다 몽쉘파다.)이나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물면 어찌나 행복하던지. 그때 알았다. 인간 자체가 인간이 내뱉는 오물보다 더 더러울 수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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