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시작에 대한 단상
친구가 연인이 생겼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질문. “예뻐?” 혹은 “잘생겼어?” 이것은 으레하는 질문이기 때문에 별로 재밌지 않다. 돌아오는 대답이 뻔하니까. “나한텐 그 누구보다 멋져 혹은 예뻐” 재미없는 대답들. 우리가 궁금한 건 대답보다 실물이지 않나. 보다 궁금한 건, 그 다음에 나오는 질문. “어떻게 만났어?” 무언가의 시작은 언제나 설레니.
우리의 호기심 대부분은 시작을 찾는 것에서 온다. 우리는 여지까지 우주의 시작, 지구의 시작, 생명의 시작 등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뿐 만인가.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도 가장 먼저 찾는 것이 그 시작이다. 우리는 이를 흔히 ‘진상규명’이라 부른다. 요즈음 제일 많이 듣는 단어가 아닌지. 우리는 항상 어떤 시작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다.
탄생, 기원, 원인, 진상, 시초, 원조 등등. 시작을 의미하는 무수한 말들이 있다. 시작은 그만큼 의미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시작을 탐구한다. 최초로 시작을 탐구하려던 노력은, 바로 신화겠다. 우주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인간은? 등등의 질문을 당시에 합리적으로 상상해 낸 것이 바로 신화다. 이것에 윤리와 규범이 들어가면 종교가 되는 것이고.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학문인 철학 역시 마찬가지다. 최초의 철학자라 불리는 탈레스를 자연철학자라 지칭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 역시 시작의 시작을 찾으려는 노력.
이는 끝나지 않는 탐구다. 어떤 것의 시작은 어떤 것의 끝만큼이나 모호하다. 내가 너를 좋아한 게 언제부터였을까? 우리가 왜 친해졌지? 등의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리기란 쉽지 않다. 그 시작을 찾기란 정말이지 까다롭다. 언제부턴가 너를 좋아했었고, 별다른 이유 없이 너와 친해졌다. 우주와 생명의 시작을 찾는 것만큼이나,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에 대한 시작을 찾는 것 역시 쉽지 않다.
그래서 드는 생각, 과연 시작이 존재할까? 어쩌면 모든 것이 뫼비우스의 띠. 에셔의 그림만큼이나, 바흐의 캐논만큼이나 우리네 인생도 시작이 곧 끝이고, 끝이 곧 시작이 아닌지. 사실 우린 모든 것이 끝이 났을 때 그 시작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던가. 끝은 또 다른 시작을 낳고, 시작은 또 다른 끝이 된다. 우리가 미래를 궁금해 하듯이 과거에 집착하는 까닭이기도 할 테다. 우리가 항상 시작을 궁금해하는 이유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