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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깨비 Feb 01. 2017

엄마

#13-2 시작에 대한 상상


미워 죽겠다.
   
세상 그 누구를 증오하든 상관없다. 하지만 너한테만은 그래선 안 된다. 근데, 난 왜 자꾸 네가 이토록 미운 걸까. 그게 더 치가 떨린다. 증오해선 안 될 사람을 증오하는 나 자신을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모르겠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세상 모든 고통을 짊어졌던 그 날, 너는 나에게로 왔다. 내 품에 안긴 자그마한 너와 눈이 마주친 순간,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가 핑 돌았다. 축복이란 말로도 이루 말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어떤 것도 멈추지 못했던 나의 고통은 일순간 환희로 바뀌었다. 옆에서 내 손을 꼭 잡아주었던, 내가 가장 사랑하는 그 남자도 그 순간만큼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으나, 너만은 아니었다. 너의 파닥이는 체온이 내게 미쳤을 때, 나는 이 세상에 진심으로 감사라는 걸 해봤다. 너는 내게 그랬었다. 
   
내게 축복을 가져온 나의 작은 천사. 이윽고, 너는 검게 물들었다. 나도 모르게 내 두 손을 너의 목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그때의 그 두 손의 떨림. 온 몸이 흔들렸다. 방 안 전체가 흔들렸다. 내 손 끝이 너의 살갗에 닿는 순간, 너는 천장이 찢어지듯 내질렀던 울음을 거두고 별안간 웃었다. 나를 보고 방긋 미소 짓는 너에겐, 티끌만한 어둠도 없었다. 나는 주저앉고 말았다. 악마는 나였다. 
   
너의 울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나는 방구석에 웅크려 귀를 막고 주님의 기도를 외웠다. 하늘이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저를 악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게 해주소서. 내 안의 사탄을 몰아내주소서. 저 작은 천사에 대한 증오와 미움을 앗아가소서. 부디.
기도 소리가 커질수록 너의 울음소리도 커졌다. 마치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여보, 아니 오빠. 며칠만 휴가 내고 나랑 같이 있어주면 안 돼? 애기 혼자 보기 너무 힘들어.”
당신에게 건넨 한줌의 희망을 담은 용기. 당신은 철저히 외면했다. 
   
“나 이번에 중요한 프로젝트 맡았다고 했잖아. 이거 잘돼야 너랑 미나랑 행복하게 해줄 수 있어. 그치 미나야~”
그가 너를 번쩍 안아 들자, 너는 꺄르르 웃었다. 내게 보여주었던 그 악랄한 모습은 애초에 없었다는 듯이, 너는 그토록 해맑았다. 울음을 보인 건, 나였다. 서럽게 울며 그에게 하소연했으나 소용없었다. 
   
“유별나게 왜 그래. 다 잘들 하잖아.”
유별난 건, 나였다. 모두들 잘 하는데. 내가 이상한 거였다. 원래 아이는 저렇게 크는 건데, 나만 유별났다. 나는 엄마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아니, 인간, 아니, 동물이었다. 
   
“자기가 장인어른 손에만 자라서 더 힘든 거 아냐? 우리 엄마한테 전화해볼까?”
그의 뺨을 때렸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누군가를 때려본 적이 없었다. 뺨을 맞은 그보다 내가 더 놀랐다. 그 순간에도 너는 여전히 해맑았다. 방안을 가득채운 침묵 속을 너만이 헤집고 다녔다. 나는 외투를 집어 들고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도심 속 네온사인이 휘청거렸다. 도로에서 삐져나오는 경적 소리가 가슴팍을 쳤다. 나는 도심 한 가운데 주저앉아 울어댔다. 너처럼.
   
“이제 오니?”
시어머니는 너를 등에 업고 내게 조용히 들어오라고 했다. 모두를 깨워놓은 너는, 소름 돋게 편안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너를 방안에 눕히고 내게 왔다. 거실 소파 맨 끝자락에 몸을 둘둘 말고 있는 나를 꼭 껴안아주었다. 그녀의 체온이 나를 녹였다. 하염없이, 하염없이 흐느꼈다. 
   
“어머니.. 제가 잘못된 거죠?”
그녀는 나를 토닥거렸다. 마치 내가 너에게 그랬듯이. 나는 참고 참았던 소리를 뿜었다. 마치 너가 나에게 그랬듯이.
   
“너무 힘들면 병원 가서 상담이라도 받아 보자.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걸까?
   
그러면,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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