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 시작에 대한 일상
지금의 너보다 더 어렸었던 그 해,
네가 태어났다던 6월 중에 어느 한 날,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었던
지극히도 평범했던 그 날.
널 처음 본,
그날부터였다.
차라리 그날이
무척 더웠거나, 무척 추웠거나,
무척 흐렸거나, 무척 좋았다면.
하필 그날이 너무나 평범해서
모든 날이,
그 순간이 되었다.
바다가 파도를 치듯,
수풀이 바람에 나부끼듯,
달이 지구를 맴돌 듯.
그것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었다.
차라리 선택할 수 있었다면,
수백 번이고 수천 번이고
절대 시작 하지 않았을.
이것은 이미,
신이 정한
모.나.드였으니.
*모나드
내가 문과에 온 이유 중 하나였던, 미적분을 만들었다는 라이프니츠의 핵심 용어 중 하나. 미적분의 창시자 자리를 두고 뉴턴과 끊임없이 싸웠지만, 지금은 거의 라이프니츠로 굳어지는 판세인 듯. 모나드에 대한 각주인데, 별 이상한 소릴 다 하네. 아무튼, 모나드는 이런 라이프니츠의 사상 중 내게 가장 흥미로웠던 것이었다. 그가 만년에 저작한 <모나드론>에서 분석한 핵심 개념으로, 세계의 실체를 이루는 정신의 원자로서 모나드를 언급한다. 모나드는 ‘창문이 없는 단지’이기에 서로 소통하지 않는다. 이를 조화롭게 하는 것으로 신을 말할 수 있겠다. 신이 미리 정한 법칙에 따라 모나드의 작용이 생긴다는 게 ‘예정조화설’이다. 이 모든 것은, 이미 신이 정해 놓으신 것이다. 모나드로써. 혹은 모나드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