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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깨비 Feb 22. 2018

그리워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지만 <리틀 포레스트>

본격 팩션 영화 에세이

[본격 팩션 영화 에세이]


그리워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지만, 단지 그 시간이 좋아

<리틀포레스트>


* 이 글은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 초청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너에게 청첩장을 받았다. 그날도 너는 손수 만든 정갈한 음식을 가져왔다. 음식은 가장 먼저 눈으로 먹는 거라며, 정작 너는 먹지도 않는 당근을 이번에도 기어코 올려놓았다. 푸드스타일리스트가 되겠다며, 너는 매일 같이 너의 실패작들을 내게 가져오곤 했다. 음식에서도 우리만의 고유한 오방의 조화가 중요하다며, 당근은 빼먹지도 않고 항상 들어있는 그런 음식을. 난 투덜대며 너의 실패작을 반갑게 맞이했다. 두 팔을 괴고 별안간 내게 다가오며 그런 말을 하니, 안 그러고 배길 수 없었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음식이 쉬이 넘어가지 않더라. 이것은 더 이상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실패작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영화 <리틀 포레스트>(2018)를 보는 내내, 너는 나와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혜원(김태리)이 수능 이후 연락이 닿지 않는 엄마(문소리)와 함께였던 것처럼. 혜원이 요리할 때마다 나타나는 엄마의 잔상, 또는 추억. 그것들처럼, 스크린 속 혜원이 요리할 때마다 혜원은 너가 되었다. 혜원이 약간은 미련하다 싶게 천연재료를 다듬는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내가 배고프다며 대충 먹자고 해도, 음식은 과정에서 비롯된다는 너가 있었기 때문일 테다. 만들어진 음식에 익숙한 나머지 맛이 우러나는 과정을 잊고 있다며, 식탁에 앉아 투정부리는 내게 손가락을 튕겨 물을 튀기는 너 말이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 혜원은 지긋지긋한 고향을 벗어나 도시로 떠났지만, 얻은 건 허기뿐이었다. 도시의 삶은 레디메이드가 범람하는, 과정이 부재한 속도의 것이었다. 식어빠진 인스턴트 음식들로 자신을 속이며 치열하게 준비한 임용 시험은 떨어지고, 자신을 전시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남자친구에게는 지치고, 혜원의 허기는 점점 더 해갔다. 결국 혜원은 ‘배가 고파’ 고향으로 돌아온다. 어떠한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배가 고파 고향에 간다. 그곳에서 오랜 친구인 재하(류준열)와 은숙(진기주)을 만나 조금씩 허기를 채워간다. 여전히 남아있는 엄마의 그것과 함께.     


영화를 보고나니 너가 물을 튀기며 했던 말이 이해됐다. 너가 해준 음식만 먹으면, 왜 그토록 포만감이 오래갔는지도. 혜원은 단밤을 재우며 가을이 깊어지길 기다리고, 감을 말려 겨울이 깊어지길 기다리는데, 이 지난한 기다림 속에 알짜배기 맛이 탄생해 포만을 선물한다. 이것이 학습된 나는, 어느덧 너의 음식을 기다리는 기다림이 곧 포만감이기도 했다. 혜원도 그래서 고향을 찾은 건 아닐까? 혜원은 떠나가 버린 엄마를 찾기 위해 애써 노력하지 않는다. 그저 밭을 가꾸고 고모를 돕고 친구들과 웃고, 정성껏 음식을 해 먹는다.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은 음식을 만드는 그 시간과 닮아, 혜원의 허기를 채워준 것은 아닐까? 어쨌든, 음식은 나오니까.   


  



너는 한 끼를 먹어도 제대로 먹어야 한다고 했다. 그 사람이 먹는 음식이 곧 그 사람이라며. 이는 내가 소비하는 것이 바로 나를 대변한다는, 현대 소비 사회에 대한 고찰이기도 하다. 산업사회에서는 ‘소유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였지만, 지금 소비사회에서는 ‘무엇을 향유하는 가’가 중요하다. 길거리에서 매연과 함께 들이 마시는 컵밥, 그리고 폐기 처리된 편의점 도시락을 먹다 내뱉는 혜원과 고향에서 세심하게 음식을 해 먹는 혜원은 다르다. 대충 라면을 끓여 먹는 나와 너의 음식을 먹는 내가 다르듯. 투덜대면서도 너의 음식만을 마냥 기다린 이유다. 너의 음식을 먹는 그 순간에, 나는 비로소 내가 되는 듯했으니. 재하가 혜원의 음식을 먹고 몰래 미소를 띠듯.    


오늘날 형성된 ‘킨포크 문화’는 너처럼, 혜원처럼 도시에 지친 현대인들이 한 끼를 먹어도 제대로 먹자는 부름이었다. 킨포크는 친척이라는 의미인데, 직접 수확한 식재료로 밥상을 차려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자연 속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문화를 일컫는다. 최근에 나온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나 ‘오캄’, ‘라곰’, ‘휘게’ 등의 용어가 유행하는 것 역시 같은 문화적 흐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이 약간 변형돼 ‘여유로운 삶’을 자랑하며 다른 사람과 구별 지으려는 경향이 보이기도 한다.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가 언급한 ‘문화자본’이 풍부하다는 걸 세련되게 자랑하고 있는 셈이다. 마치 명품이나 외제차를 전시하듯 말이다.  


  



그러나 영화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자연 속 삶을 제대로 보여준다. 너와 나, 그리고 친구 몇과 함께 놀러갔던 너의 할머니댁에서 2박 3일이 생생하게 떠오르기에 충분할 정도로. 이 영화는 기존의 오락영화처럼 극명한 사건이 없음에도 지루하지 않다. 기존의 그것처럼 화려한 움직임 없이 음식과 자연만을 보여주는 데도 볼거리가 다채롭다. 마치 너와 함께했던 그 순간들이 꼭 그랬던 것처럼. 그저 비닐하우스에서 고추를 따고 근처 냇가에서 물장구를 좀 쳤을 뿐인데, 그게 그렇게 신이 났었다. 혜원과 재하, 은숙이 냇가에 앉아 술을 먹는 장면이 뭉클한 이유고, 혜원과 재하가 방울토마토를 서로 던져 먹는 평범한 장면이 설레는 까닭인가보다.   

  

너에게 청첩장을 받은 그날, 나는 더 이상 너의 음식을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물론 그리워는 할 테다. 기다림은 무언가가 오길 바라지만, 그리움은 다르다. 그저 추억할 뿐이다. 혜원이 엄마를 찾아 나서지 않은 이유일 테다. 무언가를 바라며 애써 기다리기보다, 단지 엄마와의 시간을 추억하며 그 시간과 감정을 만끽했을 테다. 결국 이 그리움은 오랫동안 정성 드린 음식처럼 내 안에서 성숙이란 맛을 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너는 내게 물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안 먹냐고. 나는 용기 내어 너에게 말했다.   


  

“사실 나... 당근 싫어해. 안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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