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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깨비 Mar 05. 2018

색다른 케이퍼 무비 <로건 럭키>

당신들이 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루저는 아니야.

- 색다른 케이퍼 무비 <로건 럭키 -

당신들이 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루저는 아니야.


* 이 글은 브런치 무비패스 영화초청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헤헷.



영화 <로건 럭키>(2018)를 봤다. 오션스 시리즈로 유명한 스티븐 소더버그가 오랜만에 가져온 케이퍼(caper) 무비다. 다수의 범죄 전문가들이 모여 한탕을 계획하는 영화 말이다. 누구는 ‘강도, 강탈’이라는 의미를 지닌 하이스트(heist)를 붙여 하이스트 무비라고도 한다. 그럼에도 케이퍼라는 말이 좀 더 와 닿는 것은 이것이 염소(goat)의 라틴어인 capra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풀밭에서 노는 염소가 이리저리 깡총거려 도무지 종잡을 수 없어, 케이퍼라는 말에 천방지축이나 신나게 뛰어다니다, 까불어대다라는 의미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영화들이 단순한 범죄영화가 아닌 천방지축 신나게 뛰어다니며 관객들에게 쾌감을 선사한다는 의미에서, 케이퍼 무비가 더 적확할 듯하다.     


영화 <로건 럭키>는 일반의 케이퍼 무비와는 다르다. 흔한 케이퍼 무비의 플롯을 따르지 않는다. 케이퍼 무비의 클리셰를 철저히 배반한다. 그래서 신선하다. 보통 케이퍼 무비의 주인공들은 각 분야의 전문가다. 영화 <오션스 일레븐>이나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을 떠올려보면,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로건 럭키>의 주인공들은 어딘가 모자른 사람들이다. 사회적으로도 약자의 위치에 있는 자들이다. 주인공 지미 로건(채닝 테이텀)은 잘 나가는 럭비 선수였으나 다리를 절어 변변찮은 직업조차 못 갖고 이혼마저 당한 이다. 그의 동생 클라이드 로건(아담 드라이버) 역시 팔 한쪽이 없고, 그들의 강력한 조력자 뱅 형제들은 그냥 봐도 <덤앤더머>를 찍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감독의 캐스팅 역시 일반 대중들의 고정관념을 파괴한다. 항상 육체적 능력을 과시하던 채닝 테이텀은 이 영화 유일의 지략가로 등장하고,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나 <패터슨> 등의 영화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선보였던 아담 드라이버는 팔 한쪽이 없는 장애인이면서 어딘가 느릿한 인상적인 연기를 보였다. 007 시리즈로 냉정하면서도 엘리트적인 이미지를 구축한 다니엘 크레이그의 양아치스런 연기도 인상 깊다. 감독은 대중들이 스타에게 기대하는 이미지를 먼저 배반시키며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나아가 관객들에게 익숙한 케이퍼 무비 공식을 비틀면서 이야기의 활력을 불어 넣는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범죄가 성공한 바로 직후의 이야기다. 모든 돈을 운반하던 지미 로건이 돈이 담긴 트럭을 그냥 버려두고 떠난다. 여태껏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해 의자에 파고 들었던 몸을 스크린 가까이 붙이게 만든 장면이다. 마치 세상에 항변하는 듯하다. 우리가 세상이 규정한 틀 안에 미치지 못하는 부류의 인간들일지라도, 하고자 하는 바를 이뤄낼 힘이 있다고. 결국 이뤄냈다고. 그 장면은 결과에 집착하는 게 아니라, 결과를 만들어낸 과정을 통해 자신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선언하는 듯했다. 정말 여타 케이퍼 무비와는 다르구나하며 왜 감독이 인물 캐스팅과 설정을 이렇게 했는지 단 번에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영화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결국 마무리는 통쾌한 승리극으로 끝나야만 하는 케이퍼 무비의 클리셰는 여전하다. 사실 이 부분을 포기한다면 케이퍼 무비라고 부를 수도 없을 테다. 여기서 영화는 케이퍼 무비 특유의 반전과 각 사건들의 숨겨졌던 복선들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앞선 장면에서 혼자 많은 의미를 부여했던 나로서는 아쉬운 부분이었지만, 역시나 케이퍼 무비는 속고 속이는 반전이 매력임을 느끼기도 했다. 배우들의 연기 변신과 색다른 케이퍼 무비의 쾌감을 즐기고 싶으신 분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 다만 이 영화에는 할리우드 식 유머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부분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자신이 이 유머 코드에 맞지 않는다면 영화 초중반이 무척 지루할 것임을 감수하길 바란다. 영화 <로건 럭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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