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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Feb 15. 2023

작은 존재의 앎과 삶은 결코 작지 않다

마야 마이어스, 『작으면 뭐가 어때서』,  염혜원 그리고 옮김, 비룡소


크기나 몸집이 작다는 이유로 쉽게 무시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존재들을 생각한다. 물성을 지닌 어떤 것들. 또는 생명을 지닌 어떤 이들. 그들이 맡고 있는 역할과 지니고 있는 능력까지 ‘작다’고 여기는 무례한 시선과 언행들은 어떤 것들과 어떤 이들의 존재를 쉬이 왜곡하고 편히 축소한다.  


여기, 이름부터 ‘작다(little)’는 뜻을 품고 있는 한 아이, ‘엄지’가 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엄지를 그저 키 작은 꼬마라 여기는 어른들이 있다. 키가 큰 어른들은 엄지가 할 수 있는 것도, 엄지가 아는 것도, 엄지가 배우는 것도 작다고 생각해 엄지의 삶까지 작다고 여긴다. 엄지는 그런 어른들 앞에서 작지 않은 자신을 당당히 말한다. 책을 빌릴 때도, 음식을 주문할 때도, 물건을 살 때도 엄지는 자신을 ‘꼬마’라는 단어 안에 넣어두려는 어른들에게 힘껏 외친다. 키가 작은 사람의 앎은 결코 작지 않다고. 키가 작은 사람의 노력은 결코 작지 않다고. 그리하여 키가 작은 사람의 삶 또한 결코 작지 않다고. 그렇게 날마다 엄지는 왜곡되고 축소되는 자신의 존재를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분투를 이어간다. 외친 만큼 나아가고, 자라가고, 살아가면서.  



 “어린이가 어른의 반만 하다고 해서 어른의 반만큼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가 아무리 작아도 한 명은 한 명이다.” -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사계절출판사


그러던 어느 날, 엄지의 교실에 새로운 친구 ‘산이’가 전학을 오게 된다. 엄지가 보기에도 자신보다 키가 더 작아 보이는 산이. 엄지는 산이 곁에 다가가 대화를 나눠보고 싶기도, 누가 더 크고 작은지 키를 재보고 싶기도, 친구를 놀리는 ‘못된 친구’의 존재에 대해 경고해 주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마음과는 다르게 산이에게 말 한마디 쉽게 건네지 못하고 있던 엄지. 그런 엄지를 달라지게 한 것은, 산이의 존재를 왜곡하고 축소하는 ‘못된 친구’의 무례한 시선과 언행이었다.   


산이의 몸은 점점 더 움츠러든다. 엄지의 몸은 점점 더 달아오른다. 괴롭힘을 당하는 산이의 사정이 이내 자신의 사정이 되어버렸기에, 잔뜩 주눅이 든 산이의 모습이 결코 자신의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엄지는 산이의 옆에 서서 ‘못된 친구’를 향해 목청껏 소리친다. “난 꼬마가 아니야!” 이 단단한 외침의 파장은 엄지와 산이가 속한 공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게 될까. 믿고 싶은 상상이 실현되는 과정은, 공간 안에 속한 이들과 공간 밖의 읽는 이들 모두를 안심시킨다. 모두를 안전하게 한다.  


공감의 마음을 토대로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까지 지키는 행동을 선보였던 엄지. 그런 엄지에게 산이는 조심스레 자신의 마음을 내보인다. 독자들까지도 쉽게 왜곡하고 편하게 축소해 받아들였을 산이의 마음. 그러나 어쩌면 처음부터 엄지의 마음보다 더 크고 단단했을지도 모를 산이의 마음. 산이가 엄지에게 건넨 모든 말은 크기와 몸집을 무심하게 규정하는 세상의 척도를 다정하게 왜곡한다. 산이와 엄지가 나눈 대화는 결코 작지 않은 엄지와 산이의 삶을 한 뼘 더 자라게 할 것이다. 활짝 웃고 있는 엄지와 산이의 환한 얼굴을 바라보며 확인하고, 확신한다.


마야 마이어스, 『작으면 뭐가 어때서』,  염혜원 그리고 옮김, 비룡소, 2023



이 작품을 보다가 궁금해져서 직접 원작의 정보를 찾아보았다. 이 책의 원제는 ‘NOT LITTLE’이며, 원작에서 엄지와 산이의 이름은 각각 ‘Dot’과 ‘Sam’ 임을 알고서 혼자 얼마나 박수를 쳤는지. 존재의 작지 않음을 선언하는 제목. ‘점(Dot)’처럼 작은 이름에 자신을 가두지 않으려는 ‘엄지’. 앎과 삶의 크기를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산(Mountain)’이 된 ‘Sam’. 이 모든 것이 감탄과 감동의 기제가 되는 그림책, 『작으면 뭐가 어때서』. 염혜원 작가님 특유의 색연필 그림체가 작지만 작지 않은 이들을 포근히 끌어안는 듯한 이 그림책은 (나이와 키 모두를 불문하고) 누구의 마음에라도 작은 물결을 일렁이게 할 것이다. 눈에 보이는 크기로만 좁고 얕게 세상을 감각하는 이에게는 자신의 작은 마음을 넓힐 고마운 기회가 되어줄 테니. 자신만의 분명한 척도와 기준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는 자신의 단단한 삶을 지지하는 반가운 응원이 되어줄 테니.   



* 마야 마이어스, 『작으면 뭐가 어때서』,  염혜원 그리고 옮김, 비룡소,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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