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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Feb 17. 2023

나와 너를 가능케 할 우리의 잠, 우리의 꿈

리사 아이사토・하디 엔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꿈』, 북뱅크


봄의 꿈과 여름의 꿈은 다르다. 가을의 꿈과 겨울의 꿈도 다르다.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잠들고 저마다 다른 모양의 꿈을 꾸는 네 계절. 계절은 모두 확신한다. 언젠가 깨어날 자신의 잠을. 언젠가 실현될 자신의 꿈을. 각자의 확신이 저마다 아름다운 각자의 계절을 가능케 한다. 각자의 시기에 맞춰 일어나고 피어나고 퍼져나갈 각자의 아름다움을 가능케 한다.


그러나 각자의 아름다움은 자기 자신의 계절만 있어서는 가능하지 않다. 봄은 겨울의 눈지붕 아래에서 자야 하고, 여름은 봄의 꽃봉오리 안에서 자야 한다. 가을은 여름의 익어가는 열매 속에서 자야 하며, 겨울은 가을의 낙엽 밑에서 쉬어야만 한다. 네가 깨어있음으로 인해, 네가 피어있음으로 인해, 네가 퍼져나감으로 인해 가능한 나의 잠과 나의 꿈. 각자 잠에 들고 각자의 꿈을 꾸고 각자의 색을 발하는 시기가 겹치지 않음은 모든 계절을 가능케 하는 전제이자, 모든 계절을 살아있게 하는 축복이다.


여름의 익어가는 열매 속에서 잠들고 꿈꾸고 있는 가을


나의 계절이 오지 않았다고 해도, 나의 계절이 이미 지나갔다 해도, 지나간 계절과 지나가고 있는 계절 안에서 나는 여전히 나의 계절을 기다리고 꿈꿀 수 있다. 자신과 다른 계절의 양분들이 웅크린 몸 안팎으로 켜켜이 쌓여간다. 잠을 자고 꿈을 꾸고 있는 것은 결코 무위無爲가 아니다. 내 머리 위에서만 일어나고 피어나고 퍼져나갈 수 있는 나만의 색과 음, 향과 태. 이 모두를 꿈꾸는 것은 무척이나 고단한 과정이다. 나다운 색깔, 나다운 노래, 나다운 향기, 나다운 모습을 갖추기 위해 나는 나와 다른 계절 안에서 기다린다. 나의 꿈속에서 기대한다. 다른 계절에 잠들어 품는 나의 꿈은, 돌아올 시기에 대한 나의 확신은, 내 몫의 삶을 놓아버리지 않기 위한 내 부단한 노력이다.


봄은 봄의 꿈을 꾼다. 여름은 여름의 꿈을, 가을은 가을의 꿈을, 겨울은 겨울의 꿈을 꾼다. 저마다 다른 꿈을 실현해 가는 과정 속에서 누군가는 다시 잠에 들고, 누군가는 다시 깨어난다. ‘다시’라는 부사와 ‘돌아온다’라는 동사로 이뤄진 동그란 세계 안에서, 잠든 이도 깨어난 이도 잠들 이도 모두 자신이 속한 세계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다. 모든 계절은 기꺼이 순환의 위안 속에 제 몸을 맡긴다. 자연스레 눈을 감고, 자연스레 눈을 뜬다.


모든 계절은 나라는 세계를 이룬다.

나와 너라는 계절이 모여 우리라는 사계를 이룬다.


그 어떤 문장으로도 해석이 가능한, 그래서 더 깊게 감격할 수밖에 없는 그림책,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꿈』. 매 페이지마다 시처럼 아름다운 은유의 문장들이 계절의 흐름과 순환을 꾸미고 채우고 감싸고 있는 그림책. 꽃보다 아름다운 이 그림책을 선물하고 싶은 이들이 너무도 많다.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거라는 위로가 필요할 이, 지금이 내 인생의 끝이 아님을 확인받고 싶을 이, 잠시 멈춤의 시간을 지나가고 있으나 내 꿈과 내 삶은 멈추지 않고 멈출 수도 없음을 확신하는 이・・・ 각자가 필요로 할 색色과 음音, 향香과 태態로 다르게 가닿을 이 한 권의 그림책은 저마다 기다리고 기대하고 있을 계절만큼 아름답다. 눈부시도록. 눈물 나도록.


그리하여 언제든 우리는 함께 춤을 출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잠들었을 때에도, 나만 깨어있을 때에도. 네가 잠들었을 때에도, 너만 깨어있을 때에도. 나와 나의 손을, 나와 너의 손을 다정하게 맞잡고 나의 세계와 우리의 사계를 함께 돌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잠과 꿈을 가능케 할 나의 또 다른 계절 속에서. 너의 잠과 꿈을 가능케 할 나의 또 다른 계절 안에서. 시간의 흐름이, 흐름의 위안이 우리 모두를 각자의 시간에 일어나고 피어나고 퍼져나가도록 할 것이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리사 아이사토・하디 엔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꿈』, 김상열 옮김,  북뱅크, 2023



때마다 다른 사랑에 감기고 잠겼던 삶, 저마다 다른 사랑을 만나고 살았던 삶의 모든 순간을 담담하고도 황홀한 아름다움으로 표현한 『삶의 모든 색』. 이 그림책을 만든 리사 아이사토 작가와 그의 자매 하디 엔지 작가가 함께 만든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꿈』에는 『삶의 모든 색』과 겹치는 그림이 두어 장 포함되어 있다. 다른 책에 실린 같은 그림, 다른 이야기로 전달되는 같은 마음을 찾아보는 아름다운 과정은 전작 『삶의 모든 색』을 아꼈던 독자들을 위한 작가의 선물이 아닐는지.



* 리사 아이사토・하디 엔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꿈』, 김상열 옮김,  북뱅크, 2023리사 아이사토・하디 엔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꿈』, 북뱅크리사 아이사토・하디 엔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꿈』, 북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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