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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Mar 03. 2023

우리를 지키는 거리distance/road를 함께 걷기

『두 사람』, 『이 선을 넘지 말아줄래?』, 『가만히 들어주었어』


이십 대의 중턱에서 장거리 연애를 시작한 두 연인. 어린 두 사람은 만난 지 두어 달만에 결혼을 향한 믿음을 품게 되었다. 서로의 가치관을 확인하고 확신한 격주의 짧은 만남과 매일의 긴 대화 덕분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그들은 수년 뒤에 연인에서 부부라는 이름으로 함께 하는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서로의 겹치는 점, 서로의 이어진 선, 서로의 맞닿는 면에 기대어.


두 사람은 드넓은 바다 위 두 섬처럼 함께 살아요. 태풍이 불면 함께 바람에 휩쓸리고 해 질 녘 노을에도 같이 물들지요. 하지만 두 섬의 모양은 서로 달라서 자기만의 화산, 자기만의 폭포, 자기만의 계곡을 가지고 있답니다.
- 『두 사람』 中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두 사람』, 이지원 옮김, 사계절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당연히 너도 좋아할 것이라는 기대. 내가 싫어하는 것을 당연히 너도 싫어할 것이라는 확신. 내게 좋은 것을 너에게도 내어주고, 내게 싫은 것을 너에게도 내어주지 않으려는 선의.


서로에게 내어주는 각자의 배려들은 때때로 우리의 길을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휘게 만들었다. 서로 어긋나도록. 서로 부딪히도록. 서로 멀어지도록. 서로 중첩되지 않는 부피와 면적 앞에서 각자가 내보인 서로 다른 행동은 감정의 기폭제가 되기 일쑤였다. 발산의 방향을 달리 한.


"난 너도 당연히 지렁이를 좋아하는 줄 알았지!"
“새라고 다 지렁이를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 『이 선을 넘지 말아 줄래?』 中


백혜영, 『이 선을 넘지 말아줄래?』, 한울림어린이


탄탄한 스토리 라인을 갖춘 게임 안에서 휴식을 취하길 좋아하는 그. 책 속에서 내가 경험치 못한 다양한 서사를 만나고 구하길 좋아하는 나. 힘들고 지칠 때 혼자만의 동굴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그. 힘들고 지칠 때 나를 알아주고 안아주는 말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나. 그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공감과 위로의 말을 쉼 없이 건네는 내가 버거웠던 그. 내게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의 빠른 해결을 위해 곧바로 대안과 방법을 제시하는 그가 미웠던 나.


나는 그 앞에서 자주 울었고, 그는 내 앞에서 자주 입을 다물었다. 그가 말하지 않았기에 나 또한 당연하다 여겼던 것들과 내가 말하지 않으면 그가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이 우리 관계의 부실한 지축이 되어갔다. 같은 풍경에 둘의 삶을 포개도록 이끌었던 우리의 점, 선, 면에 기대어 지내는 게 점점 더 어려워져 갔다.


토끼는 테일러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었어.
- 『가만히 들어주었어』  中


코리 도어펠드, 『가만히 들어주었어』, 신혜은 옮김, 북뱅크


각자의 충분한 시간과 마음을 상대방에게 내어주길 바라는 영역이 겹치지 않음을 이해할 수 없었던 시간. 그 시간을 지나올 수 있도록, 그 시간을 지나갈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끈 것은 둘이 함께 지새운 수많은 밤이었다. 둘이 함께 나눈 끝없는 대화였다. 동화同化를 꿈꾸는 동화童話는 우리의 서사가 될 수 없음을 알아차렸다. 다름을 향한 이해의 욕구를 내려놓고, 다름에 대한 인정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세상이 두려워 세상을 확대해서 받아들이는 나. 세상이 두려워 세상을 축소해서 받아들이는 그. 우리는 각자와 모두가 안전한 ‘중간’을 찾아갈 수 있도록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이 되어갔다.


서로가 원하는 방식의 공감과 위로를 전하려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기. 같은 취미생활을 함께 즐기지 않아도, 한 공간에서 온기를 나누며 서로의 관심사에 대한 다정한 대화를 이어가기. 섣불리 단정 지어 의도치 않은 상처를 주지 않고, 여전히 그리고 언제까지나 서투를 앎을 인정하기. 각자의 정답이 아닌 우리의 정답을 찾아가며, 우리는 서로의 ‘같음’에만 더는 기댈 수 없는 관계의 지축을 ‘우리 자신’으로 바꾸어갔다. 얼마나 같고 어떻게 다르든 ‘나’와 ‘그’라는 두 사람 자체로 우리 관계를 재정의하게 되자, 휘어졌던 우리의 길은 다른 방향으로 휘어가기 시작했다. 서로의 곁에서 나란한 방향으로.


가끔씩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아도 괜찮아진 우리가 함께 만들어 낸 “세 번째 사람”. 이제는 아이와 함께 ‘셋’으로 걷고 있는 우리의 관계, 우리의 길. “함께여서 더 쉽고 함께여서 더 어려운” 우리의 걸음 뒤로 사랑이라는 발자국만 진하게 남기를 바란다. 어떠한 방향으로 뻗어가거나 갈라지더라도. 어떠한 상태로 여전하거나 달라지더라도.





*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두 사람』, 이지원 옮김, 사계절

* 백혜영, 『이 선을 넘지 말아줄래?』, 한울림어린이

* 코리 도어펠드, 『가만히 들어주었어』, 신혜은 옮김, 북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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