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강미, 『미나의 작은 새』, 길벗어린이
‘파악하다’라는 동사의 뜻은 다음과 같다.
① 손으로 잡아 쥐다.
② 어떤 대상의 내용이나 본질을 확실하게 이해해서 알다.
내 품에서 너를 숱하게 파악했던 오년 반의 시간이었다. 어떤 색을 좋아하는지, 어떤 질감의 음식을 싫어하는지, 어떤 장소를 좋아하는지, 어떤 활동을 싫어하는지. 내 손으로 너를 만지고 안고 쓰다듬으며 네가 어떤 사람인지를 이해하고 알아온 시간이 우리의 등 뒤에 켜켜이 쌓여있다. 그렇다면 지나온 시간을 근거로 내세워 이렇게 말해도 되는 걸까. 지금의 나는 지금의 너를 온전히 이해하고 알고 있다고.
너를 내 곁에 두는 것이 너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유일한 방법이던 때가 있었다. 네가 내 삶의 유일한 중심이고 진리이며 규칙이었던 때. 이전의 내가 좋아했던 다른 것들은 더는 내게 중요하지도 않고, 중요할 수도 없었던 때. 네가 누구인지, 네가 무엇을 바라는지, 네가 어떤 시기를 지나가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알아내기 위해 너를 안고서 너를 읽었다. 너를 안고서 너를 대변하는 책을 읽었다. 너를 안고서 너를 쓰고 그렸다. 이해하지 못해서, 이해할 수 없어서, 이해하고 싶어서 너를 안았던 무수한 날들. 어깨와 손목의 통증은 앎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찌릿한 장기성 대가였다.
그럼에도 네가 날 수 있을 거라는 앎까지 내 삶이 가닿지 못했던 것은, 너를 내 품에서 제대로 떠나보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우연히 저 멀리서 너의 작은 몸이 자유롭게 비상하는 모습을 한두번씩 발견하게 되었을 때, 그제야 나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너의 날개는 처음부터 나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렇기에 너를 안고 알았던 나의 작은 마음이 너만의 큰 날갯짓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는 것을.
너와 손을 맞잡는 시간이 점점 줄어가고 있다. 이제 너는 주로 내 손을 잡기보다 네가 원하는 무언가를 잡아 쥐는 시간으로 너의 빈 일상을 채우고 보낸다. 너는 너의 손으로 너의 세상을 이해하고 알아가는 시간을 충실히 살아가고 있다. 너의 모든 움켜쥠은 너의 세상을 향해 활짝 펼칠 날갯짓의 예고였고, 준비였고, 과정이었다.
숲에서는 전과 다른 향기가 났습니다.
너를 ‘나의 너’가 아니라 ‘그저 너’로 바로 보기 시작하자 알게 된 너의 세계. 너를 따라 날아가 만나게 된 너의 세계. 나에게는 낯설고 어려운, 너에게는 신나고 기대되는 너의 세계로 인해 나의 세계 또한 이전과는 달라져간다. 너를 향한 나의 이해와 앎은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깊어져간다. 내가 주던 모이보다 더 맛있는 모이를 찾기 위해, 내가 주는 안정보다 더 신나는 모험들(과 실패들)을 경험하기 위해 매일 내게서 조금씩 떠나가고 있는 아이. 스스로를 지킬 힘을 차근차근 키워가고 있는 아이는 매일 제 몫의 용기를 내고 있다. 성장이라는 이름의, 고집이라는 별명의, 도전이라는 이유의 용기를.
그렇다면 매일의 나는 어떤 용기를 내야 할까.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으로 살아갈 때의 행복을 놓치지 않고자 아등바등 애쓰는 나처럼, 아이 또한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때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너를 지켜보는 용기. 네가 원하는 그것과 네가 있어야 할 그곳을 ‘재미있다’고 인정하며 너를 지키는 용기. 그리고 하루씩 너를 내게서 떠나보내는 용기. 매일의 큰 용기를 낸 매일의 작은 연습들로 나의 일상을 채우고 보내야겠지. 나를 위해. 너를 위해. 우리의 사랑을 위해.
‘작은 새는 이곳에 남고 싶은 게 아닐까?’ 미나는 작은 새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가만히 벗겨 주었습니다.
낮과 달리 밤이 되면 아이는 손을 필요로 한다. 천천히 잠들 때에도, 자다가 가끔씩 깰 때에도 자신이 붙잡을 손을 애타게 찾는다. 아빠나 엄마의 손을 단단히 붙잡아야 깊은 잠에 빠져드는 아이. 아이의 침대는 두 사람이 누워 함께 자기에 살짝 비좁아졌지만, 여전히 아이는 밤마다 제 몫이라 여기는 온기를 꼭 움켜쥐고서 눈을 감는다.
아이의 옆자리에 누워 나 또한 눈을 감고 생각한다. 이렇게 손을 맞잡고 함께 잠든 밤보다 손을 맞잡고 함께 잠들 밤이 이젠 더 적게 남았겠지. 씩씩하게 혼자 잠드는 ‘진정한 여덟 살’이 되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일곱 살의 너. 무엇이든 혼자 해내려는 낮의 용기가 밤의 용기로 번질 때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너의 손을 잡아줄 거야. 마침내 낮의 용기가 밤의 용기와 뒤섞여 네가 한 발짝 더 우리에게서 멀어질 준비가 되었을 때, 우리는 기꺼이 너의 손을 놓아줄 거야. 그건 네 목에 걸린 목걸이를 벗겨 낼 엄마아빠 몫의 용기니까. 미나가 몹시 힘겹게 내었던, 그러나 결국 미나와 작은 새의 사랑을 지켰던 용기처럼 말이야.
네가 필요로 할 때면 언제든 네 손을 잡아주었던 엄마아빠가
네가 필요로 할 때면 언제든 네 손을 놓아줄 거라고 믿는 너의 마음이
너의 하늘과 숲 속에서 너를 지켜주길 바라며.
네 곁에서 또는 네가 없는 곳에서
너를 너로, 너를 바로 파악하기 위해 애쓰겠다는 다짐으로 5.5년차의 엄마가 쓰는 글.
* 윤강미, 『미나의 작은 새』, 길벗어린이,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