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인 Mar 15. 2023

세상에 울 일 아닌 일은 하나 없어

아이의 눈물을 안아주고, 어른의 울음을 기다려줄 그림책들 -


울음이 내 목구멍에서 나오려는 모든 말들을 가로막는다.

울음이 말을 삼키자, 나의 타오르는 감정은 그저 억센 소리의 울음으로만 드러난다.  


울지 말고 천천히 말해 보라는 말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말 대신 울음을 한 덩어리씩 토해내는 것뿐. 이게 대체 울 일이냐고 묻는 벽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더 거친 오열로 내 마음을 내던지는 것뿐. 그렇게 홀로 아닌 곳에서 홀로 울었던 시간들은 내 안에, 내 뒤에 가득 쌓여갔다.


말보다 눈물이 먼저 흘러나가는 내 모습이 싫었던 때도 있었다. 아니, 사실은 자주 그랬다. 왜 나는 지금의 내가 어떤 생각과 어떤 마음으로 당신 앞에 서 있는지 똑 부러지게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걸까. 차오르는 감정 앞에 내 모든 언어는 내게서 왜 다 숨어버리는 걸까. 울 일이 아닌데도 그저 말도 못 하고 미련하게 울기만 하는 내가 한심해서, 내 단어와 문장은 모조리 다 도망가버린 걸까. 눈물 없이, 울음 없이 바로 나를 드러낼 수 있었다면 홀로 아닌 곳에서 나는 과연 함께일 수 있었을까.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면 눈물로 흐려졌던 시야가 선명해진다.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것들 앞에 서서, 내게서 울음이 빠져나간 자리에 가만히 서서, 아직 남아있는 감정의 재들을 한데 모은다. 발 앞의 재들을 내려다보며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떤 곳인지,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천천히 시간을 들여 판단하고 결정한다. 그때서야 나의 언어들이 내게로 돌아온다. 내게 말을 건다.


“다 울었니? 잘 울었어. 이제 한 번 말해볼까?”


한연진, 『눈물문어』, 위즈덤하우스


나의 울음은 내가 받은 첫 위로였다. 내가 너를 알아. 너의 아픔을, 너의 분노를, 너의 슬픔을, 너의 외로움을 내가 알아. 누구보다 먼저 내가 나에게 보내는 공감의 메시지였다. 누구보다 먼저 내게 내어주는 긍정의 손길이었다. 마음과 감정을 숨기지 않고 이를 부정하지 않았기에 터져 나올 수 있었던 나의 울음. 고여있었다면, 터져 나오지 않았다면 결국엔 나를 곪게 만들었을 나의 눈물이 나를 썩지 않게 만들었다.


뜨겁게 흘러나온 눈물이 다 마르고 나면, 차분하게 정돈된 언어들이 내게서 흘러나갔다. 나로부터 숨은 것이 아닌, 한 발짝 뒤에서 소리 없이 내 울음을 함께 견뎌준 나의 단어들. 사라졌다가 돌아온 것이 아닌, 자신을 필요로 할 때까지 나를 기다려준 나의 문장들. 결국 내가 되어준 나의 언어는 나와 함께 벽 앞에 서 주었다. 그리하여 홀로 아닌 곳에서 나는 혼자가 아닐 수 있었다. 내 곁에는 나의 울음이 있었고, 나의 감정이 있었고, 내가 있었다.


노에미 볼라, 『네가 분수가 된 것처럼 펑펑 울어버린다면』, 홍연미 옮김, 웅진주니어


그럼에도 여전히 떨칠 수 없는 의문 하나. 왜 아무도 내게 ‘세상에는 울 일 아닌 일 하나 없다’고 말해주지 않았을까. 울 일과 울 일 아닌 일을 나누는 것이 누구의 몫이며 권리일 수 있는 걸까. 내 목구멍에서 나오려는 모든 말을 가로막았던 건 사실 내 울음이 아니라, 내 타오르는 감정을 부정하는 그림자들의 그을린 손바닥이 아니었을까. 내 얼굴을 향해 활짝 핀, 드넓고 차디찬 손바닥.


당신에게 울 일 아닌 일이 내게는 충분히 울 만한, 울고 싶은, 울어야만 하는 일임을 인정하려는 당신의 마음이 내 곁에 있었다면. 내 슬픔과 분노가 내 온몸과 마음을 잠식하여 그저 울 수밖에 없었음을 당신이 이해해 줬다면. 울지 말고 천천히 말해 보라고 말하기 전에, 울지 말라고 그저 다그치는 대신에, 울 수밖에 없는 나의 손을 말없이 잡아주었다면. 홀로 아닌 곳에서 나는 당신과 함께 있었을 텐데. 우리가 지나온 많은 날들 속에서 우린 함께 울 수 있었을 텐데. 내 눈물이 다 마른 후, 차분히 정돈된 나의 언어와 나를 기다려준 당신의 언어가 다정히 섞일 수 있었을 텐데.


소복이, 『왜 우니?』, 사계절그림책


그리하여 지금의 나는 너의 울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때에도 너를 마음껏 울게 한다. 내가 다 알 수 없는 너의 마음이 너를 울게 하고 있음을, 너의 눈물이 너의 감정임을, 너의 울음이 너를 말하고 있음을 부정하지 않으려 무던히 애를 쓴다. 받아 적을 수 없는 형태의 울음이 네게서 흘러나올 때, 울지 말라고 단호히 말하는 게 아니라 네 안의 슬픔을 끝까지 토해낼 수 있도록 등을 두드려주는 내가 되기 위해서. 이게 무슨 울 일이냐고 네가 답하지 못할 매서운 질문을 해대지 않고, 울어도 되는 일이라고 언제든 말해줄 수 있는 내가 되기 위해서. 눈물마다 담긴 너의 모든 사연과 마음에 경청하는 내가 되기 위해서. 마른 눈물 자국을 닦아낸 뒤에 네게서 흘러나오는 너의 모든 말에 진심으로 감응하는 내가 되기 위해서.


내 곁에는 나의 울음과 나의 감정과 나만 있었다. 그러나 네 곁에는 너의 울음과 너의 감정과 너 자신, 그리고 너를 언제든 이해하고 존중하길 바라는 내가 있었다고.


그렇게 네가 나를 기억할 수 있길 바라며, 그렇게 내가 너에게 기억되길 바라며

너와 나에게 계속해서 전하고 싶은 말.


“세상에 울 일 아닌 일은 하나 없어. 그니까 울어도 돼. 마음껏.”    





* 한연진, 『눈물문어』, 위즈덤하우스

* 노에미 볼라, 『네가 분수가 된 것처럼 펑펑 울어버린다면』, 홍연미 옮김, 웅진주니어

* 소복이, 『왜 우니?』, 사계절그림책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를 지키는 거리distance/road를 함께 걷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