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렵고 불안한 마음의 ‘문’을 함께 여는 그림책들
낯선 곳과 모르는 사람을 두려워한다. 새로운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 익숙지 않은 환경에 괴로워한다. 의도치 않은 변화에 몸과 마음 모두 한껏 움츠러든다. 작디작은 나 자신이 쉬이 가늠할 수 없는 이 세상은 언제나 광활하고, 막막하다.
지나온 삶의 숱한 하루들을 내 안에 숨어들어 지냈다. 문 너머의 거센 파도와 드센 굉음으로부터 분리된 나의 작은 방. 그곳은 내 불안을 숨겨주는 ‘편안한’ 거처가 되어주었다. 나를 두렵게 하는 것들로부터 분리된 나만의 공간이자, 나를 떨게 만드는 이들로부터 떨어진 나만의 세계였다.
한 번씩 문 밖으로 나갔다 돌아오는 날이면, 한참을 내 방 안에 움츠러들어 있었다.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순간과 장면에서 움튼 나의 새로운 불안은 다가올 내일을 기대할 수 없게 만들었다. 오늘이 버거워 오늘을 쉬이 닫을 수 없었다. 마음의 창문을 닫지 못 한 좁은 방 안에서, 감은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문 밖의 광활하고 막막한 세계로 나갈 내 것의 용기를 상상할 수 없는 긴긴밤들이었다.
나도 나가고 싶어. 하지만 내가 집 밖으로 못 나가는 건 저 사자 때문이라고.
- 『문 밖에 사자가 있다』 中
문 안에서, 방 안에서 보내는 가만한 하루들은 바깥의 두려움으로부터 나를 지키려는 나의 최선이었다. 그러나 며칠 밤낮으로 이어진 외로운 고민들은 언제나 내게 이렇게 속삭였다. 네가 숨어든 이곳은, 네가 너로 꽁꽁 싸맨 이 방은 결국 네 불안을 키우는 ‘어두운’ 골방일 수밖에 없다고.
나를 숨기고 가려도 수그러들지 않는 내 안의 불안은 오직 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깥의 무엇과 누구로도 치우거나 지울 수 없는 내 안의 불안은 오직 나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나의 불안을 찾아가야 했다. 불안을 가능케 한 내 안의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나는 나의 불안을 만나야 했다. 불안이 가능케 할 내 안의 빛을 발견하기 위해.
문 안에서, 방 안에서 나는 계단을 하나씩 걸어 내려갔다.
그러자 마음의 창문을 닫지 못했던 내 방이, 감은 눈으로 지새운 내 밤이 희붐하게 밝아왔다.
밤하늘을 올려다본 적이 있나요? 여러분이 별을 쳐다볼 때, 어둠은 여러분을 내려다본답니다. - 『그날, 어둠이 찾아왔어』 中
여전히 불안하다. 내게로 다가오는 새로운 아침이. 여전히 두렵다. 문 너머로 다가오는 새로운 세상이. 내 안의 용기를 쥐어짜 내 문 밖으로 걸어 나왔든, 불가항력적인 힘에 의해 문 밖으로 이끌려 나왔든, 내 앞에 놓인 지도 속 ‘낯선 세상’은 여전히 광활하고 막막하다. 그럼에도 내 마음이 가 닿고 싶은 낯섦 쪽으로 조금씩 나의 좌표를 옮겨가고 싶다. 내 몸이 가 닿아야 하는 낯섦 쪽으로 조금씩 나의 방향을 돌려놓고 싶다. 지금껏 모른 채 살아왔던 나의 ‘단편’들을 알아내고 찾아내기 위해서라도.
낯선 세상 속에서 한 발짝씩 내딛는 내 걸음은 다정한 우연들을 만날 때마다 잠시 멈추어 섰다. 그들은 이내 나를 두 발짝씩 나아가게 했다. 내 안의 두려움으로부터 도망치지 않도록 각자만의 도움과 지혜를 내게 내어주면서. 그들의 불안과 나의 불안을 다정히 포개어 연결하면서. 우리의 불안을 함께 다루고 달래면서. 그들은 내 불안을 이해받는 ‘고마운’ 쉼터가 되어주었다.
어둠을 두려워 말아요. 눈을 들어 별을 세어보면 모든 어둠은 빛이랍니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아요. 다정한 벗과 노래하면 더디게만 흘러가는 고통의 시간은 찰나랍니다.
-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집』 中
지나간 어제의 거울. 마주친 오늘의 바로미터. 그리고 달라질 내일의 기점이 될 (수도 있는) 나의 ‘불안.’ 어떠한 상황과 장소에서도 내 안팎의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나의 ‘약함’. 이 모두를 내 안에 나 자신을 가둬놓는 핑계이자 한계로 삼고 싶지 않다. 동시에, 문 밖으로 나가기 두려운 이들의 마음과 문 안의 어둠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향해 언제든 공감과 연대의 손길을 내어주고 싶다. 불안으로 움츠러든 그 마음은 여전히 자주 나의 것이 되어버리곤 하니까. 그러나 그 마음속에서 작지만 선명하게 내 것의 용기가 싹을 틔워왔고, 싹을 틔워갈 테니까. 누군가의 마음 밭에 물을 뿌리고 빛을 내어주고 흙을 갈아주는 다정한 우연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그의 불안뿐만 아니라 나의 불안까지도 잠잠히 달래고 다룰 수 있을 테니까.
두려움 앞에서 벌벌 떠는 ‘노란 마음’(⟪문 앞에 사자가 있다⟫)이
두려움 속에서도 환히 발하는 ‘노란빛’(⟪그날, 어둠이 찾아왔어⟫)을 찾아내어
자신만의 방법으로 두려움을 다루며 세상 밖으로 용기 내 나아갈 ‘노란 마음’(⟪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집⟫)으로 변해갈 때,
우리의 불안은 우리 삶의 여러 문을 ‘함께 여는’ 동행이 되어줄테다.
힘들 때마다 크게 들이마시고 내쉰 숨들로 내 하루마다 새기고 싶은
내 불완전한 마음이자, 안전한 믿음.
* 윤아해 글, 조원희 그림, ⟪문 앞에 사자가 있다⟫, 뜨인돌어린이
* 레모니 스니켓 글, 존 클라센 그림, ⟪그날, 어둠이 찾아왔어⟫, 문학동네
* 김태경,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집⟫, 앤카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