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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Mar 31. 2023

나의 '불안', 나의 '동행'

두렵고 불안한 마음의 ‘문’을 함께 여는 그림책들


낯선 곳과 모르는 사람을 두려워한다. 새로운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 익숙지 않은 환경에 괴로워한다. 의도치 않은 변화에 몸과 마음 모두 한껏 움츠러든다. 작디작은 나 자신이 쉬이 가늠할 수 없는 이 세상은 언제나 광활하고, 막막하다.  


지나온 삶의 숱한 하루들을 내 안에 숨어들어 지냈다. 문 너머의 거센 파도와 드센 굉음으로부터 분리된 나의 작은 방. 그곳은 내 불안을 숨겨주는 ‘편안한’ 거처가 되어주었다. 나를 두렵게 하는 것들로부터 분리된 나만의 공간이자, 나를 떨게 만드는 이들로부터 떨어진 나만의 세계였다.


한 번씩 문 밖으로 나갔다 돌아오는 날이면, 한참을 내 방 안에 움츠러들어 있었다.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순간과 장면에서 움튼 나의 새로운 불안은 다가올 내일을 기대할 수 없게 만들었다. 오늘이 버거워 오늘을 쉬이 닫을 수 없었다. 마음의 창문을 닫지 못 한 좁은 방 안에서, 감은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문 밖의 광활하고 막막한 세계로 나갈 내 것의 용기를 상상할 수 없는 긴긴밤들이었다.


나도 나가고 싶어. 하지만 내가 집 밖으로 못 나가는 건 저 사자 때문이라고.
- 『문 밖에 사자가 있다』 中


윤아해 글, 조원희 그림, ⟪문 앞에 사자가 있다⟫, 뜨인돌어린이



문 안에서, 방 안에서 보내는 가만한 하루들은 바깥의 두려움으로부터 나를 지키려는 나의 최선이었다. 그러나 며칠 밤낮으로 이어진 외로운 고민들은 언제나 내게 이렇게 속삭였다. 네가 숨어든 이곳은, 네가 너로 꽁꽁 싸맨 이 방은 결국 네 불안을 키우는 ‘어두운’ 골방일 수밖에 없다고.


나를 숨기고 가려도 수그러들지 않는 내 안의 불안은 오직 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깥의 무엇과 누구로도 치우거나 지울 수 없는 내 안의 불안은 오직 나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나의 불안을 찾아가야 했다. 불안을 가능케 한 내 안의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나는 나의 불안을 만나야 했다. 불안이 가능케 할 내 안의 빛을 발견하기 위해.


문 안에서, 방 안에서 나는 계단을 하나씩 걸어 내려갔다.

그러자 마음의 창문을 닫지 못했던 내 방이, 감은 눈으로 지새운 내 밤이 희붐하게 밝아왔다.



레모니 스니켓 글, 존 클라센 그림,  ⟪그날, 어둠이 찾아왔어⟫, 문학동네



밤하늘을 올려다본 적이 있나요? 여러분이 별을 쳐다볼 때, 어둠은 여러분을 내려다본답니다. - 『그날, 어둠이 찾아왔어』 中



여전히 불안하다. 내게로 다가오는 새로운 아침이. 여전히 두렵다. 문 너머로 다가오는 새로운 세상이. 내 안의 용기를 쥐어짜 내 문 밖으로 걸어 나왔든, 불가항력적인 힘에 의해 문 밖으로 이끌려 나왔든, 내 앞에 놓인 지도 속 ‘낯선 세상’은 여전히 광활하고 막막하다. 그럼에도 내 마음이 가 닿고 싶은 낯섦 쪽으로 조금씩 나의 좌표를 옮겨가고 싶다. 내 몸이 가 닿아야 하는 낯섦 쪽으로 조금씩 나의 방향을 돌려놓고 싶다. 지금껏 모른 채 살아왔던 나의 ‘단편’들을 알아내고 찾아내기 위해서라도.


낯선 세상 속에서 한 발짝씩 내딛는 내 걸음은 다정한 우연들을 만날 때마다 잠시 멈추어 섰다. 그들은 이내 나를 두 발짝씩 나아가게 했다. 내 안의 두려움으로부터 도망치지 않도록 각자만의 도움과 지혜를 내게 내어주면서. 그들의 불안과 나의 불안을 다정히 포개어 연결하면서. 우리의 불안을 함께 다루고 달래면서. 그들은 내 불안을 이해받는 ‘고마운’ 쉼터가 되어주었다.


어둠을 두려워 말아요. 눈을 들어 별을 세어보면 모든 어둠은 빛이랍니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아요. 다정한 벗과 노래하면 더디게만 흘러가는 고통의 시간은 찰나랍니다.
-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집』 中


김태경,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집⟫, 앤카인드



지나간 어제의 거울. 마주친 오늘의 바로미터. 그리고 달라질 내일의 기점이 될 (수도 있는) 나의 ‘불안.’ 어떠한 상황과 장소에서도 내 안팎의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나의 ‘약함’. 이 모두를 내 안에 나 자신을 가둬놓는 핑계이자 한계로 삼고 싶지 않다. 동시에, 문 밖으로 나가기 두려운 이들의 마음과 문 안의 어둠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향해 언제든 공감과 연대의 손길을 내어주고 싶다. 불안으로 움츠러든 그 마음은 여전히 자주 나의 것이 되어버리곤 하니까. 그러나 그 마음속에서 작지만 선명하게 내 것의 용기가 싹을 틔워왔고, 싹을 틔워갈 테니까. 누군가의 마음 밭에 물을 뿌리고 빛을 내어주고 흙을 갈아주는 다정한 우연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그의 불안뿐만 아니라 나의 불안까지도 잠잠히 달래고 다룰 수 있을 테니까.  


두려움 앞에서 벌벌 떠는 ‘노란 마음’(⟪문 앞에 사자가 있다⟫)이

두려움 속에서도 환히 발하는 ‘노란빛’(⟪그날, 어둠이 찾아왔어⟫)을 찾아내어

자신만의 방법으로 두려움을 다루며 세상 밖으로 용기 내 나아갈 ‘노란 마음’(⟪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집⟫)으로 변해갈 때,

우리의 불안은 우리 삶의 여러 문을 ‘함께 여는’ 동행이 되어줄테다.


힘들 때마다 크게 들이마시고 내쉰 숨들로 내 하루마다 새기고 싶은

내 불완전한 마음이자, 안전한 믿음.




* 윤아해 글, 조원희 그림, ⟪문 앞에 사자가 있다⟫, 뜨인돌어린이

* 레모니 스니켓 글, 존 클라센 그림,  ⟪그날, 어둠이 찾아왔어⟫, 문학동네

* 김태경,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집⟫, 앤카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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