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인 Apr 26. 2023

'~한다면'이라는 가정이 이끄는 아름다운 해방 작전

세실 엘마 로제 글, 파니 뒤카세 그림, ⟪세상 모든 밤에⟫


모두가 잠든 듯한 깜깜한 밤. 고양이 중의 고양이 ‘파타무아’가 나의 방 창문을 열고 들어온다. 파타무아가 다급하게 보낸 신호를 알아챈 나는 주저 없이 파타무아와 함께 밤길을 나선다. 밤을 걷고, 밤 사이를 뛰어내리고, 밤길 위의 그림자를 세고, 밤하늘을 건너며 결국 어딘가에 다다르는 꿈같은 이야기, ⟪세상 모든 밤에⟫. 이야기의 마지막에는 이전과는 다른 달콤하고 기분 좋은 아침이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의 자유로운 걸음과 날갯짓을 함께 했던 꿈의 끝이자 달라진 삶의 시작이 될 아침이.


“세상 모든 길의 모든 그림자가 속삭이기 시작한다면”, “세상 모든 음악가가 세상 모든 음표를 동시에 연주한다면”, “세상 모든 곳을 잎 가득 달린 나무들이 뒤덮는다면”, “세상 모든 밤에 사람들이 저마다의 파타무아를 따라간다면”・・・・・・.


’~한다면’이라는 가정이 이끌고 가는 밤의 이야기는 내내 눈부시다. 창문 너머 살고 있는 저마다의 존재를, 그림자 안에 숨겨진 저마다의 이야기를, 세상 모든 밤하늘 아래 억눌리거나 가려진 저마다의 삶을 듣고 여는 꿈의 이야기. 세상 모든 이들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은 세상 모든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정확히 보고 듣고 만나려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눈부신 아침의 해가 밝아와도, 나의 꿈은 밤의 경계를 풀고서 나의 삶에 자연스레 스며들 것이다. 나의 벚나무에 물을 주면서. 살짝 열어둔 창문 사이로 찾아올 “해방 작전”의 또 다른 신호를 기다리면서.



‘세상 모든’ 각자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당위성과 가능성 모두를 내포한 아름다운 글. ‘세상 모든’ 각자와 함께 ‘세상 모든’ 꿈을 깁고 엮고 잇는 환상적인 그림. 문장이 품은 단어 하나하나에, 그림 안에 담긴 존재 하나하나에 오래도록 눈을 두고 마음을 포개며, 나의 파타무아가 내게 보낼 신호를 기다린다. 고양이의 곁에서(next to the cat), 고양이 같은 모습으로(like the cat), 고양이와 같이(with the cat).


 “파타무아는 어깻죽지를 둥글게 말았고, 나는 손을 핥은 뒤에 귓등을 문질렀어.”


자는 사이에 찾아올 나의 꿈에서, 사는 사이에 찾아갈 너의 꿈에서, 결국은 ‘세상 모든’ 밤낮에 살아내고픈 우리의 꿈에서 두 손 맞잡아 함께 쥘 핑크색 풍선. 각자의 길을 잃지 않는 방법이, 서로가 서로를 해방시키는 마법이 펼쳐지는 꿈같은 그림책, ⟪세상 모든 밤에⟫. 큼직한 판형에 담긴 큼직한 아름다움이 ’세상 모든’ 아침을 경이롭게 깨울 것만 같다. 장마다 촘촘히 채워진 패턴의 수와 종류만큼 감탄하고 감동하는 것은, 이 아름다운 그림책이 독자에게 내어주는 큼직한 선물일 테고.




* 세실 엘마 로제 글, 파니 뒤카세 그림, ⟪세상 모든 밤에⟫, 김지회 옮김, 오후의소묘

매거진의 이전글 일상과 공상을 함께 긍정하고 구현하는 시詩와 그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