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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May 19. 2023

뜰채로 지는 해를 잡아보려고

플로라 맥도넬, ⟪어두운 겨울밤에⟫


해가 뜨지 않는 추운 계절이었다. 하루의 절반도 안 되는 빛마저 온전히 너의 것일 수 없었던 날들. 그리하여 하루의 절반이 넘는 어둠을 쓸쓸히 맞았던 날들. 너는 두 손으로 캄캄한 하루를 헤집고 다녔다. 오늘의 시간을 알아챌 빛의 바늘. 내일의 방향을 가늠할 빛의 지남철. 너는 그것들을 찾고 싶었다. 갖고 싶었다. “영원히 아무것도, 아무도 없는 것처럼 느껴져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순 없어서, 어둑한 마음 길을 터벅터벅 걸었다. 네 오른쪽으로 기운 손톱달 아래에서.


해를 붙잡고 싶은 추운 계절이었다. 너는 휘몰아치는 생각의 파도를 잠재울 빛을, 쳐들어오는 마음의 야수를 내쫓을 빛을 너의 곁에 잡아두고 싶었다. 위로 떠오르는 둥근 달로부터 등지고서, 아래로 저무는 둥근 해만을 바라봤다. 종일 마음의 불을 켜지 못한 너를 매일 외면하는 붉은 해. 수평선 밑으로 빠르게 사라져가는 저 원을 향해 너는 뜰채를 던졌다. 잡히지 않는 빛을 잡으려 힘껏 휘두르는 너의 두 팔. 아무 것도 되지 않을 일이었으나, 너는 뜰채를 내려 놓질 못했다. 그것은, 어둑한 마음 길 위에서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네 것이었으니까.



빛을 가질 수 없어 추운 계절이었다. 네 것인적 없는 빛을 찾고 갖고자 했으나, 몇 없는 네 것들까지 하나씩 잃어버리는 날들이 이어졌다. 네게서 사라진 기억과 의미와 관계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도 못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매서운 바람과 깜깜한 구름이 하루의 절반도 안 되는 햇빛과 하루의 절반이 넘는 달빛 모두를 가려버린 겨울날. 삭朔의 하늘 아래 끝내 쓰러진 너의 몸은 생각했다. 빛은 어디에도 없구나. 더 짙어진 어둠만이 나의 전부이자 끝이구나. 아무도 네게 보이지 않는 눈발 속에서, 아무도 너를 볼 수 없는 눈발 속에서 너는 한참을 소리 없이 울었다.


 ・・❆ ゜・ 。 ❅゜゜゜・。 。 ゜・。 。 。・・❆ ゜・ 。 ❅゜゜゜・。 。 ゜・。 。 。゜

“…잠깐만요. 흩날리는 저 눈이 보여요. 보인다구요. 쓰러진 내게로 찬찬히 걸어오는 누군가의 등불이 여기에. 아주 짙은 어둠 속에서 어슴푸레 빛나는 별이 여기에.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었던 가느다랗게 휘어진 달이 여기에・・・ 지금껏 나와 함께 있었어요. 지금도 나와 함께 있어요.”

 ・・❆ ゜・ 。 ❅゜゜゜・。 。 ゜・。 。 。 ゜ ・・゜ ❅・・ 。。 ゜・。 。 ・゜ ❅。 ❅


빛이 너를 일으켜 세웠다. 빛이 너를 안고 일어섰다.

어둑하기만 했던 마음 길을 되돌아가며, 빛이 너를 데려다주었다. 네가 언제나 등 지고만 있던 그곳으로.

그곳에서, 내일의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너는 돌연히 알아차린다. 네가 돌아가야 할 곳과 네가 나아가야 할 곳이 같은 곳이었다는 걸. 네가 떠나온 곳과 네가 찾은 곳이 같은 곳이었다는 걸. 언제나 네 몫의 빛이 네 주위를 밝히고 있었던 이곳. 너의 집. 너의 세계.



빛을 좇아가는 계절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매일같이 떠오르고 지는 해와 함께. 일정한 주기로 나타났다 사라지며 자신만의 시간을 살아가는 달과 함께. 사위가 어두울 수록 더 밝게 빛나기에 어둠을 피하지 않는 별과 함께. 소리 없이 네게로 다가와 어두운 네 곁과 거칠어진 네 결을 비추는 가만한 등불과 함께.


지나온 계절에 두고온 것들과 영영 잃어버린 이들. 그 모두는 뜰채로 지는 해를 잡아보려 애쓴 너의 시간이 너에게 남긴 형태 없는 흔적들이다. 너는 알게 됐다. 하루는 저물어야만 한다는 것을. 너는 알고 있다. 언제고 다시 휘몰아칠 파도와 쳐들어 올 야수를. 진실은 계속해서 빛을 간구할 너의 슬픔이자 위안. 어느 날에 너는 다시 뜰채를 손에 쥐게 될 것이다. 뜰채를 휘두르며 하루를, 한 주를, 한 달을 견딜 것이다. 네가 서 있는 곳에서 네 몫의 빛을 ‘다시’ 발견하기 위해.



그러니 지금은 잠시 눈앞의 잠잠해진 바다를 바라볼 시간이다. 네 곁에 있는 여전하고도 고마운 존재들과 함께.


우울증을 겪는동안 꼭 명심해야 할 점은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생이 끝난 시점에서 불행했던 세월만큼 더 살 수는 없다. 우울증이 삼켜 버린 시간은 영원히 돌이킬 수 없다. 당신이 우울증을 겪으며 보내는 순간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못할 시간들이다. 그러니 아무리 기분이 저조하다 해도 삶을 지속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한다. 겨우 숨만 쉴 수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참을성 있게 견뎌내면서 그 견딤의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우울증 환자들에게 주는 중요한 조언이다. 시간을 꽉 붙들어라. 삶을 피하려 하지 마라. 금세 폭발할 것만 같은 순간들도 당신의 삶의 일부이며, 그 순간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 앤드류 솔로몬, ⟪한낮의 우울⟫, 민음사, p.708




* 플로라 맥도넬, ⟪어두운 겨울밤에⟫, 이지원 옮김, 봄볕




+

해변에 서서 뜰채로 지는 해를 잡아보려 애썼던 내 안의 아이가 써내려 간 글. 이 그림책의 전개와 결말이 식상하게 느껴지지 않음은, 심한 우울증을 앓고 정신 분석에 의지했던 작가 자신의 경험을 담아낸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이 작품의 뻔한 흐름이 크고 작은 우울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필요로 하고 확신하고 싶은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한낮의 기온이 30도가 넘어선 초여름날에도 한겨울의 마음으로 살아갈 누군가의 밤에 이 책이 옅은 빛으로나마 가닿을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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