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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보이는 마을

프랑스 에트르타

by 블루밍드림

"필요하다 싶은 것은 모두 다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작은 방, 너무 낡아서 페이지가 찢어지는 책 몇 권.. 그 책들은 젊었을 때 문학이라 불렀던 것을 떠올리게 하였다." 1)


죽을 날 머지않았을 때인가, 아니면 죽고 난 다음이던가, 내가 아는 그 작가는 바닷가 작은 마을로 거처를 옮겼다. 바위투성이 땅, 어부들이 살던 작은 집들.. 페이퍼백 해진 책 한 권을 손에 쥐고서 해안선을 따라 걷곤 하였다. 하지만, 정작 그 마을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그였다. 신장에서 종양이 발견되고, 전이된 암 덩어리가 커져가고, FDA 미승인 약품의 임상시험에 자원하기까지, 시간은 흐르고, 부쩍 바다가 보이는 마을을 동경하였다.


갯비린내 싫어하는 나도 비슷한 꿈을 꿀 때가 있었다. 물론 그와 나는 사는 곳도, 처지도, 살아가는 사연도 참 많이 달랐다.




"바다와 바닷물에 씻긴 마을 위에 우리가 살았다. 우리 둘은 두 번의 짧은 여름을 함께 보냈고, 바다 위로 녹아내리는 구름처럼 시간은 가벼웠다. 바다 위에서, 우리는 무심하였다." 2)


파리에서 차로 2시간 40분. 마을 입구 공용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한 무리의 사람들을 따라 걸었다. 시선은 일찌감치 '바다와 바닷물에 씻긴 마을'이 있음 직한 방향을 향해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에트르타(Étretat)를 찾아온 이유는 그리 복잡할 게 없었다.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진상할 굴을 따고, 청어와 고등어를 잡으며 살던 노르망디의 작은 어촌. 이름난 문인과 화가들이 이곳에 매료되더니만 뭇 외지인들은 글과 그림 속에 녹아내린 그들 영감의 근본을 탐하여 따라서 몰려들었다. 나 또한 다를 게 없었다.


모네 '에트르타 절벽의 일몰' 1883 @musee-orsay.fr


"수평선 쪽으로는 하늘이 낮아지면서 대양과 하나로 합쳐졌다. 육지 쪽으로는 깎아지른 듯한 높은 절벽이 그 아래에 커다란 그림자를 던지고, 햇빛을 가득 받은 비탈진 잔디밭들이 절벽 군데군데에 박혀 있었다.. 그리고 앞쪽 저 멀리에는 괴상한 형체의 바위가 솟아 있었는데, 중간에 구멍이 훤히 뚫린 그 둥그스름한 바위는 물속에 코를 처박고 있는 거대한 코끼리와 비슷한 형상이었다."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은 잔느의 시선에서 에트르타를 이렇게 인상 지었고, 모네가 그 인상을 화폭에 담은 '에트르타 절벽의 일몰'은 '인상, 해돋이'의 역방향에서 충격적 감흥을 내게로 몰고 왔다.


모네 'The Cliffs at Etretat' 1885 @claude-monet.com


모리스 르블랑이 ‘기암성(奇巖城)'(원제: 속 빈 바늘)에서 괴도 뤼팽이 해저터널로 연결된 바늘 같이 생긴 바위 속에 보물을 숨기도록 한 것은 어쩌면 필연적 창의성이라 해야 하겠다.


에트르타의 명성은 단연 그런 것들이었다.




"우리가 그곳에서 행복할 거라는 걸, 그 어느 때보다 더 행복할 거라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3)


암 덩어리와 다투던 그 작가가 바다가 보이는 마을로 가고 싶어한 사연이었다.


사연은 달라도, 그러게,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막상 이런 곳에 머물러 산다 해서 세상 기막힌 일들이 왜 또 없겠냐만, 시간은 더 가볍고 나는 더 무심하고.. 비현실적 행복이 세상을 피해 이곳 '바다가 보이는 마을' 풍경 속에 숨었겠지 기대하였다.


다발 절벽 (Porte d'Aval, 하류 문)


그날, 그 바닷가엔 희뿌연 운무가 바다의 화를 달래고 있었고, 바다에 씻겨 모나지 않게 된 몽돌이 지천이었다. 아이들은 작은 돌멩이를 주워 옥색 물속으로 계속 던져 넣었다. 그러면, 무심코 던진 돌에 대갚음하려는 물이 작은 신발 안에 가득해졌다. 다 큰 어른이 바짓가랑이 다 젖도록 아이들 놀이를 따라 하였다.


그리 노는 사이, 저 멀리 오른쪽으로 다몽 절벽(Porte d’Amont, 상류 문)의 아기 코끼리가 외떨어져 무심히 섰고, 가까이 다발 절벽 엄마 코끼리는 성난 바다가 무서운 줄도 모르고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만포르트 절벽


엄마 코끼리 등을 타고 만포르트 절벽(La Manneporte, 큰 문)에 올라섰다. 아빠 코끼리가 저만치 나타났다. 남편의 외도를 목격한 잔느가 바다로 뛰어내리려던 그 절벽 위에서 그녀와 나는 같은 곳을 바라보았겠다. 하지만, 서로의 사연은 참 많이 달랐다. 절벽 위엔 골프장이 드넓어 연신 내 마음을 훔쳤다.


깎아지른 낭떠러지가 대수랴. 어딜 가나 엉켜 한바탕 싸움을 벌이는 형제로 인해 겁 많은 아빠의 잔소리가 한바람을 일으켰다. 거칠게 커 온 풀잎들은 바닥으로 드러누우며 바람의 존재를 밀고하였다. 깔끔한 꿈의 풍경을 내려다보며 무언가 행복한 메시지를 기다리던 어제 그리고 오늘의 기억을 잠시 떠올렸다.


에트르타 해안선


저 멀리 아기 코끼리가 보이는데 까지 군더더기 없이 이어지는 몽돌의 해안선이 바다와 사연 많은 마을을 길게 구분 지었다. 바람이 숨을래도 운무의 하늘이 모두를 감싸 안았다. 눈길 닿는 곳마다 새로움의 인상은 순간적이었다. 우중충하게 찍혀 나오는 사진이 차라리 나았다.


한번 보면 절대로 잊히지 않는 풍경이라더니.. 바로 에트르타였다.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보다 새로운 시선을 갖는 데 있다.” 4)


그저 푸른 바다와 그 바다가 바라보이는 아름다운 마을을 꿈꿀 뿐이었다. 다 커서 꾸는 꿈 속에서, 지브리 만화영화 '마녀 배달부 키키'를 닮은 듯, 하지만, 다 큰 어른의 성장통을 겪었다. 다만, 내 꿈속의 바닷가 마을은.. 높은 주황색 지붕과 그 아래 길게 늘어선 돌벽과 그 너머의 푸른 바다.. 키키가 사랑한 스웨덴 고틀란드섬 비스뷔(Visby) 같은 눈 못 떼는 우아함이라기보다는 시간이 멈추고 상념이 멈추는 그런 아름다움이기를 바랐다. 바다가 보이는 마을에 살고자 했던 그 작가의 사연을 알기 전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인생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행복하지도 또 그렇게 불행하지도 않은 것인가 봐요.” 5)


어린 손녀를 품에 안은 잔느를 보며 로잘리가 툭 던지는 소설의 결론 같은 이 한마디 말처럼, 인생은 바다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바다에 씻긴 작은 마을에서 바라보는 그 바다 위엔 '여자의 일생'처럼 석양빛을 머금어 저물다가도 다음날이면 익숙한 듯 새날이 밝아올 게 명확했다.


쿠르베 '천둥이 지나간 에트르타' (1870) @Musee d'Orsay


내가 아는 그 작가는 바다가 보이는 마을에 살고 싶다고 한 뒤 2년을 더 살고 암으로 죽었다. 코네티컷의 Stonington이라는 바다가 보이는 마을에서였다. 동쪽 바다엔 날마다 해가 솟고, 작가는 젊어서 문학이라 불렀던 추억의 책을 옆에 끼고선 해안선을 따라 걸었겠다.


내 사연은 그와는 많이 다르다.


바다 위로 어느 날 천둥이 치고 폭풍우가 몰려오고, 조각조각 부서진 푸르름 위로 또다시 오후의 나른한 햇살이 비춘다. 바다가 보이는 마을에 살다 보면 말이다.


절벽에서 내려왔으나 아이들은 그 바다를 떠나지 못하였다. 운무가 제법 걷히고 나른한 햇살이 물 위에서 춤을 추자 아이들 웃음소리는 기묘하게 얽히고설켰다. 살다가 어느 또 바다가 보이는 마을에 정을 줄지 모를 일이었지만, 에트르타의 오후 풍경은 세월이 한참 흐른 다음 해진 책 찢어지는 페이지 속에서 다시 살아날게 뻔하였다.



1), 3) James Longenbach(1959-2022)의 'In the Village' 일부를 재해석하여 번역

2) Algernon Charles Swinburne(1837-1909)의 'Past Days' 일부를 재해석하여 번역

4) Marcel Proust(1871-1922)

5) Guy de Maupassant(1850-1893)의 Une Vie(여자의 일생) 중에서


표지사진 출처: lamariniereenvoyag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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