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전선에서

쿠르드와 나, 그리고 에르빌 성채에 박제된 기억

by 블루밍드림

IS(이슬람국가)가 이라크를 집어삼킬 기세로 진격해 오던 때였다.


정부군이 혼비백산 달아나자, 북부 전선에서 '페슈메르가'* 쿠르드 민병대가 그들을 막아섰다. 그렇게 3년을 버텼다. 쿠르드자치정부는 독립의 시간이 온 것으로 여겼다. 이라크 정부는 군대를 총동원하여 북부 유전지대에서 페슈메르가를 몰아내었다. 쿠르드 독립은 실현되지 않았다.


그 무렵, 나는 중동에 살고 있었다. 그런 서사들은 1주일에 한 번 나오던 수돗물이 3주째 소식이 없던 것만큼이나 건조하였다.




쿠르드 독립 사건은 금세 잊혔다. IS는 끈질겼다.


비명 같은 미사일 궤적이 이라크 하늘을 가르고, 포탄의 신음이 지평선을 흔들곤 하였다. 실없는 자는 바그다드 호텔에서도 전투모를 쓰고서야 잠에 들었노라 주절거렸다.


비자 옆에 '예외적 여권사용 허가' 딱지까지 붙인 여권을 쥐고 이라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 여름, 신밧드가 배에 올랐던 남부 항구 바스라는 섭씨 50도를 넘어섰다. 항공기 트랩 위로 쏟아지는 붉은 모래바람은 사우나의 증기처럼 숨을 막았다.


생의 갈증은 붉은색. 그 빛깔을 가르며 삶의 실타래를 풀러 다녔다. 구매 대금을 갚지 않는 업체 사장을 만났다. 그 순간들은 '회사원'이라는 이름의 생존 전선(戰線)이었다.


북으로 올라 바그다드에 도착했다. 숨을 죽이고 움직이는 도시였다. 현지 직원이 말했다. "40도면 견딜만하죠. 50도는 너무 힘들어요."


바그다드에서 다시 북으로, 쿠르드자치지역의 수도 에르빌(Erbil)로 향했다.




거래선 회장. 서랍 속에 총을 숨겨둔 채 호령하는 노회한 쿠르드 권력자. 그를 염탐하는 자리는 마치 최전선으로 나서는 이등 소총병의 기분이어야 했다.


아군은 아무도 없는 셈이었다. 그 양반 비위를 맞춰가며 물건을 파는 사람 따로 있고, 나는 이리 따져보고 저리 훔쳐보며 리스크에 대비해야 했다.


"총은 왼쪽 서랍에 있어요. 막 소리 지르다가 손이 왼쪽 서랍으로 향하거든 얼른 튀어나오세요." 통역 비서가 배시시 웃으며 내게 속삭였다.


뜬금없이 저녁 식사에 초대받았다.


저택의 정원, 길게 늘어진 식탁의 말단에 앉았다. 지붕 위로 기관총을 든 사병들이 왔다 갔다 하였다. 밤의 공기는 여전히 뜨겁고 무거웠다.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의 각료들이 대거 모였다. 핍박. 학살. 전쟁.. 그 속에서 일군 지독한 성공이었다. 소리 낮춘 존재의 과시였다.



나에게 건네는 침묵의 위협이자 거대한 성벽이었다.


사람들이 웃을 때 나도 따라 웃었다.


람보르기니를 몰고 나타난 막내아들이 음식을 날랐다.


그 밤은 내게 완벽한 패배였다. 때론 그와 언쟁하며 소총질로 진군하던 나의 용기는 이름 없는 전선에서 고요히 전사하였다.


그 후로도 한참을 그랬다. 바스라에서 바그다드로 갔고, 바그다드에서 다시 에르빌로 갔다. 그 되풀이되는 순환 속에 내 청춘의 일부가 소진되었다.




이란 드론의 비명이 밤을 찢고, 미사일의 숨 가쁜 신음이 내 핸드폰 액정을 뒤흔드는 오늘. 뉴스에서 쿠르드 이름이 흘러나왔다.


"우리는 준비해 왔습니다." 인터넷 뉴스에 쿠르드의 숙명 같은 다짐이 특필되었다.


쿠르드 노인들 사진이 실렸다. 그 꼬장꼬장 노인네가 궁금해졌다. 아직도 총을 곁에 두고 있을까.


부러 잊고 살았다. 이제는 돌아가기 싫은, 오직 기억의 지층 속에만 남겨진 그 치열했던 시절. 한때는 훈장이었다.


중동을 떠나올 때 건네주던 금빛 나는 이라크 지도 모양 감사패도 신발장 어딘가에 처박아 두었다.


나는 더는 성공한 회사원이 아니거든.




에르빌 성채 (Erbil Citadel) @TripDesigner


에르빌에는 6천 년을 견뎌온 성채가 있다.


위태로운 풍경들.

40도의 뜨거움.

쿠르드 삶의 비릿한 냄새들.

붉은 먼지 속 신기루 같던 쿠르드의 고독.


성벽 돌 틈 사이로 깊은숨을 내쉬던 내 모습이 그곳에 박제된 게 틀림없었다. 전쟁 뉴스 속에서 그 기억이 또렷하였다.


전쟁은 지나갈 것이고, 쿠르드는 또 잊힐 것이고, 그들을 기억하는 나도 늙어갈 것이다.


그러나, 기억들은 성벽처럼 오래오래 남기도 할 것이다.




에르빌 성채 돌 틈에 박제된 것은 그 여름의 기억만은 아니었다. 한 세기가 넘도록 강대국에 의해 체스판의 말처럼 놓이고 버려졌던 쿠르드의 연대기가 겹겹이 쌓여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영국은 오스만제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독립국가'라는 찬란한 약속으로 쿠르드족을 끌어들였다. 배신은 치명적이었다. 이라크, 튀르키예, 이란, 시리아.. 틈바구니 속으로 흩어졌다. 가혹한 유배형이었다. 쿠르드 독립은 지독한 금기였다.


이란-이라크 전쟁. 미국의 꼬드김에 이란 편에서 싸웠다. 미국은 그들을 외면했고, 사담 후세인은 수십만 쿠르드인을 학살했다. 걸프전쟁 때도 그랬다.


미국은 시리아의 쿠르드 민병대로 하여금 IS와 싸우게 했다. 독립의 꿈은 또 짓밟혔다.


미국이 쿠르드를 앞세워 이란 지상 공격을 준비한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우리는 준비해 왔습니다." 쿠르드가 말했단다.


그게 바로 이란에 투입될 지상군이 쿠르드족일 수 있는 이유였다. 그들이 꿈꾸는 것은, 언제나 그랬듯, 지도 위에서 지워지지 않을 단 하나의 이름이니까.



* 페슈메르가: 쿠르드어 '페슈메르'는 "죽음에 맞서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 표지사진: 쿠르드 전통 복장을 한 노인들 (출처: 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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