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서 다시 꽃을 피운다
'기댈 곳'. 십 년 된 노래가 갑자기 잘 들렸다.
"나의 하루는 그저 그랬어요."
속절없이, 밤이 깊었다.
꿈결일까, 불면일까.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어느새 베이루트 거리를 걷고 있었다.
사치스러운 상점들. 함라 거리는 안녕하였다. 보통의 거리도 여전하였다. 찢기고, 터지고, 깨지고, 곳곳에서, 여태 아물지 못한 전쟁통(痛)이 훈장처럼, 혹은 눈물처럼 깊은 것도 다를 게 없었다.
라우셰 바닷가에서 발레파킹을 부탁했다. 카페 테라스에 앉아 화이트커피를 주문했다. 늘 그랬듯이, '비둘기 바위'를 바라보았다. 나른한 오후가 지중해 끝자락에 걸렸고, 화이트커피는 익숙한 듯 저 혼자 식어갔다.
갑자기, 콰아아 앙!
고막을 터트리는 굉음과 함께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베이루트는 그 찰나 지구에서 가장 붉었다.
내가 원한 것도 아닌데,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었다.
"내 생각보다 세상은 독해요."
"버틴다고 계속 버텨지지는 않네요."
"나 기댈 곳이 필요해요."
'기댈 곳'. 한 물 간 이 노래가, 속절없이, 내 밤을 어지럽혔다.
나도 잠결이면서, 유튜브를 흔들어 깨웠다. 낯선 곳을 떠도는 디아스포라처럼, 레바논 가수 엘리사의 'حُبَّك متل بيروت (당신의 사랑은 베이루트 같아요)'를 찾아다녔다.
재생(再生) 버튼을 눌렀다. 볼륨을 높였다.
엘리사가 집을 빠져나와 거리로 나섰다. 아랍 마캄(Maqam) 음계의 'Dum-Tek--Tek-Dum--Tek' 리듬이 심장박동만 같았다.
(엘리사) "당신의 사랑은 베이루트 같아요."
(나) "햇빛은 유리 파편처럼 부서지고, 도시는 아무 일도 없는 듯 눈이 부셔요."
사랑 노래가 흐르고, 나의 문장은 파반느만큼이나 장중한 템포로 거리마다 스며들었다.
"당신의 사랑은 베이루트 같아요."
구멍가게 할아버지, 채소 파는 아주머니, 빵집 아저씨. 보통의 웃음. 보통의 하루. 커피를 끓이고, 과자를 사고, 어린 시절부터의 긴 꿈이 그곳에서 자랐다.
사람들은 지독한 사랑을 보게 되면 이렇게들 말했다.
"그 사랑, 마치 베이루트 같군요."
노래가 끝이 났다.
엘리사는 바람을 두른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다시, 재생 버튼을 눌렀다.
햇살 좋은 날, Bay Rock 카페에 앉았다.
바람은 언제나처럼 비둘기 바위를 박차고 올랐다.
화이트커피가 서서히 식어갔다.
중국식당 털게 요리,
레바논 산맥의 푸른 백향목,
그 나무로 지었다는 예루살렘 성전을 얘기했다.
베이루트 성 요셉 성당에서 쇼팽의 프렐류드 24번을 연주하며 건반을 내리치던 조성진의 분노를 칭송하기도 했다.
아귀가 맞지 않는 대화의 순간들을 사랑했다.
하리사 언덕 하늘 가까운 곳,
베이루트를 품어 안은
레바논의 성모.
성모의 품을 사랑했다.
성모의 시선을 사랑했다.
"당신의 사랑은 베이루트 같아요."
그 가사가 - 터지고, 깨지고 - 꽃잎이 짓밟히는 굉음 속에서도 여전히 본질임을 생각했다.
긴 밤을 뒤척였다.
내가 꿈을 꾸는지, 꿈이 나를 꾸는지 구분이 어려웠다.
아침이 밝았다. 무척 졸렸다. 간밤의 몽상(夢想)에 베이루트를 본 탓일까 싶었다.
억지로 출근에 나섰다. 지하철이 북적였다. 틈을 비집고 들었다. 운 좋게, 출입문 가까이에 피곤한 몸을 기대었다.
차창 위로, 내 얼굴이 비쳤다.
"그래요, 나 기댈 곳이 필요해요."
이어폰에서 십 년 된 그 노래가 다시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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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 공습으로 인한 레바논 사망자: 1978년 2천 명, 1982년 19천 명, 2006년 1천3백 명, 그리고 지금 다시 카운트 중.
- 엘리사(Elissa): 유튜브 60억 뷰 이상의 독보적인 레바논 아티스트
- 레바논의 성모: 1954년, '원죄 없는 잉태' 교리 선포 100주년과 성모 성지 건립 50주년을 기념하고, 레바논을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하기 위해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