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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밍드림 Jun 03. 2024

마요르카 '기쁜 우리 젊은 어느 날' ②

세계여행 에세이: 스페인 마요르카 (최종화)

오롯이 리프레시에만 집중하지 못하게 훼방 놓는 존재는 대개는 성가신 나의 내면이거나, 다시 돌아갈 일상에 대한 꺼림칙한 근심이다.


마요르카 여행 이튿날이 되고, 사흘째의 날이 되면서 훼방의 정도는 점점 세져 간다. 이것들을 어떻게 지중해의 햇볕에 가볍게 말리고 따사로운 산들바람에 실어 바다 저 멀리 날려 버릴 수는 없을까...




Op. 3. 마요르카의 밤


길을 걷다 무작정 들러보는 곳일 수는 없다. 차로 십여 분, 한적한 동네의 레스토랑에 들어선다. 높은 돌담이 에워싼 뒤뜰엔 자갈과 모래가 섞여 깔렸고, 그 가운데에는 키 작은 사이프러스 나무가 심어져 있다. 안내받은 테이블 위론 밀짚으로 엮은 듯한 지붕을 얹은 파라솔이 씌워져 있다.


마드리드에서 맛보았던 뜨겁게 달군 돌판 위에 구워 먹는 소고기 요리를 잊지 못해 찾았으나, 잘 알지를 못한다. "What is good here?" (뭐가 좋을지 추천해 주시겠어요?)


음식을 기다리는 긴 시간 동안 어둠이 짙게 깔리고, 조명은 각자의 테이블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어둑하게 비춘다. 한 테이블 건너의 또 다른 가족 손님 중 남자가 수군거린다. "일본 사람들은..." 뒤엣말은 때마침 수다를 쏟아내는 아이들로 인해 들리지 않지만, 거북한 소리는 분명 아닐 것이다. 우리는 아주 우아했으니까.


굵직하게 썬 가지, 토마토, 호박, 감자, 피망 위로 올리브 오일을 듬뿍 뿌렸다. 허브와 소금, 그리고 오븐에서 익힐 시간만을 더하여 요리한 '마요르카 스타일'의 구운 채소가 먼저 테이블에 오른다. 색이, 향이, 맛이... 모두 처음이다. 소박한 이 요리의 매력 위로 마요르카의 밤이 깊어간다.


보조 테이블 위에 드디어, 나를 빼곤 다들 처음 만나는, 빠에야가 올려지고, 나이 지긋한 웨이터가 정성껏 네 개의 접시에 나눠 담아내어 준다.

 

주위가 온통 어둡다. 심심하게 오가는 대화가 정적을 깨트릴 뿐이다. 무심코 올려다보는 하늘엔 별이 총총하다.



Op. 4. 해변과 태양


비치 타월 몇 장 들고 호텔을 빠져나와 잠시 걷다 보니, 한낮의 해변이다. 오전 내내 수영장을 헤집고 다니던 아이들 어깨 위로 붉은색을 처발라대던 태양이 이제는 끝 가는데 모를 백사장 위로도 뜨거운 빛깔을 마구 칠해댄다. 모래에 닿는 발바닥이 금세 뜨거워진다.  


10월이란 계절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백사장에 아무렇게나 띄엄 앉은 사람들은 아이들이 제멋대로 뛰어다녀도 될 만큼의 넉넉한 공간을 내어준다.


아직은 뜨거운 태양 아래, 마요르카의 너른 백사장은 그저 한가롭다.

  


마요르카 바다는 성능이 좋지 못한 카메라 렌즈로 담아내기엔 버거우리 만큼 오묘하다. 그런 바다 빛깔을 조율하는 하늘의 본질적 빛깔 또한 형언하기 어렵다. 어디에서나 반짝거리는 빛과 짙은 그림자 둘을 만들어 내는 태양은 모래성을 쌓아가는 우리들 어깨 위에서도 한참을 머문다. 그리고는, 빨갛게 타오른 흔적들을 남긴다.


얼굴이야 타든 말든, 아이들은 내버려 두고, 길게 뻗은 해변을 호젓이 걸어본다. 지중해의 태양과 바다와 모래를 즐기는 우리들만의 방식을 만들어 간다.




Op. 5. 동굴(Cuevas del Drach) 그리고 호수


석회암 동굴은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 동굴이 주는 식상함에도 불구하고 드라크 동굴을 찾은 이유는 땅 아래 깊숙한 곳에 신비한 호수가 숨겨져 있다고 들어서다.


종유석이 1cm 자라는데 100년의 세월이 필요하단다. 너무나 인상적이기에 그만큼 익숙해져 버린 동굴 속 풍경이지만, 습한 암석 냄새가 폐부를 찌를 때면 시간의 개념이 무너져 내린다.


무엇에 취하였는지 모르게 흐느적거리며 걷다 보니, 그제야 '세계적' 지하 해수호 '마르텔'이 베일을 벗는다. 호수나루에 줄 서서 작은 배에 오를 차례를 기다린다. 앞서 떠나는 이들이 하필이면 뱃사공 카론을 따라 저승으로 가는 망자의 모습 같아 보이는지 모르겠다.


손끝에 몰래 닿는 에메랄드 빛깔의 호숫물은 순간 차갑고, 지하세계를 밝히는 조명에는 '음'의 기운과 '양'의 기운이 섞여 있어 서로 힘을 겨룬다. 물을 건너는 내내 들려오는 스트링 악기 몇 대가 합주하는 오묘한 소리에 장소의 개념마저 무너져 내린다.


 리프레시를 방해하는 것들을 없앨 수 있는 비법이 태양과 바람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Op. 6. 호안 미로(Joan Miro, 1893~1983)


한가로운 해안선은 밀려왔다 밀려났다를 무한 반복하는 파도로 심심할 틈이 없다. 마요르카의 기쁨이 크게 밀려왔으니 이제 일상으로 밀려나야 할 시간도 머지않았으리라.


마요르카를 떠나기 전날, 호안 미로 미술관(Pilar and Joan Miro Foundation)을 찾아 언덕을 오른다. 미로는 예술적 영감에 파묻혀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는 공간을 꿈꾸었고, 이곳을 선택했다. (안익태 선생 유택과 지척이다.)


"I want everything that I leave behind to stay just as it is when I am gone." (내가 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나의 흔적은 지금 이대로 남아있을 수 있기를.) 화가의 소망대로 호안 미로 미술관이 이곳에 자리하고, 오늘은 우리를 맞이한다.



화가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해도, 한 번은 본 듯한 (초현실주의) 기괴한 그림들. 사실 나는 이성과 지성이 작동하지 않은 채 감상할 수 있는 그림을 좋아하지, 보이는 것 이면의 메시지를 숨은 그림 찾듯이 이해해야 하는 그림을 감당할 능력은 없다. 그럼에도, 매우 드물게, 감상을 하는 게 아니라 보는 대로 보이는 대로 꿈을 꾼다.


풍경 속의 새 / 아름다운 모자를 쓴 여인, 별 / 사람과 새 (좌측부터)


'동심의 상상력을 방해하지 않는 본질에 대한 탐구' 대충 이렇게 기억하는 미술 비평을 지지한다.


미로 미술관에서 바라보이는 바다, 그리고 이웃한 하늘은 서로의 경계를 구분 짓지 못하고 마냥 짙푸르다. 마요르카에서의 기쁜 우리 젊은 어느 날처럼 말이다.


푸르른 빛깔과는 대조적으로, 여행이 끝나감을 직감한 듯 작은아이의 축 늘어진 어깨가 안쓰럽다.




Op. 7. 마지막, 팔마 산타마리아 대성당


팔마 시내를 둘러보는 것을 마지막으로 우리의 마요르카 이야기는 끝이 난다.


마요르카를 떠나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마요르카 대성당이다. '빛의 성당'이라더니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하며 퍼져 나오는 찬란한 빛은 카메라로는 도저히 담을 수가 없다. 


우리의 화려한 여정의 피날레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찬란함이다. 


가운데는 가우디가 설계했다는 캐노피(Canopy)


공항으로 차를 몰아가는 길지 않은 시간에 무엇인지도 모를 만감이 교차한다. 우리는 각자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뜬금없이, 가지 못할 이비자가 궁금해진다.


여우는 끝내 포도를 따먹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중얼거렸다. "The grapes don’t look that juicy and I just know they will be as bitter as lemons. Phooey! Who wants to eat sour grapes!". (저 포도는 영글지도 않아서 레몬처럼 쓴맛이 날 거야. 저따위 신 포도를 누가 먹고 싶어 할까.)


그날 우리는, 마요르카에서, 젊었고 또 한없이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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