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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밍드림 Jun 09. 2024

인신공양의 신앙에서 가톨릭으로, 피라미드와 치유의 성당

세계여행 에세이: 멕시코시티, 푸에블라 & 촐룰라


쉐라톤 호텔에서 아주 가까운 소노로사에는 트렌디한 유흥업소들이 빽빽하고, 그 사이로 한식당들이 꽤나 많이 비집고 들어서 있다. 웬일로 스스로 한식당을 다 찾는다. Modelo 맥주 한 병과 갈비탕 한 그릇으로 지친 몸을 추슬러 보려 한다.


습관처럼 주위를 둘러본다. 저 옆 테이블 위엔 김도 올라오지 않는 찌개 한 그릇과 텅 빈 소주 두 병이 너부러져 있고, 내내 핸드폰만 귀에 대고 널브러져 있는 멕시코 청년은 고개를 떨구었다 소리를 질렀다를 리드미컬하게 반복한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다. 이미 발음이 꼬여버린, 그래서 뭔 말인지 나로선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그의 말을 지치지도 않는 듯 받아주는 핸드폰 너머의 어떤 이가 누구일지 문득 궁금해진다. 어쩌면 아무도 없을지도 모르겠다. 깊어가는 밤, 머나먼 이국 땅 유흥가 한복판에서 우연히 마주하는 익숙한 듯 낯선 청춘의 단편이다.


"Una mas cervesa, por favor."(맥주 한 병 더요.)




우연찮게 보게 된 사진 한 장, 짧은 영상 하나에, 그 옛날 몽생미셸처럼, 난데없이 확 끌려버리는 경우가 있다.


유독성 연기를 위압적으로 내뿜는 눈 덮인 활화산과 고고한 듯 신성한 듯 산 정상에 우뚝 선 오커골드색으로 빛나는 사원.

  

출처 : TravelAge West


촐룰라(Cholula)라는 곳을 멕시코 버킷리스트에 잊지 않고 넣어둔 것은 바로 이런 연유에서다.



연기 나는 산과 노란 성당을 찾아서


쇠한 기력을 보충한 다음날 아침 촐룰라를 향해 차를 달린다. 8월인데도 걷기만 해도 짜증이 차오르는 그런 습하고 무더운 날씨는 아니다. 살갗이 조금 따가울 뿐이다.


번잡한 시내를 벗어나면 길가에 아무렇게나 텐트를 치고 살아가는 빈민들을 만나고, 도시 외곽을 벗어나면 머리 위로 케이블카가 둥둥 떠다니는 달동네들이 줄지어 나타난다. 그 마저 지나가고, 오가는 차들이 뜸해진다 싶으면 이젠 행여나 갱단이라도 마주칠까 조심스레 주위를 살피기에 바쁘다. 멕시코시티를 떠난 지 세 시간 남짓 되었을까.



골목 안쪽에 차를 세워두고, 사람들이 더 많이 보이는 방향으로 진로를 정해 본다. 굳이 내비게이션을 들여다볼 이유가 없다. 사람들 생긴 것이며, 스치는 것들마다 멕시코스러운 풍경이란 게 이런 거구나 싶다. 대도시를 벗어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다. 그제야 마음이 놓인다.


무심코 올려다보는 하늘은 눈 부시게 푸르르다. 이내 시장골목으로 들어선다. 넓지 않은 골목 사이로 출출한 여행객을 유혹하는 길거리 음식들이 널렸다. 그 옆으로는 알록달록 토산품을 파는 가게들이 또 줄지어 섰다. 멈춰 서 사 먹을 마음도 호객할 마음도 서로가 없는 듯하여, 나도 흘낏 토르티야 굽는 아낙네도 흘낏 그렇게 서로가 데면데면하게 지나친다. 멕시코에 오면 모든 게 산해진미일 줄 알았더니, 치차론(돼지껍질)인지 모르고 토르티야에 듬뿍 올려 한 입 베어 먹고는 물컹물컹 훅 밀려온 비린 맛에 속이 울렁거린 후로는 타코 보기가 돌과 같다.




시장골목이 끝나고, 사람들을 쫓아 언덕 위로 오르자 그제야 보인다. 나를 마구 흔들어 놓았던 풍경들.


멕시코에서 두 번째로 높다는(5,393m) 영산(靈山) 포포카테페틀('연기 나는 산') 활화산, 그리고, 산인지 언덕인지 그 꼭대기에 고고하게 내려앉은 밝디 밝은 '치유의 성모 성당'(Santuario de la Virgen de los Remedios).




겉과 속이 다른 위선


운명처럼 그 사진을 처음 만났을 때는 미처 알지 못하였다.


치유의 성모 성당이 우뚝 선, 나무와 잔디가 곱게도 자라난, 그 자리는 산도 아니요, 그렇다고 언덕도 아닌,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피라미드(Great Pyramid of Cholula)라는 사실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하였다.


이 피라미드의 이름은 틀라치후알테페틀. '손으로 만든 산'이라는 뜻을 가졌다. 그 유명한 이집트 기자 피라미드 보다 기단의 너비가 네 배는 더 길다. (높이는 기자 피라미드가 139m로, 67m의 촐룰라 피라미드 보다 더 높다.) 고대의 번성한 도시를 지배하던 멕시코인의 선조들은 1,200년 동안 새로운 왕조가 들어설 때마다 피라미드를 증축하여 정복과 권위의 상징으로 삼았다.


그리고, 피라미드의 꼭대기에는 케찰코아틀(날개 달린 뱀)을 위한 제단이 있었을 것이고, 오랜 세월 제단에서는 인신공양이 행해졌으리라.



피라미드가 그 형체를 알아보지 못하게 흙으로 덮이고 언덕처럼 변한 것을 두고, 스페인 정복자들이 인신공양 신앙의 흔적을 흙으로 덮어버렸다고도 하고, 또 일설에는 에르난 코르테스가 촐룰라에 도착했을 때 이미 흙과 나뭇잎으로 뒤덮인 폐허의 상태였다고도 한다.


무엇이 진실이든, 인신공양의 신앙에서 가톨릭으로 변화하는 과정 또한 피의 역사가 되었고, 1594년 촐룰라 피라미드의 꼭대기에는 치유의 성모 교회가 지어지기 시작했다.



Out of sight, out of mind. (보이지 않으면 잊히는 법)


1519년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는 촐룰라에 당도한 뒤, 아즈텍의 인신공양을 두려워하던 다른 부족과 함께, 정복 역사상 가장 잔인한 대학살(Cholula Messacre)을 자행하였다. 6천 명 가까운 원주민들이 죽임을 당했다. 박물관에 내걸린 그림을 보면, 굶주린 마스티프 개와 늑대개가 아즈텍인들을 물어뜯고도 있다.


그리고는, 파괴되고 불타버린 신전(피라미드)들이 있던 자리에 교회를 하나씩 하나씩 건립하였고, 일 년 동안 하루에 하나씩 지어 총 365개의 교회를 세웠다고 한다. (유네스코와 유산)


테오티우아칸과 달리, 촐룰라,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피라미드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아주 많지는 않다고 한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의 속을 굳이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까닭이지 않을까 싶다.


(좌측) 촐룰라 대학살 (Cholula Massacre, Mika Harju) / (우측) 박물관 내 아즈텍을 공격하는 스페인 군견 그림


1521년 아즈텍의 멸망 이후, 토착 문명이 부정당하며 함께 무너져 내리던 피정복의 멕시코인들에게 1531년 과달루페의 성모가 발현하셨다. 이내 수많은 사람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그리고, 기나긴 세월을 지나며 멕시코 정신의 근간을 이룬다.


환상적인 사진 한 장에 마음을 빼앗겼다. 겉은 환상이요 오류이며, 속이 진짜라고 하는 말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세상에서 가장 큰 피라미드가 속이요, 치유의 성당이 겉이라고 까지는 생각지 않는다. 둘 간의 관계가 '위선'처럼 속이고 감춘 것만은 아닐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속을 어떻게 겉으로 드러내느냐에 따라 진실과 위선이 갈릴 것이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산천 의구란 말


변함없이 유독성 연기를 내뿜고 있는 화산을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36km나 떨어져 있다지만, 머릿속으로는 저 산과 나 사이에 치유의 성당을 앉혀 놓았다. 비현실적 풍경 사진을 현실처럼 다시 그려본다.


치유의 성당 안과 밖을 찬찬히 둘러본다.



존재를 체감하기 어려운 피라미드와 그 위에 아름답게 올라 선 치유의 성당을 아울러 생각해 본다. 정복자들이 들이닥치기 이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역사는 이리로 저리로 크나 큰 강줄기처럼 유유히 흐른다.


"산천의구란 말 옛 시인의 허사로고

예 섰던 그 큰 소나무 버혀지고 없구료,"


이은상 시인의 '옛 동산에 올라'의 시구가 떠오는 것을 어찌하랴.


언덕을, 아니 피라미드를 되돌아 내려오며 푸르른 하늘을 캔버스 삼아 촘촘하게 솟아오른 교회의 돔과 첨탑들을 바라본다. 촐룰라 이 작은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멋진 까닭이 거기에 있다.







피라미드를 완전히 내려서면 소리아 공원(Parque Soria)이다. 잡동사니를 내다 파는 한가한 유원지 상점들과 빙빙 돌아야 할 관람차가 멈추어 선 놀이공원이 눈길을 잡아끈다. 인적이 없는 카페의 흔한 그라피티에도 시선이 머문다. 하지만, 피라미드나 성당과는 참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다.

 


언덕을 오르내린 사이에 교회와 교회를 잇는 길을 따라 8월의 더위를 식혀 줄 빨갛고 노랗고 때로는 초록색깔의 과일들이 늘어섰다. 기꺼이 지갑을 열어줄 행인을 기다린다. '날도 더운데 괜찮을까?' 싶으면서도 잘 익은 수박 한 덩이를 꿴 꼬챙이를 건네받는다.


무심코 뒤돌아 보면, 오커골드색의 치유의 성모 성당 끄트머리가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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