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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밍드림 Jun 18. 2024

환생 아니면 갱생, 어떤 바람...

세계여행 에세이: 멕시코 테오티우아칸

테오티우아칸의 '태양의 피라미드', '달의 피라미드', '죽은 자의 거리'에 대한 소감을 적어보아야 할 텐데, 엄두가 나지 않는다. 본격적인 테오티우아칸 스토리에 앞서, 마치 전기(前記) 인양, 동굴이라는 뜻의 라 그루타(La Gruta)에 대한 두 가지 인상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이야기 하나. 동굴 레스토랑


Grotta Palazzese 레스토랑 (출처 : booking.com)


동굴 속 레스토랑이라고 하면, 아마도 이탈리아의 그로타 팔라체세(Grotta Palazzese)가 가장 유명하지 않을까. 동굴, 그 속에서의 우아함 (둘이서), 바깥의 푸른 바다를 향한 고독 (틈 나는 대로 나 혼자서), 이런 로맨틱 감성이 매우 궁금하다. 이탈리아 장화 뒷굽 쪽 해안에 가 볼 어느 날을 오늘도 꿈꿔 본다.



'라 그루타'라는 곳이 JTBC '톡파원 25시'에서 석 달 전쯤 소개되었다고 멕시코시티에서 들었다. 엘리자베스 2세 전 여왕도 다녀간 곳이라며 테오티우아칸 가는 길에 꼭 들러보라는 친절한 당부도 있고 하니, 마땅치 않으면 돌아서리란 무심함으로 그곳에 가 보기로 했다.


"어떤 곳일까?" 설마 하면서도 내심 궁금하긴 하나 보다.


떠나기 직전 "TV에 속았다." 한글 후기 하나가 유독 눈에 띄었다. 기대가 땡볕 아래 아이스크림 녹듯 빠르게 사라졌다.


태양의 피라미드에서 매우 가까운 곳. 동굴 속 레스토랑의 역사는 테오티우아칸이 발굴되던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고 했다.



촌스럽지 않게 덜 인위적인 게 입구에 이르는 길이 예사롭지 않다.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던 기대가 좀비처럼 되살아났다. 걸음을 멈추고 뻐끔 뚫린 구멍 속을 훔쳐보듯 들여다보았다.


(테오티우아칸에서 살아간 사람들은 이 동굴을 마치 자궁과 같이 여겼단다.)



그 속에 빨갛고 파랗고 또 노랗기도 한 의자들이 빼곡하게 들어앉았다.


"멕시코스럽잖아." 그 인상과 그로타 팔라체세처럼 격조 있는 파인 다이닝에 대한 약간의 기대를 과감히 맞바꾸었다. 점심때까지 시간이 남아서 그런지, 동굴로 걸어 내려가며 보이는 파스텔톤 풍경 속에 빈자리가 꽤나 많아 보였다.


카페 데 오야. 굳이 직역하자면, 질그릇 커피


애초에 분위기만 느껴보고자 했기에, 메뉴판을 훑어보는 척, '카페 데 오야'(Cafe de Olla) 한 잔을 주문하였다. 끓는 물에 시나몬과 필론치요(아니면 흑설탕)를 녹인 다음 초콜릿 코팅 에스프레소를 넣고 우려내는 멕시코식 커피다. (레바논에서 마시던 화이트 커피와 비슷하게 색도 옅고 시나몬 향이 좀 더 진한 그런 맛.)


에스카몰레스 (출처: 톡파원 25시)


커피 한 잔이 잘 어울리는 시간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비릿했던 치차론(돼지껍질)이나, 에스카몰레스(흰개미알 버터 볶음)나, 구사노스(아가베 선인장 벌레 튀김) 같은 몬도가네식 '별미'를 주문해야 로맨틱할 뻔했겠다.



구사노스 (출처: La Gruta 홈페이지)


동굴 속이라는 공간적 낭만과 스페인 식민시대 이전부터의 전통 음식이라는 시간적 낭만이 어우러져 특히나 유명한 곳이었다. 


'TV에 속았다'는 후기는 아무래도 끝내 '불호'로 결론 내린 '비싼' 별미 때문이었거나, 시공간적 낭만 둘 중 어느 하나를 놓치고 만 탓이 아니었을까. 게다가, TV는 Rebirth 이야기를 해 주지는 않았으리라.



이야기 둘, 환생 아니면 갱생, 동굴에 양초를 바치고 다시 태어나다


사실 그랬다. "어떤 곳일까?" 단순한 호기심은 '다시 태어날(Rebirth)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는 영어로 적힌(외국인을 위한) 추천의 말을 발견했었다. 내가 그때 왜 그 말에 관심을 가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멀리서 바라보였다. 동굴 깊숙한 한편에 수없이 많은 양초가 제각기 작은 불꽃을 피우고 있었다. 촛불을 바라볼 때면 어디서나 늘 생각했었다, 하나하나 저마다의 사연이 있을 터라고.



커피 한 잔 값 계산을 하고 자리를 뜰 때가 되니, 서빙하는 이가 이곳 동굴에 깃든 전설을, 외운 듯 서툰 영어로, 짤막하게 설명했다.


신성한 동굴 안에서 불을 얻음으로써 영혼이 깨끗해지고 사람이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단다. (이 말을 커피를 마시는 내내 내심 기다렸던 게 틀림없었다. 반가웠다.) 그런 의미로 불의 상징인 양초를 동굴에 바치는 퍼포먼스를 하는 것이겠다.



식후 행사처럼, 테이블 사이를 지그재그로 지나, 건네받은 양초를 바위 위에 올려놓았다. 그게 다였다. 기도를 할 게 아니니. 하지만, '맛집' 뒤에 가려진 'Rebirth'의 의미를 그 순간 곱씹어 보았다. 

기억해 보면 이곳 후기 중에 나와 같은 호기심은 보이지 않았다. 


자궁과 같은 화산 동굴은 생명이 태어난 우주의 근본이라 여겨졌다. 테오티우아칸에 살던 이들은 죽음 대신 환생을 믿었고, 새롭게 태어나지 못하면 환생을 하더라도 사람으로 태어나지 못할 수 있음을 두려워했다. 생명이 태어나는 동굴에서 불을 얻음으로써 새로운 사람이 먼저 되고자 했다.


"틀라토아니(신탁을 수행하는 아즈텍의 통치자)는 이곳 동굴에 내려와 불의 신이자 죽음과 순환의 신 '숄로틀'로부터 불을 얻었다. 동굴 밖으로 올라와서는 바람의 신이자 대지와 하늘과 현생 인류의 창조자인 '에 헤카틀'을 기다려 불꽃을 피움으로써 새 생명을 얻고 새로운 사람이 되고자 했다."


나도 동굴에 양초를 바쳤고, 숄로틀의 불을 얻었다. 나는 어떨까. 환생까진 몰라도 갱생만은 꼭 필요하지 않을까. 형편을 보면, 희망 대신 허망이 더 어울리겠지만, 잘해보고 싶고, 잘 되었으면 싶고, 착해지고도 싶고, 괜한 갱생 타령이다.


무엇이 그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 태어나기를 소망하게 했던 것일까. 다시, 인신공양 이야기다.


멕시코시티 국립인류학박물관에서 촬영한 아즈텍 태양석 (Piedra del Sol). 지름 약 3.7m, 무게 24톤


멕시코시티 국립인류학박물관 소장품 중 가장 인기 있는 유물 중 하나가 피에드라 델 솔(태양석)이다. 피에 굶주린 태양신 토나티우의 얼굴이 가운데 자리한 아즈텍의 캘린더 석판이다. (라 그루타의 로고도 토나티우의 얼굴이다.)


아즈텍인들은 제례력과 농사력 두 개의 캘린더를 사용했다. 제례력에 따라 해마다 열여덟 번의 인신공양이 끊임없이 행해졌다. 제례력과 농사력이 일치하는 52년 주기가 도래하면 신들이 행여나 그간의 인신공양에 만족하지 못해 세상이 멸망할까 봐 또다시 성대한 인신공양 의식이 진행되었다.


인신공양 모습이 어떠했는지 살펴보니, 어디 심장 적출만 있었겠나... 어린아이들의 목을 잘라 받아낸 피를 밭에 뿌리며 옥수수 농사의 풍년을 기원했고, 어린아이를 호수에 던져 익사시키기도 했고, 동굴에 가두어 아사시키기도 했고... 읽다가 그만 접어 버렸다. 그들에게 갱생은 어쩌면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겠다 싶다.


어쨌든 나도 죄는 짓지 말고서 갱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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