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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밍드림 Jun 14. 2024

빈센트, 아름다운 별이... 지다 ②

세계여행 에세이: 빈센트 반 고흐와 프랑스 오베르 쉬르 우아즈 (최종화)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 그럴 때 묻곤 하지. 왜 프랑스 지도 위에 표시된 검은 점에 가듯이 창공에서 반짝이는 저 별에는 갈 수 없는 것일까?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밤하늘에 떨어지는 유성(流星)을 보며 “저게 뭘까” 스테파네트 아가씨가 목동에게 물었다. 목동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영혼”이라 대답했다. (알퐁스 도데 '별')




고흐가 떠난 이유


결코 길지 않은 화가로서의 시간 동안 고독, 가난, 또다시 희망, 그리고 허망, 좌절..., 삼가 말하기를 영혼의 시련으로 무척 힘들었을 그 사람. 귀신에 홀린 듯 그가 흘려놓은 흔적을 따라 걷는다.


라부 여인숙은 간이역이다.

'오베르' 이정표는, 여느 역처럼

앞과 뒤, 두 개의 화살표를 지녔다.

하나만 이름을 가졌다.

종착역이 아닐진대

앞을 잃었다.

더 갈 곳을 모른다. 그래서

떠나갔다.

다행이다, 까마귀가 날아올라서.



떠나는 이유에 대해 침묵해야 할 때가 있다. 오해를 하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떠난 후에' 남겨질 (혹독한 괴로움에 시달릴지도 모를, 사랑하는, 사랑했던) 이들에 대한 최선의 배려다.


그렇게 떠나갔다.


오베르의 거리 (1890) (출처: Wikipedia)


떠난 이유? 그냥 "미쳤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하자.


다시, 오르막길을 걷는다. 헨젤과 그레텔이 흘린 빵조각들을 쫓듯이 고흐의 흔적들을 찾아 오베르 마을을 두리번 거린다.




오베르의 전경 (1890) (출처: Vam Gogh Museum)


"죽기 전까지 유화 작품 한 점 밖에 팔지 못했대."


"그림 산 사람, 안목이 상당했었나 보네."


"미술계에 영향력 있는 여성화가였다던데."


잠깐 한눈을 판다. 길 가의 집들은 왜 이리 아늑해 보이는 걸까.






주인이 누군지 모를 오베르 어느 집 덧창엔 예쁜 꽃들을 품에 안은 화분이 놓였다. 고흐가 떠나던 날에도 꽃들은 예쁘게 피었으리라.


전시회에 내걸렸던 '아를의 붉은 포도밭'(1888)이 팔려나간 게 너무나도 좋았었나 보다. 어머니에게 편지를 쓴다.


“브뤼셀에서 제 그림이 400프랑에 팔렸다는 소식을 테오가 전해줬습니다. (...)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그럴수록 제대로 된 가격에 팔릴 작품을 계속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할 생각입니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890년 2월, 사망 5개월 전이다.



오래 걷지 않아 13세기 고풍스러운 '오베르 교회'를 만난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만나 본 게 그리 오래 전은 아니다.


독실한 프로테스탄트 화가는 아름다웠을 계절 6월에, 순수한 신앙의 간증처럼, 소박한 성당을 캔버스 위로 옮겨 놓는다.


The Church at Auvers (1890) (출처 : Wikipedia)


그의 영혼 한 줌도 그만 그림 속으로 빨려든 듯하다. 죽기 한 달 전.


화가의 종파를 초월한 신앙과 달리, 오베르 교회는 자살한 프로테스탄트를 위한 장례미사를 거절하였다. 가여운 화가는 죽어서도 위로받지 못하였다. 근엄일까, 아니면 옹졸일까. 테오의 상처도 덩달아 가엽다.


비단 그림만 그러겠냐만, 알아보게 되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참되게 보게 되고, 참되게 볼 수 있게 되면 갖고 싶어지는 게 숭엄한 이치일 터다. 처음으로 그림을 팔아 본 감격은 그다음, 그다음의 다음이 빠르게 이어지는 기대를 갖게 했으리라. 그게 순리다.


두 달 전에 취미 삼아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누가 읽겠나 싶더니 구독자가 생기고는 마음이 급해졌다. 셋이 되기를 바라고, 금세 열이 되리라 꿈을 꾸며,... 다작을 했다. 낙심의 순간은 빨랐다.


"이제 우리는 성공이 찾아오기를 끈기 있게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해. 분명 형은 살아 있을 때 성공을 거두게 될 거야. 일부러 나서지 않아도 형의 아름다운 그림들 때문에 저절로 이름이 알려지게 될 거라고."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첫 그림이 팔린 지 다섯 달. 무소식은, 동생을 보기 미안해서라도, 처절하리만큼 견디기 어려웠으리라. 나도 이럴진대.





과거와 현재를 이어 묶는 그림들


오베르 교회로부터 버림받은 고흐. 그가 묻힌 곳을 찾아야 했다. 이럴 줄 모른 건 아니지만, 힘이 든다. 공동묘지를 찾는 일은 무지 쉬웠다. 오베르 교회에서 멀지 않다.



스러진 별이 둘이나 된다. 돌담 아래, 형제가 누웠다. 내보이지 않는 두 별의 각기 다를 슬픔과 서로 같을 형제애가 내려다보는 이의 등골을 타고 시리게 올라온다.


반갑지 않았을 더치(Dutch) 덕에 이 마을이 빛나건만, 인심이 야속하리 만큼 볼품없다.


형이 죽자 고작 6개월을 더 살고 죽어버린 동생. 형 보다 4년이나 짧은 33년만 세상을 살았다. 1914년, 고흐 서간집이 출간되던 해, 형의 곁으로 이장되었다.



나날의 삶이 희망을 배신하더라도 끝까지 살아보라고들 말한다. 어찌 자기 회복의 힘을 탓할까. 공동묘지를 다 벗어났겠지 싶어 고개를 든다.


비록 갈아엎은 누런 흙밭과 밀이 자라지 않는 그저 너른 들판일 뿐이지만. 외따로 선 표지판을 보지 않더라도, 이곳이 그곳임을 안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 그림과 들판과 세 갈래 길을 좌에서 우로, 다시 우에서 좌로 바라본다. 그는 가고 없어도, 그에 대한 연민을 가득 담고 있을 저 들판은 여전하다. 세 갈래 길도 여전하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 (1890)


새로운 길에선 집착을 내려놓으며 기대와 걱정이 조화로워 진다. 셋으로 나뉜 길은 내가 '가지 않은 길'이다. 하지만, 앞을 잃은 느낌이다. 더 갈 곳을 모르겠다.


또다시 선 채로 기괴한 꿈을 꾼다. 까마귀 떼가 날아오른다. 길몽이든 흉몽이든 뭔 대수랴. 날아오르니 다행이다.


    And the Raven, never flitting, still is sitting, still is sitting

On the pallid bust of Pallas just above my chamber door;

    And his eyes have all the seeming of a demon’s that is dreaming,

    And the lamp-light o’er him streaming throws his shadow on the floor;

And my soul from out that shadow that lies floating on the floor

            Shall be lifted—nevermore!


까마귀는 결코 날개짓도 않고 여전히, 여전히 앉아 있네

내 방문 바로 위 그 창백한 팔라스 흉상 위에.

그의 눈에는 꿈꾸고 있는 악마의 모든 분위기가 깃들었고

그를 비추는 램프 불빛은 그의 그림자를 바닥 위로 드리우네.

그리고 나의 영혼은 바닥 위로 떠도는 저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리라, 결코 더는!

(까마귀 by 에드거 앨런 포. 번역 손나리)


조준 없는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으리라. 온전한 발걸음으로 십 여 분 거리를 너덜거리는 선홍의 피를 부여잡고 비틀거렸으리라. 라부 여인숙으로 향하며 살고 싶었으리라. 테오의 눈물 앞에서 떠나는 이유를 차마 침묵하지는 못했으리라. '배려'를 넘어선 사랑과 연민으로 그리하였으리라.




지금은 이름을 잊은 어느 여성화가의 독백을 기억한다. 처음에는 고흐 작품의 길 위에서 감명까진 줍지 못했었다고. 그런 그이도 끝내는 변했었다.


오베르를 떠날 때, 난 이미 알고 있었다.


Now I understand.

이제야 알 것 같아요

What you tried to say to me

당신이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온전한 정신으로 살기 위해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빈센트', 단 맥클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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