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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밍드림 Apr 16. 2024

아테네 'A Journey thru Time' ③

세계여행 에세이: 그리스 아테네 (최종화)

한 명의 시간여행자로서 바라보건대, 어느 탐욕스러운 이는 찬란한 영광을 일순간에 무너뜨리고, 어느 고루한 이는 처참하게 부서진 파편들이 그저 지루할 뿐이다.




내 지인조차 그리 말하지 않았던가, 가서 보니 돌덩이 밖에 없더라고.


유네스코가 아크로폴리스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게 된 이유를 되짚어 보면, 아크로폴리스를 가보아야 할 우리의 이유에 대해 알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1. 건축이 자연의 현장에 적응된 최상의 표현물이다. 파르테논 신전 (기원전 447년~432년), 프로필라이온 (기원전 437년~432년), 아테나 니케 신전 (기원전 448년~407년), 기원전 406년 완성된 에레크테이온 등 기원전 5세기의 완벽한 걸작 시리즈다.    


2. 오늘날까지 탁월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전 세계 신고전주의적 기념물들은 모두 파르테논 신전이나 아크로폴리스 신전 입구인 프로필라이온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3.  아테네의 토대를 이루는 전설들이 생겨난 신성한 곳이다. 바로 그곳에서 아테나와 포세이돈이 아테네를 차지하기 위해 아테네 최초의 왕인 케크롭스 면전에서 싸웠다. 포세이돈은 소금물이 나오는 샘을 만들었고, 아테나는 올리브나무를 내놓았다. 그 나무는 기원전 480년에 페르시아인들이 잘라냈으나 이듬해에 다시 자라났다. 아테나가 헤파이스토스와 관계를 가져 에리크토니오스 왕이 이곳에서 태어났으며, 아들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에게 잡아먹혔다고 생각한 아이게우스가 바다에 뛰어든 곳이기도 하다. 그 바다는 그의 이름에서 유래하여 ‘에게해’라 불린다.


내게 아테네가 어려운 것은 1번도 아니고 2번도 아니고 바로 3번에 기인하고, 돌덩이로만 보이는 것도 아마도 미처 3번까지 이르지 못한 채 발길을 돌린 탓이 아닐까.




156미터 바위 언덕 위 아크로폴리스를 오르다


설마 무료입장 때문이었겠냐마는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받은 후 몇 시간을 기다린 후에야 입장시간이 될 만큼 아크로폴리스 주변은 입장하려는 사람과 기다리는 사람이 뒤섞여 인산인해를 이룬다. 지금 이 순간 수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오르는 아크로폴리스는 아마도 그때는 아래 모습과 같았으리라.


아크로폴리스 전경 상상도와 정면 가운데의 프로필라이온 (출처 : 브라운대학교)



좌측에서부터 찾아보자. 아테나 니케(Athena Nike) 신전, 프로필라이온(Propylaia), 에레크테이온(Erechtheion), 파르테논(Parthenon)

                    


아크로폴리스로 오르는 길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161년 그러니까 고대 아테네에서 가장 늦게 세워진 공공 건축물로 마라톤의 유력 정치인 헤로데스 아티쿠스가 죽은 아내를 추모하여 건립했다고 하는 헤로데스 아티쿠스 극장이다. 2016년 말 보다 확실히 보수가 많이 진행되었다. 그러면 무엇하랴, 이곳에서 연주회도 종종 열린다는데 내가 함께 할 가능성이 그저 희박할 뿐이니. 괜스레 시샘이 턱밑까지 올라온다.                    



인파에 떠밀리듯 프로필라이온(프로필라이아)으로 들어선다. 이제 아크로폴리스의 관문을 지나는 것이다.


2016년 12월 29일
2023년 10월 28일


프로필라이온을 지나 아크로폴리스 안으로 들어서면, 지금 발 디딘 곳이 현재요, 뒤돌아 보이는 광경이 내가 떠나온 과거인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진다.


2016년
2023년. 7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높다란 벽이 솟아올랐다.




파르테논 신전은 영욕의 세월을 견뎌내야 했다


7년 전에도 그리고 오늘도 파르테논 신전은 여전히 보수 중이다.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볼 때마다 어느 세월에 완공될지 회의적이기만 하더니, 그래도 가우디 사망 100 주기인 2026년에는 드디어 완공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보니 파르테논 신전도 머지않아 잃어버린 위용을 되찾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본다.


2016년
2023년
2016년
2023년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이야기를 않고서는 파르테논 신전을 이해하기 어렵다. 기원전 490년에는 아테네가 마라톤 전투에서 페르시아 군을 물리친다. (마라톤 경주의 기원으로서 이미 유명한 스토리다.) 기원전 480년에는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영웅들의 지배자'라는 뜻) 대제가 100만 대군을 직접 이끌고 그리스를 침략하는데, 이때 영화 '300'의 스토리인 바, 그리스 연합군의 도착이 지연되자,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가 300명의 스파르타 용사를 이끌고 테르모필레(테르모퓔라이) 협곡에서 맞서다 전멸당하고 만다. 페르시아 군은 여세를 몰아 아테네까지 밀고 와서는 바로 이 아크로폴리스에 올라 도시의 수호신인 아테나 여신의 신전을 무참히 파괴해 버렸다.


하지만, 아테네가 이번에는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에 크게 승리하게 되고, 아테네는 이후 군사, 정치, 경제의 중심으로 번영을 누리게 된다. 그리고, 이때 페리클레스라고 하는 그리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지도자가 나타나 기원전 5세기 후반 아테네 황금시대를 열었다. 바로 소크라테스가 활동하던 시대이다.


파르테논 신전은 기원전 447년 페리클레스의 기획으로 시작되어 기원전 432년에 완공되었고 아테나 여신에게 봉헌되었다. (파르테노스가 처녀를 뜻한다고 하니 신전 이름이 아테나 신전이 아닌 이유가 저절로 이해가 된다.) 신전이 완공된 이듬해인 기원전 431년에 아테네가 이끄는 델로스 동맹과 스파르타가 이끄는 펠로폰네소스 동맹 간에 27년간의 전쟁이 시작되었고, 그 사이에 페리클레스가 사망하자 '아테나 여신의 찬란한 도시는 스파르타에 패배하여 기울고', 혼란 속의 아테네 시민들은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파르테논 신전의 역사는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눈물짓게 한다. 나라 없는 그리스 민족의 파르테논 신전은 줄곧 수난을 당해야 했다. 동로마제국 때는 교회로 바뀌고 예술품은 이스탄불로 옮겨졌으며, 오스만제국 때는 다시 모스크로 바뀌었다. 그뿐이 아니라 나란히 섰던 에레크테이온 신전이 오스만 총독의 후궁 처소로 전락하는 광경을 지켜보아야 했다.


급기야 인류 역사상 경악스러운 사태가 발생하였으니, 1684년에서 1699년까지 베네치아가 아테네를 점령하려고 침략했을 당시 오스만제국은 아크로폴리스를 전투 요새화하면서 파르테논 신전을 화약고로 사용하였는데, 1687년 베네치아 군대가 필로파포스 언덕에서 아크로폴리스를 향해 발포한 박격포 포탄이 파르테논 신전 안으로 떨어지면서 보관 중이던 화약이 일제히 폭발하였다. 오호, 통재라! 위대한 신전은 그렇게 일순간에 처참히 파괴되고 말았다.


파르테논 신전의 파괴 (출처 : 나무위키)




아크로폴리스에 들어서는 순간 처참히 파괴되었을지언정 파르테논 신전의 위용에 압도되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시계 반대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그러다 보면, 오스만 총독의 후공 처소로 전락하는 치욕을 맛보았던 에레크테이온 신전과 조우한다.



여섯 카리아티드(카리아티데스) 소녀 입상 (기둥)으로 유명한 이 신전은 아테네의 전설적인 왕 에렉테우스에서 이름을 따왔고, 아테나와 포세이돈을 모신다고 한다. (여섯 카리아티드 중 진품 한 개는 대영박물관에, 나머지는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파르테논 신전과 기타 아크로폴리스 유적의 건축학적 미학적 해석과 이해는 솔직히 너무 어려워서 굳이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신화만으로도 벅찬데 말이다.




달밤의 아크로폴리스, 추억 한 조각


아테네를 떠나기 전날, 휘영청 달도 밝으니 아크로폴리스 야경을 눈에 담아보고자 다시 그곳을 방문하였다. 심지어 그 미끄러운 아레이오스 파고스까지 다시 올라갔다. 아마도 다시 오기 어려울 듯하여 아테네의 잔상으로 오랫동안 뇌리에 남겨두고자 그리 한 것일 게다. 2008, ... 2016, 2023. 그다음은?





에필로그... 국립고고학박물관 (National Archeological Meseum)에서 기원전 5세기 제우스를 만나다


아크로폴리스에서 40분쯤 걸어가면 국립고고학박물관에 이른다. 오히의 날이라 이곳 박물관도 무료입장이다. 게다가 중국 고위 간부가 박물관 방문하는지 입구에서 들고 나는 사람 통제를 하는 게 내심 언짢기도 하고 지치기도 해서 비슷비슷한 유물들 쓱 훑어보고 지나다가... 가장 유명한 유물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은 '포세이돈 또는 제우스' 청동상 주변을 서성거려 본다.


파르테논 신전이 건립되기 전에 만들어졌을 이 청동상은 1928년 어부들이 바다에서 발견했고 어딘가를 표적 하는 왼팔은 그보다 앞서서 같은 바닷가에서 따로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삼지창을 든 포세이돈이라고 쭉 믿어지다가 요즈음은 번개를 든 제우스로 더 많이 불려진다고 한다. 번개든 삼지창이든 막 던지려는 순간의 인체 표현이 (특히 왼발 끝을 힘주어 살짝 들어 올린 부분) 기원전 5세기에 만들어졌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사실에 가까워 미술사에 있어 예술혁명으로까지 평가받는다고 한다. 이 작품 이전까지의 인체상들은 상당히 유치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아테네의 황금시대에는 예술도 찬란하게 꽃을 피웠나 보다.


제우스 청동상 (또는 포세이돈 청동상)




그리스 아테네 편은 이것으로 막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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