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고도 위험한 제안 / 책리뷰『집행관들』
솔직히 그의 방문이 어색하고 부담스러웠다. 그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기 때문에 말문이 잘 터지지 않았다.
"고생이 많다...... 인간쓰레기들을 상대하느라......"
민간인 불법 사찰 혐의로 재판을 받던 국정원 책임자가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수백억 원의 세금을 탈루한 재벌 회장은 구속 영장이 기각됐다. 기자들이 소감을 묻자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건방을 떨었다. 사법부의 현명한 판결을 존중한다고, 살아있는 권력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사법기관에 더 이상 맡길 수는 없다. 대안이 없다고 고민하기 전에, 철저한 감시자가 되고 집행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 시민으로서의 직무다.
저와 함께 일해 보지 않겠습니까?
위험하고 은밀한 제안이었다. 그의 제안은 너무도 섬뜩해서,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기만과 응징, 통쾌한 희열이 뒤섞인 본격 사회 미스터리 소설 조완선의 『집행관들』 이다.
등줄기에 으스스한 냉기가 몰려들었다. 그새 팔뚝에는 오돌톨한 소름이 돋아났다. 뭔가 기이한 음모가, 자신만 모른 채 은밀히 진행되고 있는 느낌이다. 이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일제시대 친일행각, 해방후 악질 고등계 형사로 지낸 노창룡의 신체 일부가 심하게 훼손된 채 독립운동의 후손이 살던 폐가에서 발견됐다. 고등학교 동창 허동식의 부탁으로 노창룡에 대한 자료를 건넨지 불과 열흘도 되지 않은 사이에 노창룡이 살해된 것이다. 그것도 노창룡이 독립운동가에게 사용했던 끔찍했던 고문방법으로 말이다. 역사학 교수 최주호 교수는 황당하고 당황스러움을 넘어 원인 모를 위기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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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을 꾸미는 건지 말해 봐. 아무런 명분도 없이 그런 일을 할 수는 없잖아."
"명분은 없어. 우린 집행관으로서 역할을 할 뿐이야."
"집행관?"
"그래, 법을 집행하는 집행관."
"그게 사람을 고문하고 형벌로 다스리는 건가?"
"그것도 집행의 한 방법이지."
"그래서 얻고자 하는 게 뭔데?"
"......"
"법은 모두에게 평등하는 것을 몸소 보여주겠다는 건가? 아니면 그렇게 해서라도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시켜주겠다는 건가?"
"우리 같은 사람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 분노를 실천으로 옮기는 사람들......"
기껏해야 좀 더 자극적인 어휘를 골라 칼럼을 끼적대는 자신의 분노 표출 방법과 달랐다. 그는 손에 피를 묻혀가며 직접 몸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파키스탄과 붙어 있는 인도 북부에는 말이야... 아직도 마누법전을 실행하는 곳이 있다고 하더군."
마누법전은 인도의 가장 오랜 법전으로 이집트의 함무라비 법전과도 닮은 데가 많았다. 이 두 법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보복주의다.
"간통한 자는 코를 베고, 도둑질한 자는 손목을 자르고.... 그 마을에서는 죄를 지으면 그 죗값을 치르기 위해 신체 일부를 훼손한다는 거야."
"난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곤 해. 법을 어긴 자들에게는 인도의 그 마을처럼 과감하게 법 집행을 하면 어떨까 하고 말이야. 그러면 범죄가 훨씬 줄어들 게 아닌가."
"법이라는게 확실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효력이 있지, 이놈 저놈 다 빠져나가면 어디 위신이 서겠나. 법을 집행하는 검찰도 마찬가가지야. 권력의 눈치나 살피고 그저 만만한 잡털이나 잡아들이니 영이 서질 않지...... 요즘 검찰을 떡검이나 개검으로 부르는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겠나."
어떤가? 해볼 생각이 있는가?
그 후로도 부패 정치인과 공직자, 악덕 기업가등 이른바 '공공의 적'에 해당되는 이들의 끔찍한 죽음이 이어지고 일명 집행관들이라는 그들을 잡기 위한 검경의 수사망은 점점 좁혀오는데...
우린 너무나도 자주 불법과 편법을 일삼으면서도 미꾸라지처럼 법망을 빠져나가는 이들을 수없이 봐왔다. 설령 죗값을 치른다 해도 얼마 되지 않아 사면을 받는 그들을 보며 살아있는 권력을 실감한다.
거짓과 기만 인권을 유린하면서도 당당히 또 권력을 쥐는 자들이다.
그들이 다시 권력을 잡을 수 없게 심판을 내려야 할 국민의 뜻이 그곳에 닿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내일이면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있다.
국민을 대신해 나라의 큰일을 하겠다는 그들의 거짓이 속속 드러남에도 또 다른 거짓으로 덮어버리려 한다. 거짓을 거짓으로 덮고 또다시 거기에 속아 다시 그들에게 권력을 안겨준다.
소설 속 그들은 현실에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오랜만에 책장을 넘기는 손맛을 제대로 느낀 소설을 만난 것 같다.
'그렇게 해서라도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시켜주겠다는 건가?'라는 책 속의 대사처럼 독자들은 『집행관들』 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 방법이 다소 잔인하지만 그만큼 국민들의 분노가 크다는 걸 소설은 말해 주고 있다.
민주화 투쟁과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위해 싸워왔던 이들의 희생이 무색할 정도로 불평등한 사회 속에 우린 살고 있다.
책 속 내용처럼 권력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고 부정부패를 일으키는 자들은 제대로 된 법의 심판은 받지 않고 여전히 거리를 활보하고 부와 영화를 대물림해 주면서 대대손손 잘 살고 있다.
사법부, 검찰과 언론은 그들의 보호막이 되고 국민들은 그 속임수에 속수무책 당하고 만다.
소설 속 집행관들의 심판에 속 시원하면서도 한편으로 현실에서는 제대로 된 법 집행을 바라게 된다.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광장에 모인 수많은 촛불을 나는 기억한다.
그 촛불이 꺼지질 않길 우리에겐 좀 더 깨어있는 시민의식이과 그들을 끊임없이 감시하는 시선이 계속되길 바라본다.
당신은 대한민국이 공정하다고 생각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