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읽어요 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띵북 Apr 21. 2021

지금, 네 사진 돌아다녀

내 아들은 순진한 소녀를 이용한 것이다 / 책리뷰『우리가 원했던 것들』


특이하달 것 없는 토요일 밤에 시작된 일이었다.


능력 있는 남편, 프린스턴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는 아들, 아름다운 아내, 화려하고 부유한 삶을 살아가고 있던 그들은 그 누가 봐도 완벽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완벽과 상당히 거리가 먼 상황이었다.

바로. 그 순간, 도시 저쪽 편에서 그들의 아들이 인생 최악의 결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기야, 이 일을 어쩜 좋니. 너, 아직 모르는 거야......?"

"핀치의 스냅챗 말이야"

가슴이 철렁했다.

아들 핀치가 친구들에게 보냈다는 사진 속에는 한 여자아이가 옷이 반쯤 벗겨진 상태로 정신을 잃고 침대에 누워있다.

바르게 키웠다고 믿었던 아들의 성범죄 사진과 인종차별적인 글까지, 니나는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는다.


"아무도 그 여자애를 폭행하지 않았어요. 그냥 걔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뻗은 거라고요, 그건 제 잘못이 아니잖아요."

"엄마, 걔는 아무렇지도 않을 거예요. 이런 일은 맨날 일어난다니까요."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매일 일어나는 일이라며 아무렇지 않다고 말하는 핀치, 상대의 고통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 아들의 태도에 니나는 이성을 잃고 만다.



"지금 네 사진 돌아다녀"

간밤의 기억은 도저히 나지 않는다. 지금은 자신의 침대 위. 친구 그레이스가 전해준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자신의 상체가 드러난 사진이 학교 내에 돌고 있다니. 이 사실을 아빠가 알게 될까 라일라는 두렵다.


엘리트 사립고등학교에서 일어난 SNS 스캔들, 스캔들의 중심에서 자신의 것을 잃지 않기 위한 사람들의 거짓말 속에 과연 진실은 밝혀질 수 있을까? 뉴욕타임스 화제의 베스트셀러! 에밀리 기핀『우리가 원했던 것들』 이다.




"그날 네 사진을 찍은 사람은 내가 아니었어."

사실 그동안 다른 친구의 잘못을 덮어주고 있었다는 핀치. 그간 남편과 함께 짜고 거짓말을 했던 핀치를 과연 믿을 수 있을까?

아들이 진심으로 사과하고 잘못을 뉘우쳤다고 생각했던 니나의 가슴은 무너진다.

핀치는 완전히 결백하거나 어쩌면 완전한 반사회적인 인격장애를 앓고 있을지도 모른다.

핀치는 어쩌면 자신이 생각했던 그 순수했던 소년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과거 잊고 싶었던 끔찍한 기억이 니나를 더 이상 도망가지 말라며 범죄의 진실을 향해 나아가라 말한다.


이 사건 뒤에 숨어있는 진짜 가해자는 누구일까?








하루가 멀다 하고 청소년성범죄, 데이트 폭력, 디지털 성범죄가 일어나고 있다. 몇 년 전, 몇 달 전, 며칠 전, 어제, 오늘도 성범죄는 곳곳에서 악마처럼 번지고 있다. 특히 디지털 성범죄는 사진과 영상이 한번 온라인상에 올라가면 영원히 삭제되지 않고 혈관 속까지 박제가 돼버려 피해자를 사회로부터 일상으로부터 영원히 격리시킨다.


예전 한 커뮤니티에 올라왔던 디지털성범죄 글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회사 직원이 보여준 음란 영상 속에 자신의 아내가 있었고, 남자는 큰 충격을 받는다. 회사 공식 행사에서 가족을 동반했었기에 모든 직원들은 아내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그 영상을 어떻게든 삭제하려 경찰, 사이버수사대에 요청했지만 이미 수많은 해외 사이트에까지 퍼져있는 영상은 삭제조차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 영상은 사내에 급속도로 번졌고 남자는 더 이상 회사 생활을 지속할 수 없었다. 남자는 아내가 이 사실을 알게 될까 두려웠지만 결국 아내가 알게 됐고, 아내는 극단적인 시도까지 하게 된다.

예전 남자친구가 몰래 찍었던 그 영상은 한 여자의 인생을, 한 가정을 지옥으로 밀어 넣은 것이다.

친지들까지 알게 된 상황에서 아내는 남편과 헤어지길 바랐지만 사연 속 남편은 아내와 결코 헤어지지 않겠다며 사연을 올렸었다.


당시 이 글을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울분이기도 했고 분노이기도 했고 끝까지 아내를 지키려 하는 남편의 마음이 고맙기도 했다.


동의도 없이 나도 몰래 이루어진 이런 범죄에서 왜 피해자가 영원히 고통받아야 할까?

소설 『우리가 원했던 것들』에서도 16세 소녀 라일라는 자기도 모르게 찍힌 사진 한 장으로 인해 불안한 마음과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괴로워한다. 그 과정 속 부유층의 특권의식과 인종차별, 편견과 바르지 못한 가치관으로 주변인들 간의 갈등은 더욱 깊어진다.

피해자 라일라와 그녀의 아버지 톰, 가해자의 엄마 니니가 범죄를 파헤쳐 가면 갈수록 더욱더 드러나는 진실 속에서 그들은 용기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 이 상황을 마냥 피하고 싶었던 피해자 라일라의 모습을 보면서 어린 친구들, 성범죄로 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많은 여성들의 모습이 투영돼 너무 안타까웠다. 어차피 신고를 하거나 도움을 청해봤자 가해자의 범죄사실보다 피해자의 피해 사실만 더욱 자극적으로 부각돼 제2의 피해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부와 권력을 가진 아버지를 등에 업고 자신의 범죄를 은폐하려 하는 어린 가해자. 어리다고 해서 그의 범죄가 실수로 결코 희석돼서는 안되고, 권력과 돈이 있다고 해서 그 죄가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서도 안된다.


우린 이미 N번방 사건을 통해 한 사람의 삶을 파괴하는 그 잔인함을 목격했다. 대부분의 피해자는 어린 학생들이었고 그 잔인한 가해자 또한 대부분 어린 학생들이었다. 그리고 어른들은 지켜봤다.

n번방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제2, 제3의 n번방들이 여전히 운영되고 있고 또 다른 피해자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어른들은 또 지켜본다.


보호를 해줘야 하는 어른들이 더 이상 범죄를 묵인하고 지켜보는 이런 일들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길...

내일은 꼭 괜찮아지길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딸이 학교에서 추락한 그때. 세상도 함께 무너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