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추리문학상 추리 단편집 모음 / 책리뷰 『황금펜상 수상 작품집』
영화나 드라마를 다 찾아서 볼 정도로 공포, 스릴러,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한다.
내가 특히 이런 장르를 좋아하는 이유는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장면과 음향효과도 있지만 범인을 유추하고 이어질 장면을 상상해보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책은 어릴 적 셜록홈즈, 애거시 크리스티 작품, 명탐점 코난 ㅋㅋ 정도 봤던 거 같다.
그리고 『용의자 X의헌신』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작품들, 김영하 작가의 '살인자의 기업법' 정도 ^^;
그렇게 좋아하는 장르임에도 책으로는 많이 접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2007년 ~ 2020년 한국추리문학상인 황금펜상을 수상한 작품들의 특별편이 발간됐다는 소식을 듣고 호기심과 기대감을 잔뜩 안고 기다렸다. 황세연, 김유철, 박하익, 송시우, 조동신, 홍성호, 공민철, 한이, 정가일 작가의 추리 단편집 모음 『황금펜상 수상 작품집』 이다.
총 12편의 단편소설에는 공포, 학원, 법정, 역사, 사회수사물등 다양한 형태의 추리물을 담고 있다.
그중 몇 작품을 소개하자면...
황세연 作
투자 목적이라는 아내의 고집으로 재개발 지역으로 이사 왔지만 벌어진 마룻바닥, 누렇게 변색된 벽지, 어두운 실내등 꽤나 낡아빠진 집이 남편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우두커니 마당 한켵 수국 넘어 옆집을 계속 쳐다보던 아내
"왜 그래?"
"옆집에는 누가 사나 싶어서... . 집을 살 때는 이웃에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보는 것도 중요해."
유독 옆집을 신경 쓰는 아내가 이상했지만 급매로 나온 집이라 바로 계약을 하고 이사를 오게 된다.
이사 온 첫날밤부터 남편은 계속 악몽을 꾸게 되고 어느샌가 점점 까매지는 벽지와 썩은 냄새가 그의 신경을 자극한다.
죽은 건 아니구, 어느 날 갑자기 두 부부가 몸만 감쪽같이 사라졌슈...
어느 날 한 노인이 문 앞에서 집안을 살피고 있다. 이 마을에 오랫동안 살았다는 노인은 이 집 전 주인 부부 실종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데... 남편은 집안에서 살인사건이 벌여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찜찜한 마음을 떨칠 수 없다.
평소 조울증을 앓고 있던 아내는 이사 온 후로 점점 증세가 악화되고 남편은 가족과 여관에 머물며 집을 보수 공사하기로 결심한다.
어느 날 밤 보수 중인 집을 점검하기 위해 집안으로 들어서는데 예전 낮에 봤던 노인이 곡괭이로 온 집안을 파고 있다. 남자를 발견한 노인은 다짜고짜 자신의 아들을 찾으며 남편을 공격하는데 실랑이 끝 남편은 우발적으로 노인을 죽이게 되고, 살인자가 될지 모를 불안감에 급기야 시체를 은폐하기로 한다.
가장 안전한 장소를 생각하던 그는 집 앞 마당에 시체를 묻기로 결심하고 수국 밑을 삽으로 파기 시작하는데, 옆집 마당으로 이어지는 땅속에서 무언가가 걸린다.
황세연 작가의 '흉가'는 공포물로 작가가 실제로 겪은 일화에 아이디어를 얻어 작품으로 만들었다.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인 집이 순간 공포와 폭력의 공간으로 변하며 가족의 안전망을 철저히 무너트린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사이라 생각했던 가족의 무서운 비밀까지 드러나는데... (가장 큰 비밀은 책을 통해^^;)
"어휴. 무겁다. 조심히들 해!"
이삿짐센터 인부들이 세 개의 커다란 플라스틱통을 힘겹게 트럭에서 내렸다.
"이 묵은지가 든 통들은 어디로 옮길까요?"
박하익 作
"고운눈 안과가 어딨는지 아세요?"
방향을 알려주려고 몸을 돌린 순간이었다. 그가 채율의 입을 틀어막았다. 능소화 넝쿨 뒤로 끌려들어갔다.
'무는 남자다!'
오로지 송곳니로 소녀의 팔목만 물고 달아나는 일명 '무는 남자' 는 학생들 사이에서 변태로 불리는 요주의 인물이다.
채율이 무는 남자에게 당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학교 전체에 흐르고 무는 남자 체포 수사대, '무수대'로 불린다는 4인조 무리에 엉겁결에 채율은 가입하게 된다.
어느 날 같은 학교 피해자 학생이 더 발생하는데 무는 남자의 인상착의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학생의 증언에 의해 '무수대' 수사는 급물살을 탄다.
편의점에서 목격된 무는남자를 검거하는데 성공한 무수대. 무는남자와 실랑이 중 상처를 입게 된 무는남자는 병원으로 실려오고, 아이들의 연락을 받고 온 선생님은 무는 남자를 경찰로 인계하러 하는데...
"애들 내보내고 어른들끼리 이야기합시다. 어른들끼리!"
아이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였다. 담임이 말했다.
"그냥 여기서 이야기해."
"애들이 놀랄지도 모르는데?"
무는 남자는 매트 위에 놓여 있는 담임의 핸드폰을 집었다. 허락도 구하지 않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곁에 앉아 있던 담임만 번호를 봤다. 얼굴색이 변했다. 전화가 연결되기 직전, 담임은 무는 남자의 손에서 핸드폰을 낚아챘다. 그리고 부탁했다.
"애들아, 너희 잠깐만 나가 있을래?"
무는 남자는 돈을 받고 고용되어 한 선생에게 과외를 받고 있던 여학생들만 물고 다녔다. 학부모와 교장에게 경고하기 위해 일을 꾸몄다는 그 사람은 바로... 바로... 60초 후에~ 아니 책에서^^;
2010년 수상작인 박하익의 '무는남자'는 학원추리소설물로 학생들이 미스터리한 사건을 추리해 가는 과정을 발랄하고 경쾌하게 그려냈다. 하지만 '사학비리'라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담고 있어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한때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 사건이 연상된다. 일명 '교피아'라고 불리는 사학재단은 하나의 왕국처럼 군림하며 온갖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 그럼에도 검찰, 정 ·재계까지 연결되어 있는 사학재단을 법으로 처벌하기란 쉽지 않다. 수십 년째 이어지고 있는 사학비리를 언제쯤 끊어낼 수 있을까?
오늘도 일반 시민들은 무거운 학원 책가방을 둘러매고 가는 아이들을 배웅하고 있다.
사교육의 편차 따윈 문제도 아니다. 제발 공정하기만을 바랄 뿐.
이외에도 여러 작품이 있었는데 정가일 작가의 '소나기'라는 작품은 황순원의 풋풋한 첫사랑 '소나기'를 연상하게 하는 전개였지만 알고 보면 가정폭력과 정치인의 부조리, 거기에 생각할수록 끔찍한 사건까지 나를 분노케 했다.
"그 애, 목매달아서 자살했다더라? 원래 공부도 잘하던 놈이었는데."
"난 그날 아침에 직접 봤어. 지금도 그 아이 눈이 빨갛게 충혈된 거 못 잊겠다. 한동안 꿈에도 나왔어."
"뭐라고? 그거 이상한데."
내가 한 말에 의사 녀석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놈은 다 마신 맥주캔을 찌그러뜨리고는 새 맥주의 마개를 땄다.
"눈의 충혈은 목매달아 자살한 사람한테는 나타나지 않아. 그건 교살, 즉 목을 졸려서 죽은 사람한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벚꽃 향기 같은 첫 키스. 그건 누군가에게 숨기고 싶은 공포였다.
황금펜상은 국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추리문학상이라고 해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아무래도 오래전에 수상된 작품들이 있다 보니 모두 다 흥미롭고 재미있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예측 가능했던 전개들이 흥미를 반감시키기도 했는데, 아마 그동안 많은 스릴러 장르에 면역에 생긴 터라 뭔가 새롭고 특별한 스토리를 바랐던 거 같다.
장편소설이었다면 훨씬 깊이 있고 섬세한 스토리가 만들어졌을 거라 생각하니 아쉬움이 남는 작품들도 있었다.
하지만 짧은 호흡의 추리 단편들은 다음 편을 기대하게 만드는 묘약을 가지고 있었다.
앞으로도 황금펜상이 한국추리문학상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길 바라보고 응원한다.
난 다음 작품들도 읽고 싶다.
한국추리소설 파이팅~~~